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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ul 21. 2020

손으로 하는 건 다 못해요

우리집에서 나만 똥손

기술자 아빠


울 아빠는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다. 솔직히 말하면 난 아빠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 아빠 화사에서 여러 번 가봤지만, 무슨 일인지도 여러 번 들었지만 문과 출신에 기술엔 젬병인 나는 도통 파악할 수가 없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도판이 있었고 조금 뒤에는 컴퓨터에 cad 프로그램이 깔려있었으니, 요즘도 아빠의 연습장엔 기계 도면이나 스케치를 낙서처럼 해놓은 걸 볼 수 있으니 그저 기계 다루는 일을 하시는구나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집에 무언가 고장 나면 아빠가 나서서 뚝딱 고치곤 한다. 때로는 새 것을 사거나 기성품을 사면 쉬운데 당신이 고친다고 일을 더 크게 만들다가 엄마한테 지청구를 듣기도 한다. 아무튼 손으로 뭘 만들고 고치는 걸 참 잘하신다.



솜씨 좋은 엄마


울 엄마도 손재주가 아빠 못지않다. 내 친구 선미는 대학시절에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은 걸 아직도 이야기한다. 울 엄마 요리 솜씨 좋다고. 손으로 만드는 걸 대체로 잘하신다. 손이 빠르진 않지만 야물고 감각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엄마는 홈패션을 배우셨는데, 우리 반 오르간 덮개며 OHP 덮개 같은 걸 다 만들어주셨다. 물론 그런 걸 만들어 갔어도 담임은 날 이뻐하지 않았다. 다른 집 애들은 현금을 가져다줬는데 나는 고작 덮개를 가져간 거였으니. 아무튼 엄마의 손재주는 살림살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빨래 하나도 엄마가 개면 뭔가 다르다.



공방 차린 동생


동생은 두 분의 손재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뭘 만들고 그리고 그런 걸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회사생활은 영 흥미를 못 붙이고, 집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댔다. 처음에는 가정용 가마를 사서 초벌구이 된 그릇이며 머그컵에 그림을 그려 구웠다. 덕분에 우리 집엔 접시며 그릇, 머그컵이 넘쳐났다. 그런데 가정용 가마의 유지비가 비쌌다. 전기로 돌리는 건데 한 번 구울 때 전기료가 거의 15만 원이 들었다. 게다가 여름에는 가마를 베란다에서 돌려도 그 열기가 집 안까지 들어왔다. 동생은 가마를 팔더니 이번엔 재봉틀을 사서 아기 턱받이나 뜨거운 냄비를 잡는 손잡이 등을 만들어 팔았다. 손재주는 좋지만 장사 수완이 좋은 건 아니라서 그냥 아는 사람 통해 주문을 받는 정도였다.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한동안 좋아하던 만들기를 못하더니 애들이 어느 정도 크니까 라탄과 마끄라메를 배워서 이제는 아예 공방까지 차리고 정식으로 일을 한다. (동생이 만든 작품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할 수 있다. 친구들 몇명에게 선물했는데 모두들 크게 만족했다.)


동생이 만든 라탄 공예품. 만드는 제품이 다양한데 라탄 공예품은 판매용보다는 강습용 제품이 많다.
동생이 만든 마끄라메 공예품. 라탄이 강습 위주인 반면 마끄라메는 판매 위주다. 위에 링크 걸어둔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왜 나만 똥손일까


나는 손으로 하는 건 다 못한다. 글씨, 그림, 만들기, 종이접기 다 못한다. 내 손 끝에 섬세한 감각이란 없다. 예를 들면 당구 실력이 형편없는데, 길은 잘 보지만 미세한 힘과 각도의 조절을 못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첫 미술시간이 끝난 뒤 담임은 엄마한테 전화해 나를 미술학원에 보내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숙제를 했는데도 글씨 못썼다고 안 한 애들보다 더 많이 맞았다. 서강고 국어교사 고득구. 이름도 안 까먹는다. 감옥에 있을 때 친구한테 편지를 썼는데 친구 엄마가 편지봉투에 쓰인 글씨를 보고는 초등학생이 장난편지한 줄 알고 버릴 뻔 한적도 있었다.


나는 비교적 빨리 포토샵을 익혔는데 그것도 전부 손재주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학 때 학생회에서 대자보니 현수막이니 피켓 같은 것을 죄다 손으로 쓰던 시절, 나는 선전 작업에서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다. 자 대고 선을 그어도 선이 삐뚤어지고, 피켓에 8자 구호를 쓰면 7자까지 쓰고 나머지 한 글자를 쓸 자리가 늘 없었는 사람에게 누가 선전물 제작을 맡기겠는가. 대자보 붙이는 것을 도맡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붙인 대자보는 늘 수평이 맞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고생하는데 나는 멀뚱멀뚱 있는 것이 미안해 포토샵을 익혔다. 글씨도 깔끔하게 써주고 선도 반듯하게 그어주니 나로서는 마법의 도구 같았다. 



똥손이라도 괜찮아


엄마와 아빠와 동생의 손재주가 내게만 없었다. 내 손재주는 평범한 수준도 안 되었다. 이쯤 되면 나만 어디서 주워왔나 의심했을 법도 한데, 신기하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생각하는 타고난 성격 덕분이든지,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손재주만 빼면 식성이나 성격이나 외모가 닮았았기 때문인 건지 몰라도 왜 내게만 손재주가 없는지 한탄하거나 원망해본 적은 없다. 내 부족함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은 내 부족함 때문에 불편한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불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뼈를 깎는 노력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노력은 아무런 성취로 이루지 못했다. 감옥에서는 손편지를 400통 넘게 썼지만 글솜씨는 늘었겠지만 글씨는 하나도 늘지 않았다.  


지금 난 여태껏 그래 왔듯이 내가 잘하는 것들에 만족하며 내가 못하는 것들에 집착하진 않는다. 못하는 것을 애써 부여잡기보다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편을 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끔씩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감옥에서 책 읽기도 지쳐 시간이 늘어질 때, 그림을 잘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면 그 기나긴 시간의 흔적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리고 편지나 엽서를 쓸 때마다 글씨를 잘 쓰면, 예쁘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래도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으니까. 글씨 잘 쓰면 편지나 엽서 받아보는 사람도 더 기분 좋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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