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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초 Jan 09. 2021

똑똑한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쉽게 빠지는 이유

넷플릭스 리얼리티 쇼, 싱가포르 소셜을 보고

*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성자 본인은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이성애자 관점의 지칭들을 썼지만, 내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지칭들이 모두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 글에는 본인의 성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싱가포르 소셜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봤다. 싱가포르의 영앤리치 밀레니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리얼리티 쇼였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등장인물은 너무나 똑부러지지만 호구같은 연애를 하는 니콜이었다. 진취적이고, 성취욕이 강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표 니콜은 일에서는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싹싹하게 해내지만, 사랑에서는 본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알슨이라는 친구와 을의 연애를 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 넷플릭스 "Singapore Social"


알슨은 니콜과 함께 참석한다는 행사에 가기로 약속하고는 당일에 취소하고, 일이 너무 바빠 니콜과 따로 데이트할 시간을 빼는 것은 힘들다고 얘기한다. 알슨과 니콜은 같이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어짜피 일을 하면서 자주 얼굴보는데 왜 따로 데이트를 하냐는 입장이다.

ⓒ 넷플릭스 "Singapore Social"


니콜의 친한 친구들은 니콜이 너무 아깝다고 얘기하며, 니콜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본다.


니콜은 대답을 회피한다.


사람들은 궁금할 것이다. 니콜처럼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이 왜 딱봐도 본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연애를 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니콜이 어디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니콜같은 여자가 더 을의 연애를 하기가 쉽다.


여기서 니콜같은 여자라고 하면 본인이 설정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힘쓰고, 노력하고, 견디는 걸 많이 해온 사람이다. 즉, 진취적이고 성취욕이 강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사랑을 이뤄내야 하는 목표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연애가 구애-마음 확인-연애 초기-연애 중기~말기로 나눠질 수 있다면 목표달성형은 다음과 같이 연애를 한다.


1. 구애 단계


사랑을 목표로 인식한다는 말은 결국 이 남자가 나를 미친듯이 좋아하지 않아도, 엄청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않아도 내가 이 남자가 마음에 들면 나의 노력을 통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사고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일과 관련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결국 해냈던 그 과정처럼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분석하여 맞춰주거나 밀당 등의 심리 게임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피곤한 연애의 시작이다.


2. 연애 초기 단계


그 후 어렵사리 연애가 시작되고, 서로 신뢰를 쌓아야 하는 연애 초기에서도 연애를 계속 해야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세팅한 채 남자친구가 신뢰를 깨거나 나에게 상처주는 행동을 해도 남자친구를 바꿔보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관계 자체를 끝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즉, 상대의 무책임함 또는 애정 결여를 마치 이겨나가야 하는 도전 과제 쯤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니콜이 친구와 하는 대화에서 이러한 니콜의 사고방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친구가 남자친구가 니콜와의 약속을 당일에 취소한 것에 대해서 남자친구를 비난하자, “꽃병이 이가 좀 빠졌다고 해서 아예 버릴 필요는 없잖아. 고칠 방법을 찾으면 되지”라고 얘기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님에도, 과거에 본인이 목표 지향적으로 노력하여 어려웠던 도전들을 이겨낸 경험을 생각하며 이것 또한 그런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니콜은 친구에게 “네가 말릴수록 오기가 생겨”라고 얘기한다. 분명한 것은, 연애는 "오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애 초기에는 노력을 최소화하여도 서로 너무 잘 맞고 죽고 못 사는게 건강한 연애이다. 만약 장거리나 질병 등 분명한 외부적인 어려움이 없음에도, 단순히 서로 잘 맞지 않아 지독히 노력해야 한다면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일 것이다.  


3. 연애 중기~말기 단계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이성은 아주 명확히 알고 있다. 이 남자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남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성취지향적일수록 본인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본인이 나쁜 남자친구로 인해 겪고 있는 힘듦을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나의 “행복하지 않음”이 과연 정당한 이별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행복하지 않아도 야근을 하며 직장에서 승진을 했다. “그런데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 대순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폭력이나 바람처럼 명확한 이별 이유가 주어졌다면, 이 남자를 떠나겠지만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랑이 충분히 느껴지지 못해 내가 불행하다면 그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이별에는 많은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고, 용기와 자신감은 성취나 똑똑함과 큰 관련이 없다. 아닌 것 같은 관계를 단호하게 끝내려면 우선 자존감이 높고, 본인이 좋은 사람이라는 데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취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본인을 무수히 많은 기준으로 재단하기 때문에 자존감 높기가 어렵다.




사실 연애를 목표 달성 과제처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애는 생계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 아니다. 연애를 하는 주된 이유는 결국 좀 더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런 연애를 함에 있어서 마치 어려운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만큼이나 많은 정신적 에너지가 든다면, 연애를 시작한 취지에 어긋나는 셈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책의 앞 부분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은 남편이랑 헤어진지 얼마 안되어 한 연극배우 남자친구를 만나는데, 서로에게 많은 매력을 느끼지만 성격적으로 너무 달라 매일같이 싸운다. 서로 말도 안되게 상처 주는 말들을 하면서, 서로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빼앗는 싸움을 한다. 그때 그 둘은 이러한 대화를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싸워서 서로를 불행하게 하긴 하지만, 서로 매우 사랑하니 이렇게 그냥 함께하며 매일 불행하게 살까?”


그때 나는 세상에서 저렇게 바보같은 말이 또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주인공 역시 망설이다가 그렇게 하지 않고 여행을 떠난다)


그 어떠한 것도 본인의 행복을 희생시킬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게 애초에 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당신이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성취지향적 여자라면, 어려운 연애 말고 쉬운 연애 하자.

"나쁜 남자 길들이기"가 삶의 도전과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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