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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모어 살롱 Dec 13. 2020

비커밍 제인

제인 오스틴 따라잡기

수능이 끝난 고3들에게는 학교에서도 자유를 보장해주신다. 열심히 공부하던 교실에서 밀린 잠을 보충하는 친구도 있고, 선생님들께서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틀어주시기도 한다. 영화를 보다가도 친구들과 떠들거나 잠을 자던 내가 그 날 따라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고 ‘인생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익숙하던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인 <오만과 편견>을 보면서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당시의 여성들과는 많이 달랐던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라는 남자와 서로의 오만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평범한 로맨스였지만 내 마음엔 폭풍이 휘몰아쳤다. 엘리자베스는 집안에서 정해주는 대로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 했던 사회적인 분위기에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은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와 첫 만남부터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고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행동한다. 여자는 상냥한 아내와 엄마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시대적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여자이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자존심도 강한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보며 잊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에게 매료된 나는 <오만과 편견>을 책으로도 읽었고, 작가인 제인 오스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모습이 엘리자베스에게도 많이 녹아있었고 끌리게 되었다. 마침 제인 오스틴을 주인공으로 한 <비커밍 제인>이라는 영화도 개봉을 했고, 그 영화도 홀린 듯이 보게 되었다. 마치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들과도 같은 제인과 톰의 이야기는 현실이기 때문에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제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고, 아직까지도 현실적이면서도 꿈같은 소설들이 사랑받고 있다. 현실에서는 조금 인간관계에도 소통에도 서툴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하고 글 쓰는 실력이 뛰어난 여성 작가! 


조금 더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작은 아씨들>의 둘째인 조. 털털하고 자존심 센 여성 작가 조의 모습이 바로 내가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이상향이었지만 자라면서 잊었던 것이 떠올랐다. ‘맞아,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 조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마음 한켠에 늘 남아있었고 닮고 싶었기 때문에 내 성격도 조와 비슷한 면이 있다. 자존심도 세고, 선머슴 같기도 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에서는 욕심이 큰 점은 비슷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제인과도 비슷하다.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들을 닮고 싶고, 나도 나의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열망이 크기 때문에 매번 비슷한 인물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왔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마음에 쌓였던 감정들이 해소되고, 말로는 차마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 늘 무언가를 썼다. 일기. 펜팔, 편지, 소설, 싸이월드, 블로그, 지금은 브런치까지! 고3 때 교통사고와 스무 살 때 폐 수술을 크게 한 이후로는 건강한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아등바등 학교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10년 가까이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책도 잘 읽지 않고 글로 쓰지 않으니 지금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내는 것이 자유로웠던 10대 시절보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면서 포장해서 좋게 표현하는 방법이 익숙해졌고, 무시당하거나 일에서 배제되지 않으려고 약점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배어버렸다. 


아직 많이 서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의 내 모습을 풀어헤쳐서 글을 쓰는 노력 중이다.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평범한 삶을 내던지고 야만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그림의 세계를 선택한 것처럼 내게도 그런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적인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말로는 다 풀어내지 못하는 마음에 쌓여있는 이 많은 말들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 엘리자베스와 제인, 조와 루이자처럼 작가와 작가를 닮은 글을 보며 신기하다. 마치 자식처럼 닮았으니 말이다. 나도 오래도록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도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제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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