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이치로의 스튜디오는 모든 것이 깔끔하고 정갈했다. 마치 일본 브랜드 MUJI를 연상하게 했는데, MUJI와 다른 점은 대부분의 물건들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갈색이 아닌 차가운 느낌의 하얀색과 남색 계통이었다는 점이다. 파리는 물가가 비쌌기 때문에 외식 보다는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가 한 요리들 역시 그의 스튜디오처럼 깔끔했다. 큼지막한 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다진 고기를 안에 넣은 Tomates Farcies가 그가 만들기 좋아하는 요리였다. 소금간만 한 고기의 담백함이 토마토의 과즙과 잘 어울러져 건강하고 깨끗한 맛을 남겼다. 요리를 하는 그의 손놀림은 놀라울만큼 정돈되어 있었고 그는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토마토를 잘라내고 준비된 고기를 넣었다. 그는 일본인답게 본인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의 스튜디오만큼은 그가 추구하는 절제의 미학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랑스 유학 시절 나의 룸메이트는 콩고 출신이었는데,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은 대개 강렬한 원색의 스카프 아래에 가려져 있거나 질끈 묶은 포니테일로 연출되어있었다. 그녀는 "보험"삼아 파리 n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녀는 항상 굵직한 검정 크레용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넷플릭스를 본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기숙사의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서 보거나 혼자서 La Cinema(극장) 에 가서 영화를 봤다. 침대에는 항상 두툼한 빨강색 담요가 올려져있었고, 오래된 기숙사의 나뭇바닥을 맨발로 걸은 뒤에 침대에 올라갈 때는 두 발을 맞붙여 먼지를 털어내는 버릇이 있었다. 현광등보다는 약간은 어두운, 노랑색의 잔잔한 불빛을 좋아했다. 그녀는 고요를 좋아했지만 고독해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초기에 프랑스에서 거주지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어 일본인 친구 리코의 집에서 잠시 얹혀 지냈다. 그녀는 굉장히 아담한 체구와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 도쿄에서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연애에서 그녀가 갑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먼저 연락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표현하는 건 그녀가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스튜디오는 꽤 독특했다. 작은 부엌, 퀸 사이즈 침대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샤워 부스, 그리고 아주 작은 2인용 발코니가 방에 딸려 있었다. 화장실은 복도에 따로 있었다. 나는 방 안에 위치한, 공중전화박스 같이 생긴 샤워 부스 안에서 샤워를 하고, 그녀와 함께 발코니에서 베트남식 땅콩 누들과 와인을 야식으로 먹었다. 그녀의 스튜디오는 다소 무질서했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줄 것처럼 물렁해보이지만 사실은 단단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단호한 중심을 가진 그녀를 닮았었다.
[사진 출처]
Tomato Farcies:
http://www.zencancook.com/2009/09/tomates-farcies/
검정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
https://claralieu.wordpress.com/2008/03/21/drawing-approaches/
파리 스튜디오의 2인용 발코니:
citylovefash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