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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현 Dec 31. 2020

먹는 것과 내 존재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넷플릭스 나만 아는 명작: '투 더 본(To the bone)' 리뷰

“먹고 또 체하면 어떡하지, 또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데, 오늘 아프면 일에 지장이 있는데, 또 토하기 싫어.”


나는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먹기 전에 언제나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곤 한다.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대개 2주에서 길면 한 달을 주기로 체하거나 편두통 때문에 하루 종일 토하고 진이 빠져 집에 기듯이 돌아와 쓰러져 잠들곤 한다. 그래서 먹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배는 고프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다.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 하지만 먹으면 아프니 먹기 전엔 항상 고민스럽다. 가끔씩은 한참을 죽만 먹으니 먹고 싶은 욕구가 폭발하여 잔뜩 먹을 것을 사 들고 집에 오는데, 워낙 입도 짧고 위가 작아 절반도 못 먹고 남기거나 다시 탈이 나곤 한다. 건강해서 먹는 것이 삶의 낙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언젠가는 나도 건강해져서 먹고 싶은 음식은 다 먹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도 앓아눕지 않을 날이 올까.

(이후의 내용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작 영화 <투 더 본(To the bone)>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작품으로 신경성 식욕 부진증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영화 오프닝에서 이 영화는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불편할 수 있다는 안내로 시작한다. 그동안 섭식장애에 대해 멀게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외모지상주의의 사회에서 생긴 안타까운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사회에서 외모에 대해 강요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각자 이겨내야 한다고 넘겼다. 하지만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같은 원인은 아니지만 먹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는 것은 섭식장애를 겪고 계신 분들과 내 상황이 비슷하게 느껴져 더 생생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진심으로 음식이 싫어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 





엘런은 그림에 재능이 있는 스무 살이다. 먹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칼로리 계산기처럼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먹으면서도 계산을 한다. 이미 여러 번 병원에 입원도 하고 치료하기 위해 유명하다는 의사를 만나러 다녀보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아버지와 재혼한 새엄마, 이복동생과 함께 지내게 된 엘런은 새엄마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가보자는 권유로 유명한 베컴 박사를 만나러 간다. 지금까지의 의사들과는 뭔가 다른 베컴 박사를 통해 엘런이 온전히 치료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마음이 졸여진다.





이미 여러 번 영양 공급관을 삽입하기도 했고 더 이상 빠질 살이 없어서 몸은 태울 지방이 없어 근육과 장기를 태우기 시작하는 상태이다. 하지만 엘런은 여전히 음식을 먹기 어렵다. 조금만 먹어도 등에 까맣게 흔적이 남을 만큼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매일 밤 초조하게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팔 둘레를 재곤 한다. 베컴 박사의 재활 시설에서 만난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집단 상담도 하고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는지 주기적으로 측정도 한다. 하지만 시설에 있는 모두가 먹고 나면 죄책감을 느끼고 견디지 못한다. 신경성 질병이라는 것이 여과 없이 느껴져 보면서도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몸이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해도 식욕은 있고 배고픔을 느낄 수 있으니까 고통이 더 처절하다.





엘런의 가족 상담이 있던 날, 숨이 턱 막히고 엘런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엘렌의 증상이 나아지기 어려운 이유를 가족 상담을 통해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 새엄마는 엘런을 걱정하는 마음은 있는 것 같지만 말이 너무 많고 엘런의 블로그 구독자가 죽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도 엘런의 상처를 보듬기보다는 가십거리를 떠드는 입장이었다. 엘런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그 일을 반복해서 떠들어댄다. 블로그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그려 올리는 엘런을 좋아하던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엘런의 팬이라며 편지를 보내고 엘런의 그림을 정말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자살을 하자 그 소녀의 부모는 엘런에게 죽음의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낸다. 엘런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 부모의 말과 그 일은 엘런의 책임이라며 매번 상처를 헤집는 새엄마의 가벼운 말에 섭식장애 증세가 심해져 왔다. 걱정하는 마음이 무색하게 가볍고도 가벼운 말들이 엘런의 마음을 더 차갑고 폐쇄적으로 만든다. 친엄마는 어릴 때부터 엘런에게 정을 많이 주지 못했고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사는 삶을 꾸리고 개척하는데 조금 더 바빠 엘런에게 모든 걸 쏟아부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아빠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도 않고. 이복동생이지만 켈리는 엘런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길 원한다. 냉소적이고 반항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엘런도 동생과 있으면 조금은 밝아지지만 동생 혼자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는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아 몇 겹의 흉터와 상처가 생긴 엘런의 마음을 치유해주기엔 역부족이다. 


아마도 엘런의 병은 사회에서 오는 몸에 대한 강박도 원인이지만 엘런이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사람들과의 관계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특히 가장 가깝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인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말들이 엘런의 마음속에 깊은 어둠을 만들었고, 엘런은 스스로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사랑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면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인 먹는 것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엘런은 맛있는 음식으로 인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엘런의 마음이 먹는 것을,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이 루크와의 관계에서도 보였다. 이미 엘런의 블로그를 통해 엘런을 알았고 호감을 가지고 거침없이 다가오던 루크가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더 깊이 다가오려고 하자 엘런은 갑자기 루크를 밀쳐낸다. 마치 상처 받은 동물이 으르렁거리듯이. 베컴 박사도 루크도 엘런이 가시 돋친 말들을 하는데 말이 안 되는 말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엘런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겁먹고 도망가고 회피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니 답답했을 것이다. 결국 스스로 현 상황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힘들지만 빠져나와야 하는데, 타인이 대신해줄 수 없으니 엘런에게는 허울 좋은 말뿐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엘런도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럴 용기도 자신도 없을 수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어보지만 결국 행동은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 괴로웠을 것이다.


말과 글은 생각이 형체를 가지고 표현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어떤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감추려고 포장을 하고 다른 말을 한다 해도 결국엔 그 마음의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외롭고 두려운 엘런의 마음은 루크의 적극적인 표현에도 오히려 반감을 느끼며 고슴도치같이 날을 세우고, 달팽이같이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서서히 열리는 것 같던 마음은 과거부터 들어왔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닫혔고, 모든 관계가 상호 작용이 되지 않았다. 


최근 사회가 더 각박해지고 험악해져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이 많이 줄었다. 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병이 들고, 다양한 병과 증상으로 표출되지만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은 바로 마음에 있다. 내 존재가 사랑받을 수 있고 쓸모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텐데...





엘런은 이제 정말 목숨이 위태롭다는 경고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친엄마에게 간다. 저녁을 먹고 엘런에게 관광객들이 묵고 가기도 하는 작은 천막에 방을 마련해준 엄마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꺼내 이야기한다. 산후우울증으로 어린 엘런을 잘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고백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엘런이 죽는 것을 원한다면 그것까지도 받아들이겠다는 엄마를 보며 꽁꽁 얼어있던 두꺼운 얼음 같은 엘런의 마음에 쩡! 하며 균열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의 품에 안겨서 아기처럼 우유를 먹는 엘렌을 보며 마구 엉켜있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어 결국 엉킨 실을 다 풀어내는 느낌이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나 또한 엄마의 뱃속으로 들어가 아무런 상처도 문제도 없던 때로 돌아가는 듯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로를 받았다. 결국 엘런의 이 모든 불행의 시작으로 돌아가 가장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들은 것이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고, 비록 스스로의 선택이 엄마를 평생 슬프게 한다 해도 무한한 지지를 하겠다는 확언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엉킨 실타래를 가위로 툭툭 잘라내는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해결책을 썼다면, 엄마와의 시간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고 앞으로 엘런의 미래는 점점 나아질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결국 엘런의 존재가 시작된 그때로 돌아가 꼬인 부분을 풀어야만 그 이후에 생긴 모든 문제들 또한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한 엘런이 새엄마에게도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포옹을 하며, 베컴 박사의 시설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뼈만 남아가던 엘런이 엄마와의 시간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과 같아졌다. 영화는 희망적인 분위기로 끝이 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섭식장애로 고통받으면서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신경성 식욕 부진증도 결국 개인이 외모에 집착하면서 만들어지는 문제라고 치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깡마른 몸매가 아니면 부끄럽고 존재 이유가 없다는 생각, 더 나아가 나는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는 깊은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사랑받을 존재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옥죄는 일이 이상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외모로 인해 존재를 부정당하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고, 자신을 더 비하하고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이 형체를 가지고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말을 여러 번 들으며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들었을 때는 더 타격이 클 것이다. 비록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더 외모를 강요하고, 여성들이 외모로 인한 피해도 많이 받고 있지만 남성들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획일적인 미를 강요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공공연히 놀림거리가 되고, 못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한다. 당연히 외모가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 합하지 않은 사람은 점점 주류에 속하지 못하게 되는 분위기 속에서는 섭식장애 외에도 수많은 병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점점 포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최근 코로나로 인해 소통이 사라지고 고독과 우울함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더욱 인정과 포용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며 나는 한참 많이 아프던 시절의 나를 많이 떠올렸다. 중3 때의 난소 물혹 제거 수술과 고3 때의 교통사고와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까지 이어진 늑막염으로 인한 큰 수술까지 겪은 나는 그 시절 마음이 더 병들어 있었다. 갈비뼈를 잘라내고 대동맥을 건드리는 큰 수술이라 온 몸에 뼈만 남을 정도였는데, 아프긴 하지만 몸이 매우 야위어져서 내심 좋았다. 왜냐하면 뼈가 도드라지고 안색이 어둡고 좋지 않았는데도 아픈 것에 비해선 살이 많이 빠지지 않았다며 이야기하는 말들에 마음도 많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해져서 다시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로. 그리고 내 마음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처럼 메마르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뒤처진 것 같고, 건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더불어 체력이 달리니 아무리 따라가도 건강한 사람들의 실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에서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은 이 열등감이 나를 따라다녀 앞만 보고 맹목적으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몸이 다 회복하지도 않았는데 밤을 새우며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결국 몸도 계속해서 아플 수밖에 없었고 마음의 힘도 약해지기만 해서 무너지는 순간이 왔다. 지금은 내 몸도 마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사랑으로 근육이 생겨 많이 나아졌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건넨 따뜻한 말들이 내 마음을 치유하고, 마음의 체력을 천천히 증진시켜 주었다. 아직도 마음의 근육이 약해지면 나는 아무 데도 쓸모없는 사람인 것만 같고, 나의 부족하고 모난 부분과 지난 상처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곤 한다. 병든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기 어렵지만, 병든 마음도 몸을 병들게 한다. 더 이상 세상에 위로와 사랑이 넘치도록 필요한 엘런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라는 것도 많겠지만 우선은 나도 내가 받았으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포용해주는 말부터 시작해야겠다. 글을 쓰며 가장 먼저 내 마음이 과거의 상처에서 해방되고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내가 상처 받았던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쓰지 않아도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 주머니 안에 어떤 마음들이 있는지 알게 되니 인정하게 된다. 인정하고 나면 그 마음을 계속 품고 있지 않아도 될 경우엔 흘려보내고, 두고두고 많이 힘들었겠다 위로해주거나 진짜 잘했다 칭찬해줄 마음은 남긴다. 글을 쓰며 다른 사람에게도 내 글이 전하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질 것을 염두에 두니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의도치 않은 내 마음의 치유가 시작되었고, 이제는 이 에너지를 내게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해주었던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주려 한다. 그들도 힘들고 지치는, 존재가 부정당하는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고 치유할 마음의 근육이 생길 수 있도록 말이다.






*라라가 사랑하는 배우, 릴리 콜린스

나는 주로 마음에 든 배우를 중심으로 영화를 찾아본다. <섀도우 헌터스>, <러브, 로지>에서 본 릴리 콜린스의 사랑스러움에 출연작들을 많이 찾아봤는데, 특히 <투 더 본>은 나만 아는 명작에서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올 한 해동안 넷플릭스를 통해 릴리 콜린스의 출연작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나 릴리 콜린스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과도 인연이 깊은 터라 연말을 맞아 좋았던 영화는 다시 한번 보고, 얼마 전에 공개된 <맹크>도 볼 생각에 기대된다.

릴리 콜린스가 워낙 사랑스러운 이미지라 가벼운 작품에만 출연할 것 같았지만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왔다. 이미지와 정말 잘 어울리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같은 작품에서도 큰 매력을 뽐냈지만 <옥자>,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맹크>, <그 규칙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아요>, <레 미제라블>, <톨킨>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도 그녀의 매력은 넘친다. 연기도 훌륭하지만 그녀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반 왕따 단체의 초대 대사가 되었고, 섭식 장애 복구 조직은 릴리가 과거 식이 장애를 겪었던 경험으로 연기력이 더 사실적으로 빛났던 영화 <투 더 본>의 공로를 치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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