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석 May 25. 2020

군인과 의사의 숫자가 뒤바뀌었다면?

<킹덤>과 <워킹데드>가 가르쳐주는 재난 대응법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침몰, 세월호 참사 같은 인간이 만든 사고. 혹은 9.11 테러나 이라크 전쟁처럼 정치적인 맥락에서 해석되는 인간이 만든 재난. 쓰나미와 연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자연재해와 인재가 결합된 재난. 별별 재난이 다 있었는데 코로나 같은 재난은 정말 처음인 거 같습니다. 스페인 독감이나 흑사병 같은 전염병처럼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꾼 감염병들도 있었다는 걸 알지만 역사책에서만 본 이야기와 동시대에 뉴스로 듣는 이야기의 감각은 다릅니다. 특히 최첨단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바이러스 하나가 가져온 혼란에 인류가 이토록 무기력하다는 건 모두에게 충격입니다.


문득 아직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재난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좀비. 물론 실제로 좀비가 창궐할 일은 없겠죠. 다만 좀비가 "당대 대중에 대한 은유로서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라는 문화평론가 손희정의 말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겪어온 재난들과 앞으로 겪을 재난을 좀비물을 통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 같습니다.



<킹덤>과 <워킹데드>가 가르쳐준 것


잔인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좀비물은 그럭저럭 보고, 최근에는 제법 재미있게 본 좀비물도 많습니다. 특히 미드 <워킹데드>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킹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죠. 두 드라마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는데 특히 아래의 두 가지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위킹데드(위)와 킹덤(아래)의 포스터


좀비와 인간, 누가 폭력적인가?

과연 잔인한 건 인간이더라고요. 좀비들은 그저 자신의 몸에 각인된 행동 패턴대로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듯이 사람의 살과 피를 탐할 뿐이죠.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는 것을 우리가 폭력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좀비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부르기 어렵지 않을까요? 다만 그게 폭력이라고 느껴진다면 좀비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실제로 좀비물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악랄한 것은 인간이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다른 이들을 고문하는데 좀비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좀비가 아니라 좀비를 부리는 인간이 문제 아닐까요?


군인과 의사, 둘 중에 누가 더 필요한가?

<워킹데드>를 보면 인간 무리에서 가장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며, 없을 때 치명적인 역할은 바로 의사입니다. 좀비에게 당하든 다른 무리에게 당하든 사람들은 쉽게 다치거나 부상을 입었고, 의사가 없을 때는 아주 단순한 부상이 심각한 상황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수의사, 레지던트, 의대생, 간호조무사를 가리지 않고 의료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돌보고 치료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무리들과 싸우고 좀비 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총을 든 릭(주인공)도 중요하지만 의사가 없다면 릭의 무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킹덤>에서 의사 서비(배두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합니다. 세자 이창(주지훈)이 제 아무리 좀비 떼와 싸우고 조정의 부정한 무리들과 싸우더라도 역병을 막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서비는 좀비의 원인이 생사초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역병의 치료법-즉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 갑니다.


실제로 많은 재난에서 군인보다는 의사가 중요합니다. 의료진은 언제든 중요하고, 군인은 때로는 요긴한 역할도 하지만 반대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예컨대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했을 때, 허리케인에 의한 피해도 무지막지했지만 그 이후 주 정치권과 주방위군의 대응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음을 지적했습니다. 시 당국의 판단에 따라 주방위군은 수색과 구조를 포기하고 고립된 시민들이 식료품점에서 생존을 위한 식량을 가져가는 것을 막는 데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예외적이지 않습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다루는 여러 재난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사실 재난 상황에서 군대의 전통적인 역할, 군사 안보를 지키는 일은 쓸모가 없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코로나 시대에 똑똑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멈춰서 곤란한 것들과 멈춰도 아무 상관없는 것들


코로나는 많은 것을 멈추게 했습니다. 전 세계 프로 스포츠 리그가 멈추고, 비행기가 멈추고, 자동차가 멈추고, 학교가 멈췄습니다. 그리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멈추고, 병무청의 병역판정검사가 중단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열릴 계획이던 무기박람회가 속속히 취소되었습니다.


멈춰서 곤란한 것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학교가 멈춘 것은 대단한 혼란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바깥 활동이 멈추면서 자영업자들의 생계까지 동시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제 친구는 수출입이 제한되어서 덩달아 월급이 70%로 줄었다면서도 해고당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상황이 안 좋습니다.


하지만 군사훈련이 중단되고, 신병 징집을 위한 신체검사가 중단되고, 무기박람회가 취소되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국방부나 보수언론, 보수 정치인들은 안보공백이 생기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유난이었는데 군사안보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는데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걱정한 것은 군사안보의 공백이 아니라 바이러스와의 사투라는 새로운 안보입니다. 바이러스와의 싸우는 데 군인은 쓸모가 없고, 의료진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군인의 숫자와 의사의 숫자가 뒤바뀌어 있다면?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상비군 59만 9천여 명에 예비병력이 310만입니다(2018년 기준). 반면 의료인의 숫자는 인구 10만 명당 1,124명으로 대한민국 인구를 5천만 명으로 잡는다면 약 56만 명입니다. 조산사와 간호사까지 모두 세어도 상비군 숫자보다 적으며 예비전력 숫자까지 합친다면 370만 대 56만으로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입니다.



물론 군인 숫자와 의료인의 숫자를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비교할 수만은 없습니다. 군인의 역할과 영향력, 의료인들의 역할과 영향력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하려면 디테일한 접근이 필요하겠죠. 각각 세부적으로는 어떤 영역이 강화되어 있는지, 실제로 현실에서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국가는 각각에 어떤 지원을 하고 있고 어떤 통제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협력하는지 등등을 따져봐야 할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단순한 비교는 상징적인 면을 부각해 주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군인과 의료인들의 저 숫자가 뒤바뀐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요? 의료인이 훨씬 늘었기 때문에 코로나에 더 수월하게 대응했을까요? 아니면 군인이 크게 줄어 북한의 군사 위협에 쩔쩔 매고 있을까요?


상상이 그대로 현실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제시해줄 수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위기는 군사안보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의료진의 헌신과 열정, 시민들의 성숙한 동참에 정부의 역할이 어우러져 이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지만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난이 앞으로 더욱 빈번한 것임을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군인의 숫자와 의료인의 숫자, 우리는 무엇을 늘리고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저는 우리의 길은 이창의 길이 아니라 서비의 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시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