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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모어 살롱 Dec 31. 2020

빅토리아 시대부터 오늘: 여성 작가들의 원작과 영화

-라라가 사랑하는 영화: 작은 아씨들, 오만과 편견, 에놀라 홈즈, 건지

내 꿈은 작가였다. 여섯 살 무렵 이제 막 혼자서 어린이용 책을 읽기 시작한 내게 함께 살던 이모는 월급 받는 날이면 내 손을 잡고 서점으로 데려갔다. 그때부터 책 속의 세상에 푹 빠져버렸다.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책 속에서는 시대, 나라, 언어, 나이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시대, 어느 나라라도 갈 수 있었다. 그 어린 시절의 내게 작가가 되고 싶다, 말이 서툴지만 글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특별한 작품들부터 올여름 내 마음을 쿵쿵 신나게 했던 작품들이 있다. 가슴 설렐 만큼 멋진 여성 작가들의 원작 소설과 그 소설을 멋지게 영상으로 옮긴 영화들을 소개한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2차 대전 이후,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네 작품을 돌이켜보며 2021년에는 더 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고,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고, 항의하기에는 미묘하게 부당한 대우로 가슴앓이하는 일들이 없길 다시 한번 바란다. 








내 가슴속 첫사랑이 된 <작은 아씨들>



미국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품인 <작은 아씨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책으로 읽고 푹 빠져버렸던 책이다. 당시에는 어린이용으로 읽었지만 작년에 새로 출간된 번역본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고 있다. 작가 본인의 자전적인 소설로 마치 가의 네 자매가 겪는 이야기인데, 그중 글을 쓰는 둘째 조가 내 마음을 빼앗았다. 자존심 강하고 모난 부분도 있지만 여성이 사회에서 그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에 꿈을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조는 작가 본인과 많이 닮아있기도 하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신념을 행동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가계를 위해 팔 걷고 나서서 일을 했으며, 노예제 폐지론자였으며 여성주의자였다. 실제로 작가는 미국에서 처음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고 시행된 첫 투표에서 투표를 시행한 여성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당시 남성 작가들만 인정받던 분위기에서도 좋은 작품을 쓰는 멋진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 다시 한번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는데 무엇보다 여성 작가의 원작을 멋지게 영상을 옮긴 여성 감독님과 배우들 덕분에 영화도 빛이 났다. 


올여름 작은 아씨들 영화를 보며 떠올랐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이었던 글쓰기가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을 읽으면서 싹트기 시작한 꿈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꿈은 내가 방치하고 짓누르고 물을 제대로 주지 않을 때에도 착실하게 자라 내 마음을 두드리며 언젠가 햇빛을 쬐어주고, 물을 주며 가꿔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쓰는 이 글은 올해 내게 있었던 가장 큰 도전이자 결심을 기념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올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와 출퇴근을 병행하며 힘들기도 하고 적응도 하지 못한 시간도 있었다. 심각한 상황에 두렵기도 하고 해결책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 시기에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는 마음이 불쑥 생겼다. 이것저것 도전해보기도 하다가 마음속에 언제나 손 닿지 않는 무지개 같던 꿈이 떠올랐다. '글쓰기'.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설레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이야기는 블로그에 쓰기는 쑥스러워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는데, 한 달 전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올 해가 가기 전에 써야겠다 마음만 먹고 있었던 주제이다. 내가 사랑에 빠진 여성 작가들과 작품, 그리고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세상에 나온 영화들에 대해서 말이다. 








로맨스 소설의 시작, 오만과 편견


로맨스 소설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영국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인 <오만과 편견>. 이 작품은 고3 때 수능이 끝난 뒤 학교에서 영화로 먼저 만났다.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알게 된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와서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끝난 후에는 우리 반에서 내가 가장 이 영화에 푹 빠져서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 덕에 책으로도 읽고, 제인 오스틴의 전기도 읽게 되었다. 2009년에는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비커밍 제인>도 보며 제인 오스틴과 그녀의 작품의 엄청난 팬이 되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상 결혼하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존재였고, 살림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와는 어우러지지 못한다. 그리고 수많은 오해와 사건을 거치며 남자 주인공인 다아시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오늘날의 수많은 로맨스 소설과 드라마, 영화들의 이야기 구조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후대의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 내 마음을 빼앗겼던 <작은 아씨들>도 생각이 많이 났다. 주인공들이 글을 쓰고 자존심이 강하기도 한 여성들이었고, 무의식 중에 이들을 닮고 싶었다. 조와 엘리자베스처럼 항상 책을 읽으며 글을 잘 쓰고 싶었고, 진정한 사랑을 언젠가는 찾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이제 흰 종이와 깃털 펜 대신에 나는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의 흰 여백을 채워나가며 다른 시대, 다른 언어로 나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아픈 마음을 서로 치유해주는 따뜻한 건지 섬의 사람들,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


잠이 안 와 넷플릭스를 둘러보다 특이한 이름의 영화를 발견했다.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북클럽'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아무런 기본 정보도 없이 보기 시작해서 잠을 자는 것도 있고 단숨에 끝까지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 시대의 여성 작가 줄리엣. 어느 날 줄리엣이 헌책방에 팔았던 책에 적혀있던 주소로 편지가 온다. 그렇게 줄리엣은 건지 섬을 알게 되었고, 짐을 싸서 건지 섬으로 향한다. 건지 섬의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을 취재하고 글을 쓰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건지 섬에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있었던 끔찍한 일들을 영화는 건지 섬의 사람들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치 옆집의 사람들이 겪는 것처럼 가깝게.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정말 이런 일도 있었겠구나 피부에 와 닿아 마음이 아팠다. 그런 사건 후에 서로를 치유하고 보듬으며 북클럽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줄리엣은 마음을 활짝 열게 되고, 결국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로맨스가 주를 이루지만 여성 작가로서의 줄리엣의 생활과 글을 쓸 때의 치열한 고민과 건지 섬 주민들의 사연이 흡입력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검색해보니 원작 소설이 있었고, 작가인 메리 앤 셰퍼는 친구의 "닥치고 글을 쓰라!"는 말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건지 섬의 이야기를 접한 뒤, 소설 속 줄리엣처럼 바로 건지 섬으로 달려갔던 일을 떠올리고 오랜 시간 후에 이 소설을 집필하였다. 초고가 완성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메리 앤 셰퍼는 건강 악화로 숨을 거두었고, 그녀가 마무리를 부탁한 대로 조카이자 동화 작가인 애니 배로우즈가 정리와 출판까지 진행했다. 

마음으로만 꿈꾸던 것을 실제로 움직여 행동으로 옮겼을 때 현실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대와 환경, 성별, 나의 처지 등을 이유로 고민만 하지 말고 우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행하면 그 힘이 점점 더 큰 행동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보다도 오래전에 그렇게 행동하고 싸워온 모든 여성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그들의 멋진 업적들을 여러 분야에서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기쁘게 글을 쓸 수 없었을 테니.







사랑스럽고 당돌한 탐정, 에놀라 홈즈


빅토리아 시대를 살아가지만 발랄함과 통통 튀는 매력은 2020년의 날 것과 같은 느낌의 에놀라 홈즈. 이 깜찍한 탐정은 본인의 이름은 거꾸로 하면 'alone', 즉 혼자라는 뜻이며 모든 것을 에놀라 스스로 해내길 바랐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소개하며 등장한다. 셜록 홈즈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한 이 영화 또한 여성 작가인 낸시 스프링어의 소설이 원작이다.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지만 에놀라는 셜록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특히 6권까지 있는 소설 중 <사라진 후작>을 영화로 옮겼는데, 전반적으로 에놀라와 어머니의 이야기와 사라진 후작을 찾는 내용이 함께 진행된다. 에놀라가 탐정으로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해결하는 과정보다는 에놀라와 오빠들, 어머니에 관한 소개를 하며 앞으로 시리즈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에놀라의 이름을 남다르게 지어준 어머니답게, 에놀라의 생일날 아침에 어머니는 사라지고 어머니를 찾으며 에놀라는 세상 밖으로 나선다. 집을 벗어난 것은 처음이라 서툴고 무섭기도 하지만 에놀라는 침착하고 재치 있게 모든 위기를 넘기고 어머니도 찾는다. 어머니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시위를 계획하고 무기도 만들며 동료들과 힘을 모으고 있었다. 자신의 시대보다 에놀라의 시대는 여성으로서 살아가기에 더 좋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에놀라는 여자라고 차별하지 않고 남자들만 배우는 학문들과 무슬까지도 직접 가르친 보람이 있도록 아주 씩씩하고 힘차게 '혼자' 앞으로의 삶을 계획한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당돌하게 말을 걸어오는 에놀라의 모습에서 나는 오늘 소개한 작품들에서부터 이어져 온 여성으로의 삶의 현재를 보게 된 느낌을 받았다. 주위에선 말도 안 된다 혼내고, 여자니까 안된다고 말리고, 같은 여성들로부터 별나다는 소리를 들어도 도전하고 조금씩 성취해온 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여성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지금까지는 내가 운이 좋게도 차별받은 경험이 없고 여성이라 불리한 상황이 없어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 또한 작은 성취라도 이루어 내 후배들이 힘들지 않도록 길을 열어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네 영화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영상미 또한 영화를 보는 큰 기쁨이 되었다. 

따뜻하고 멋진 원작 소설들과,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감성과 꿈을 함께 키우게 된 나는 이렇게 브런치에서 내 마음을 하나씩 풀어내게 되었다. 2020년 온 세상이 고통스러운 한 해였고 아직도 코로나로 인해 불안하고 힘든 시기이지만, 나조차도 뿌옇게 옅어져 모른척하고 있던 꿈이 다시 색을 찾았고 지금 브런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은 모두에게 건강하고 희망적인 한 해가 되길.




작가를 꿈꾸던 어린 라라제이의 이야기는

매거진 <흔들리는 카약에서 중심잡기>의 '비커밍제인'에서 더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larahealin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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