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품은 블랙

섞으면 결국 검정이 된다

by 순간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커피 브랜드의 원두 중에서는

'모든 걸 품은 블랙'이라는 이름의 원두가 있다.

물감의 모든 색을 섞으면 결국 검정이 된다는 사실을 꽤 재밌게 풀어낸 듯하다.

원두에서 느껴지는 다채로운 맛과 향을 색에 비유해 낸 것은 아닐까 한다.


꽤 재미있는 건 다양한 빛을 섞으면 결국 흰색이 된다는 것이다.

같은 색으로 귀결될 것만 같은 게 이렇게나 반대일 수 있다니.


사진을 찍고 약간의 디자인 일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건

둘이 참 닮았으면서 동시에 참 다르다는 것이다.

디자인이 색의 조화라면 사진은 빛의 조화를 보아야 하는 느낌.

이렇듯 무언가엔 다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저번에 올렸던 글 중에 급조된 행동유형 검사를 받으러 간 이야기가 있다.

(궁금하다면 한 번 읽고 와 보시길)

그 검사에는 행동하는 자아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지만 내 외면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내 자아는 약 15% 정도. 그 외에 가려져 있는 내면의 자아가 85%로 나왔다.

그 말은 내가 나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해 그 이상 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내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을 내 지인들은 알지 못한다.

사실 이곳을 빌려 글을 쓰기 전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아무도 모르게 일기처럼 글들을 남기곤 했다.

글을 쓸 적엔 무아지경으로 글들을 휘갈겨썼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 글을 다시 읽기엔 차마 읽지 못할 글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 창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한 번 쓴 글들은 그렇게 묻히게 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보니 그것 또한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겨지더라.


마냥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걸 통해 글을 잘 쓰고 싶어 졌고, 더 많은 글들을 찾아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이 야심한 시간에 글을 쓰겠다고 까불고 있는 꼴이다.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이 세상에 없다지만 나는 스스로 짧은 인생을 살며 많은 일을 경험했다고 자부한다.

실제로도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꽤 재밌는 인생을 살았구나- 정도로 평가하지만

썩 유쾌한 경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하면 누군가 사치라고 얘기하겠지만 말이다)


다양한 경험들은 나를 유연하게 만들어주었다. 변화에 민감하게 해 주었고, 크게 흔들리지 않게 해 주었다.

변화에 흐름에 큰 의식 없이 올라탈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했다. 남들이 다 해 본 것들, 해보지 않은 것들까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의 색을 잃어버렸던가. 모든 색이 검정으로 귀결되듯이 말이다.

한 번 검정으로 물들면, 색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도 까맣게 물들어버린 경험 속에서

새로이 살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냥 검은 것은 그리 좋지 않았나 보다.

이 세상에서 검정으로 남아있기에 좋은 것은 이제는 없으면 안 되는 아이스커피와 옷장에 가득하지만 늘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옷가지들, 그리고 사랑하는 어떤 이의 까만 생머리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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