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황수영 인터뷰
2008년에 티베트 여행 다녀와서,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티베트 라싸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사람들 많이 죽었어요. 티베트 여행 다녀온 사람들이 같이 촛불집회를 광화문에서 오래 했어요. 그러다가 그 모임을 티베트 지지 하는 단체로 만들게 됐어요. 그렇다고 상근활동가가 있었던 건 아니고, 우리끼리 너무 친하고, 여행 다녀온 사람들끼리 통하는 것도 많았죠. 어떻게 하다보니까 일이 커져가지고 아름다운재단 펀딩 받아서 프리 티베트(Free Tibet) 영화제도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사무실이 있어야겠더라고요. 티베트 활동할 때 연결된 ‘팔레스타인 평화연대’가 ‘경계를 넘어’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데 조금 더 돈을 내면 같이 쓸 수 있다고 해서 들어갔어요. 그땐 아직 대학생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졸업하고 원래 영화를 만드는 일, 영화 언저리에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영화 보는 걸 좋아했는데 영화제에서 영사를 하면 새로운 영화를 엄청 많이 볼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전주, 부천, 제천, 부산 이렇게 돌면서 영화제 기술팀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영화제 중간에 뜨는 시간에 강정마을에 갈 기회가 있었어요. 구럼비 발파하기 전에, 서울에 있는 단체들이 같이 가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할 때였어요. 갔는데 뭔가 “아, 이 상황이 뭐지?” 싶은 게 있었어요. 그러다가 당시 대책회의를 꾸리고 하면서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가 “강정 가서 좀 있어볼래?”라고 제안한 거예요. “아 뭐 그럴까” 해서 갔다가 거기서 일주일 이주일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평화운동을 고민하게 됐어요. 어쩌다보니 강정마을에 가게 된 건데 마음이 잘 맞더라고요.
그때는 그러면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던 거예요?
‘경계를 넘어’에서 같이 활동할 때였어요. 사무실을 같이 쓰면서 같이 국제 이슈에 대한 인터넷 라디오도 만들고. 그러다가 영화제 끝나고 ‘경계를 넘어’에서 활동을 더 해보고 싶어가지고, 처음에 월급 조금 받고 반상근으로 시작했어요. ‘경계를 넘어’는 ‘ 연대의 세계화를 꿈꾸는’ 작은 단체였는데요. 활동하면서 국제 이슈를 어떻게 바라볼지 그런 관점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알바를 했죠. 영상촬영 알바 같은 거 많이 하고, 영문 시나리오 번역하는 알바 하고, 진짜 온갖 알바를 많이 했는데, 활동 하다보니까 참여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알바 하느라 너무 시간이 없는 거죠. 그렇게 1~2년을 보내다 보니까 하고 싶은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데 집중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이라크 전쟁 10년 모니터 보고서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내가 진짜 이 일을 빨리 더 해야 하는데 알바를 가야하고, 이러니까 밸런스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참여연대에서 사람 뽑더라고요. 참여연대 평화국제팀 활동가들과도와 잘 알고 있었고, 고민하다가 지원했어요. 그때쯤에는 평화운동을 시스템 있는 곳에서 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여러 이슈에 대응하는 활동이 많은 곳이요. 그때가 29살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참여연대에 지원한 거였군요.
평화운동을 ‘일’로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알바 안 하고 월화수목금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이때 우리(전쟁없는세상)가 사람 뽑았으면 수영을 우리가 뽑았을 수 있었네요.
그렇죠. 근데 그때 전쟁없는세상은 사람을 뽑는 게 아니었어요.
맞아요. 우리는 공채를 거의 안 했어요.
그리고 다른 평화단체는 사실상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여기에 자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평화군축센터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왔는데 마침 때가 맞았어요.
처음부터 평화운동이 수영과 잘 맞았나 봐요?
맞았나? 강정에서 여러 기억이 컸던 거 같고 그 전에도 파병 반대 활동이나 국제 분쟁 모니터 하고 이런 것들을 ‘경계를 넘어’에서 했었고, 약간 대추리 때문에 활동 시작했던 활동가 많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강정에서 아 이런 언어가 있고. 이런 것들이 있구나, 하고 많이 배웠어요. 평화운동이 맞았으니까 그랬겠죠? 다른 운동의 언어도 접했는데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보면 집단적인 거에 반감이 있었나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 안 했는데, 신념이 있었다기보다 일괄적으로 시키는 것이 동의가 안 됐어요. 왜 모두가 한 곳을 보면서 가만히 몇 초 동안 있어야 되는지, 나는 약간 못 참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제주해군기지가 자꾸 국가 안보라고 말하니까 그게 나는 동의가 안 되었던 거 같아요. 한국산 최루탄 수출 금지 활동하면서도,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구나, 알게 됐죠.
또 기억에 남는 거는 전쟁없는세상 오리가 강화도에서 하는 비폭력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닝에 초대해줬는데 거기서 평화운동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배우게 됐어요. 나중에 평화활동가대회에서였나 서로 롤링페이퍼처럼 쪽지 쓰는 시간이 있어서 오리한테 그게 너무 고마웠다고 썼는데 아마 오리는 기억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이 판에 알짱대다가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여기까지 왔어요. 뭐랄까 활동가들에게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신기한 능력이 있는 거 같아요.
저도 큰 단체에서는 활동을 안 해봐서 궁금한데, 참여연대처럼 큰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은 점도 있고 반대로 어려운 점도 있을 거 같아요.
좋은 거는 내가 하고 싶은 거를 직업으로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 가지 이슈를 되게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거. 국제분쟁부터 군축, 한반도 문제, 핵문제, 다 종합적으로 보니까 그렇게 하면서 연결점을 많이 찾게 됐던 거 같아요.
어려운 거는 연대 판을 만들고 조직하고 조율하고 그런 것들. 요즘에 여러 단체와 같이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게 사실 쉽진 않죠(웃음). 그런 게 약간 어려워요. 그리고 여기는 더 많은 거를 한꺼번에 봐야 되고 정세에 따라 다뤄야 하는 현안들도 있으니까. 사드 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북미정상회담 파토, 엊그제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시킨 일, 이런 거는 대체복무제처럼 법안이 통과되는 프로세스가 있고 그런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빵 터져 나오니까 뭔가를 계획할 수 없는 거죠. 근데 힘들다기보다는... 저는 원래 루틴한 걸 지겨워 해서 저한테는 별로 큰 건 아니에요.
사람이 많아서 노조도 있고 그런 건 좋아요. 상의할 사람도 많이 있고, 내부에서 서로 ‘이게 맞나?’ 체크하고 함께 검토하고 그럴 수 있게 짜여 있고, 누구 한 명이 맘대로 할 수 없고,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그게 때론 답답할 때도 있잖아요.
그쵸. 빨리빨리 할 때는 그렇지만... 빨리 빨리 소수 정예로 딱 정하는 게 빛날 때가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여러 사람이 같이 머리 맞대는 게 그래도 나을 거 같긴 해요. 케이스에 따라 다르지만요.
좋은 거에 노조도 있다고 했는데, 노조 간부도 했었잖아요. 노조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참여연대에서 노조 만든다고 했을 때 무슨 문제 있냐고 다들 물어봤는데, 딱히 엄청난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거든요. 각자 노조에 들어온 이유도 다를 거 같아요. 저는 그냥 처음에 올 때 근로 계약서를 쓰면서 아 나는 노동자구나 했기 때문에 그냥 당연하게 여겼어요. 노조에서 임금이나 여러 가지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같이 논의해서결정할 수 있어서 좋아요. 최근에 성희롱 예방 규정이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취업규칙이나 이런 것도 사측이랑 같이 논의해서 만들기도 했고요 노조 부위원장을 한 거는 이조은이 위원장을 한다고 해서 그럼 내가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고 생각해서 하게 됐죠. 더 나은 직장을 위해서 노조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게 고마웠고 통장 정리라도 하면서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다른 단체들도 노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쵸. 근데 우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모든 단체에 노조가 있어야 된다고 말하는 것도 어떤 데에는 폭력적인 거 같아요. 상황이 다 다르니까요. 근데 노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체 안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걸 논의하는 것은 필요한 거 같아요. 결국 노조를 만들지 않더라도 고민해보는 거는 좋은 거 같아요.
노조 만들고 나서 여러 가지 많이 했는데 주변 단체들에서 상담을 요청해 오는 경우도 많았고, 우리가 노동법 교육 같은 거를 열 때 다른 단체 활동가들이 더 많이 오시고 했어요. 이런 거에 대한 궁금증이나 논의들이 있구나, 이런 걸 되게 많이 체감했던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요. 수영은 굉장히 톡톡 튀고 발랄한데, 참여연대의 장점은 수영과는 좀 달라서, 황수영의 재기발랄함이 참여연대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는 게 아닌가?
이게 누가 막는 건 아닌데, 이슈가 많아서… 난 사실 영상 만들고 글 쓰고 이런 게 재밌는데, 여러 이슈를 하다보니 한글 타자 게임에서 내려오는 단어들 해치우는 느낌으로 많이 하게 돼요. 일을 되게 정성들여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태평양 텔레토비 같은 거 만들고 쓸데 없는 거에 집착하고 이런 게 재밌는데 요즘에는 그런 시간은 사실 많이 없어요. 그런 것들을 할 시간이 없어요. 한두 가지 이슈만 대응하는 거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하고 할 텐데.
그런 거는 좀 아쉽지 않아요? 물론 여러 이슈를 다루면서 배울 건 많이 있지만, 재밌게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기는 어려운 거잖아요.
그 대신 내가 생각 안했던 거를 해볼 기회가 많은 거 같아요. 예컨대 NPT(핵확산금지조약) 회의 같은 데 가서 일해보고, 금강산 남북 민간교류 행사에도 참여하고, 그런 경험들. 사드 배치될 때는 소성리에 내려가 살았는데,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로 세상을 구원하고 전쟁을 다 억지할 것처럼 말하는 게 한반도 산골마을의 주민 일상은 전쟁터로 만들고 그런 걸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어떤 소리가 개소리인지 잘 알아채게 되고... 못 하는 일도 있지만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회사 생활을 안해 봐가지고, 그게 체질에 되게 안 맞는다는 느낌이 많았는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가지고 그냥… 적응이 되었어요.
잘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 들어보니 더더욱 수영 성격이 긍정적인 편인 거 같아요.
그런 거 같아요. 과거의 일을 잘 돌아보지 않아요. 금방 잊어버리고(웃음) 힘들었던 거는 팀장 하게 되면서 크게 있었어요. 나는 아직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게 됐어요. 평화군축센터가 아니라 국제연대위원회의 일도 있는데 영어도 생각만큼 안 되고 이슈를 모르는 부분도 많고. 그래서 같은 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지금은 아닌데 초반에 되게 스트레스 받아서 밤에 잠을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울고, 사무실 앞에까지 와서 못 들어가고 한참 서성이다가 들어가고 그런 날도 꽤 있었어요. 밖에서 ‘아 어떡하지.’ 이러면서. 그게 오래간 건 아니고 좀 그러다가 말았는데, 그때 그만 둘까 생각 많이 했는데 안식년 쓰고 여행가고 싶어서 못 그만뒀어요.(하하하) 사실 별것도 아닌데, 지금은 다 지나서 괜찮아요.
넓게 봐서 활동을 2008년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12년이 됐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뭐예요?
생각이 안 나요(웃음). 그때 순간에는 되게 좋다고 생각한 게 많았는데 지나고 나면 기억이 안 나요. 각각이 의미가 있었는데… 관통하는 좋은 기억은 우리가 뭘 만들거나 했을 때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예요. 사드 관련 카드뉴스 만들었는데 성주에 사는 학생이 연락이 오고, 이런 게 있을 때.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날 떄, ‘아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저기까지 가는 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이런 감각이 들 때 좋아요.
그리고 참여연대 오자마자 세월호 대책위 파견 됐는데, 그때 막 서명 엄청 많이 해주고, 신문 광고 하려고 모금하면 모금함이 빨리 차가지고 계속 닫고 열어야 하고. 동조단식을 하는데 막 생각지도 못한 나라에서 단식 했다고 사진을 보내주고, 그런 게 되게 신기했어요.
도깨비에 나온 공유처럼 말하면 평화활동을 한 모든 순간이 다 즐거웠다 뭐 이런 느낌인거죠?
기억을 많이 금방금방 잊어버려요. 지나고 보면 다 좋았지 이런 느낌이에요. 작년에도 NPT 회의 가기 전에, 그때 맨날 영어 메일 쓴다고 밤새면서 울고, 짜증나서 울고 그랬는데도 갔다 와서는 되게 재밌었어요. 미화시키는 거 같아 내가 기억을(웃음)
확실히 긍정적인 성격이네요. 난 사실 그게 좋은 거 같아요. 모든 일이 나쁘기만 한 일도 없고, 좋기만 한 일도 없는 거잖아요.
다 배우는 거니까… 나쁜 상황이나 나쁜 사람한테 더 많이 배우는 거 같아요. 나한테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를 알게 돼요.
근데 맞는 말인 거 같아요. 감옥에서도 사실 배울 게 많거든요.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저는 순간적으로 욱하긴 하는데 약간 분노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걸 잘못해요. 화난 걸. 금방 많이 잊어버리고, 미워도 그냥 약간 이런 편인데. 그래서 누가 뭔가를 말하면 제가 첫마디를 “알겠다” 아니면 “고맙다”, “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하면서 이렇게 생각하려고 되게 많이 스스로도 노력해요. 그렇게 해야 내 생각이랑 다른 이야기를 사람들이 나한테 많이 해주는 거 같아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좀 더 해보고 싶고 궁금한 활동도 있고, 결국엔 다 하지만 정말 하기 싫은 활동도 있을 거 같아요.
주간보고 쓰는 거 너무 하기 싫어요. 왜 필요한지도 알고, 너무 납득하는데, 나중에 도움 되는 거 아는데, 늘 싫어서 마지막으로 미루는 일 중의 하나예요. 그리고 회의 자료 정리하고 이런 거를. 그게 되게 나한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알겠는데 늘 마지막으로 미루는 일들이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이 싫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건데, 전 원래 글 써서 하는 게 익숙하거든요. 말을 딱 들어오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지금은 나도 그런 사람들 보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발표하는 걸 안 좋아해요. 조리있게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되게 싫어요. 인터뷰도 어쩔 수 없이 하는데, 자료를 써서 내거나 영상을 만들어서 내는 게 좋더라고요. 내가 그걸 해야 한다는 거 잘 아는데도 하기 싫어요.
가장 해보고 싶은 거는, 코딩을 배우다 말아가지고 아쉬워요. 조금 했는데, 코딩이랑 영상 모션그래픽 배워서 뭔가 만들고 싶어요. 활동이랑은 상관 없는데 브이로그도 하려고 한 편 찍어서 올렸는데 그 뒤로는 못했어요.
앞으로도 쭈욱 활동가로 살고 싶어요?
그건 모르겠어요. 근데 이 자리에 내가 오래 있으면 사실 새롭게 와서 해볼 수 있는 분도 있고 그런데, 오래 있으면 의도하지 않아도 하게 되고 그런 게 있잖아요. 너무 오래 있으면 나한테도 안 좋고 새로 오는 사람에게도 안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은 당연해요. 나도 맨날 해요. 전쟁없는세상에 다시 돌아온 지도 5년 됐어요. 너무 오래 있는 게 나한테도 단체한테도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해요. 자극도 없고.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들어와야 단체에도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지.
다음에 뭐 할까. 모르겠어요. 정확한 계획표는 없는데... 원래 계획이란 걸 잘 안해요. 평화학 이런 거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일단 영어가 되어야 하니까. 사실은 군사학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그런 자료 혼자 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활동하는데 밀덕들한테 지기 싫어서, 어떨 때는 국방부 외교부 직원들보다 내가 모르는 게 싫어서 맨날 무기체계 자료, 책 뒤져보고 그랬어요. (밀덕은 나의 힘ㅋㅋ) 근데 그런 걸로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그거를 잘 배운 다음에 잘 비판하려고요. 활동을 하면 할수록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학교 다닐 때 노느라 학점이 안 좋아서 갈 수 있나 모르겠네요.
수영과 인터뷰는 편안한 수다 같았습니다. 수영을 처음 본 건 2011년 강정마을에서였으니 거의 10년을 함께 활동해온 셈이죠. 처음 봤을 때부터 반짝 반짝 빛나는 사람이었고, 톡톡 튀는 남다른 감각은 활동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수영이 참여연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축하하면서도 아쉬웠습니다. 참여연대처럼 큰 단체는 나름의 해야할 일과 역할이 있고 나 또한 참여연대에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는데, 그러다보니 활동가 개개인이 자신의 감각을 살려서 활동하기는 작은 단체들과는 사뭇 다를 것이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수영의 감각은 참여연대에서도 빛을 발하더라고요. 거기다 더해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장점마저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더니 이제는 평화군축센터 팀장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수영은 더 바빠지고 힘든 일도 많겠지만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늘 자신의 자리와 옆의 사람들을 살펴보는 사람, 새로운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 황수영과 오래도록 좋은 동료로 함께 평화활동을 하면서 늙어가고 싶습니다. 우선 수영이 브이로그부터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 2020 프로젝트의 '활동가인터뷰 공모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