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의미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어린 마음에 친구라는 건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기도 했고 한 번 사귀게 되면 200이면 200을 주었지
결코 50을 주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친구라는 이름으로부터 겪은 상처로 인해 많은 관계를 떨쳐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 시점부터 관계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
매번 당긴다고 당겨지는 것도 아니었고, 민다고 밀어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도파민을 찾아 릴스와 숏츠를 헤엄치던 중,
어떤 프로그램의 요약본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용의 중간만 담겨있었기 때문에 전후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해당 영상의 제목은 '말보다 큰 가르침'이었다.
한 배우의 두 딸이 나와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어. 그렇게 필요한가 했는데 아빠가 친구가 많잖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에 아빠 많이 도와주신 친구들이 많이 왔잖아."
"아빠가 엄마, 할머니한테도 그 친구들 다 소개해줬잖아."
"아빠 힘들 때 도움 많이 주신 분이야, 너(딸) 아플 때 딸기 사주신 분이야."
"뿌리 같은 친구들이 많아서 진짜 부러운 것 같아. 아빠가 걸어온 길이 돋보이는 자리였어."
"난 이런 생각이 들었어. 할아버지가 아빠 진짜 잘 키우셨구나. (아빠에게) 그렇게 친구가 많아서 할아버지는 저기 먼 곳 가실 때도 안 외로우셨겠다."
딸은 고작 12살이었다. 그 조그만 아이가 문장으로 여럿의 어른을 울렸다.
힘들 때부터, 어른이 아이일 때부터 뿌리가 되어준 또 하나의 아이들은 그렇게 가장이 된 어른의 친구로 남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어린아이가 누군가의 뿌리가 되리라 마음먹었을 것이다.
어릴 적 친구와 다투면 부모님은 늘 그러지 말라고,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해대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왜 친구와의 관계로 인해 혼나야 하는지, 투덜댔다.
몇 마디 말보다 부모의 힘든 순간을 함께 겪어주는 친구를 보며, 자식은 친구를 만들어야겠다. 피부로 느꼈을지 모르겠다. 정말 말보다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었으리라.
뒤돌아보면 다사다난한 순간 속에서도 힘이 되어준 이들이 있다.
친구라는 단어가 그저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주변에는 친구 같은 수많은 어른과 동생들이 있었음을 실감한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늘 그 자리에 편안하게 있어주는 존재. 기쁨을 기쁨 그대로 받아들여 배로 만들어주고, 슬픔을 우직하게 나눠가져 덜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존재.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읽어보면서도 떠오르는 누군가. 한 명이라도 떠올릴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다.
영상에서 아버지는 자식의 말을 들으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식이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는 것은. 그저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그 순간이 세상 어떤 순간보다 값지지 않았을까.
그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같은 상황이 있을 때 과연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뿌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