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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24. 2020

태영호 의원의 질의에서 색깔론보다 더 문제인 것

'국가가 허락한 양심'에 자유는 없다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이인영 장관 후보자에게 던진 질문이 가관이다. 아직도 전향하지 않은 주사파로 몰고 싶었나 본데,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색깔론에 영향받지는 않는다. 이인영 입장에서는 자신의 민주화운동 경력만 부각되는 거니까 이런 공격이 오히려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국회의원이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듯한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문득 재작년 국방부에서 주최한 대체복무 관련 공청회가 떠오른다. 나는 그곳에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를 찬성하는 패널로 참여했다. 국가 기관 행사니 당연하게 국민의례로 시작했다.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하지 않았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가 꼭 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애국심을 핑계 삼아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참 토론이 진행되는 와중에 대체복무 반대쪽 패널인 원영섭 변호사(정치에 뜻이 있는 분인데,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든 실무책임자였지만 당내 경선에서 떨어져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지 못했다)가 국민의례 때 내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토론해야 할 다른 안건이 많았던지라 나는 그냥 "지금 논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해버렸다. 나중에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문제에 대해 그 자리에서 좀 더 이야기를 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가 북한 혹은 중국이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겠죠.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해서 잡혀갔을 겁니다. 혹은 잡혀가는 것이 두려워서 제 신념과 양심을 속이고 거짓으로 경례를 했겠죠. 지금 우리가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저는 잡혀가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양심의 자유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강요받지 않아야 합니다. 국가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나라인 거죠. 병역거부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 양심의 자유가 군입대와 관련한 영역까지도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했더라면 양심의 자유에 대해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는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다. 전두환 같은 살인마도, 이용석 같은 병역거부자도 차별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는 사기꾼에게도 양심의 자유가 있고, 아흔아홉 번 거짓말을 했더라도 단 한 번 자신이 원치 않는 거짓말을 강요받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양심의 자유다. 


태영호 의원의 질의 수준이 처참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색깔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심과 사상의 내용을 국가(국회의원)가 문제 삼겠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는 게 더욱 문제다. 국가가 허락한 양심과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양심이 구분된다면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역거부자 심사에선 지금까지는 국가가 양심을 선별해왔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병역거부자는 감옥에 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무조건 감옥에 가지는 않게 되었지만 재판을 받아야 했다.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무색하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양심의 자유가 권리로서 자리잡지 못했음을 통감한다. 검사의 질문(을 가장한 공격)과 몇몇 판사의 판결문은 '가짜 양심'을 색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양심의 내용을 판단하려 든다. 종교인이라면 교리에 대해 따져 묻고(내용을 판단해서도 안 되지만, 판단하더라도 과연 그럴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의 질문을 던졌다), 평화주의자들에게는 함정 질문을 던져서 곤경에 빠뜨려 양심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7월부터 대체복무 심사위원회가 설치되었으니 앞으로 병역거부자들은 대체복무심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치게 될 것이다. 재판에서 일어난 문제가 반복될까 걱정이다. 가짜 양심을 색출하고 병역기피자를 거른다는 명목으로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내용을 섣불리 판단하려들면 안 된다. 


태영호 의원의 질문에서 철 지난 색깔론을 빼고 남는 문제, 국가가 양심의 내용을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양심의 자유를 다룰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핵심이다. 양심의 내용을 국가기관이 판단하고 선별하겠다는 것은 양심에 자유를 반대로 이해한 것이며,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오히려 침해하는 행위다. '국가가 허락한 양심'에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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