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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현 Dec 13. 2020

말 공포증

나는 말에 서툴다. 말을 잘 못하다 보니 아주 간단한 말을 할 때도 긴장이 되고 머리가 하얘져 아주 엉뚱한 말을 한다거나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말을 할 때는 연습도 할 수 없고 준비도 할 수 없어 이미 여러 번 실수를 하고 오해를 산 경험이 떠올라 바보같이 멍하게 있다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당황스럽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귀어 그 친구가 알려준 비밀 일기장에 둘이 일기도 쓰면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작은 일로 오해가 생겨서 다투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친구와 이전 같은 사이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 사이에 다른 친구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에 빚도 갚을 수 있지만 돌이킬 수 없이 관계가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후로는 말을 할 때 긴장이 되고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경험을 했고, 몇 번 반복되자 말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대화가 인간관계의 기본인데 대화가 두렵고 어려우니 관계를 맺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져야 할 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업무적인 대화를 할 때 모두 내게는 손에 땀이 나고 발표할 때만큼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다. 특히 일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 실수를 할 때도 많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서 일이 지연되거나 팀에 피해를 끼칠 때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을 만큼 내가 싫고 절망적이다. 언제인가부터는 전화 공포증도 생겼다. 오직 말로만 소통해야 하니 더 긴장이 되고 떨려 전화보다는 할 수만 있으면 문자나 메일, 메신저로 이야기하려는 나를 발견하고 생각보다 말에 대한 공포가 더 심하구나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피하고, 속으로는 떨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하니 오히려 사람들도 그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에 서툴고 말하는 것이 두렵다고 인정하고 많이 부딪혔다면 지금의 나는 소통을 더 잘하는 사람이었을 텐데 아쉽다. 말이 부족하면 글로 많이 표현하고, 부족하지만 말로도 표현하려고 했다면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에 상대방도 이해하고 나도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방법을 익혔을 것이다.


부지런히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도, 글도 모두 언어를 사용하는 소통의 도구이지만 느껴지는 편안함의 정도가 내게는 극과 극이다. 글을 유려하게 잘 쓰지는 못하지만, 생각할 시간도 수정할 수도 있고 조금 더 정교하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 내게는 글이 매우 특별하다. 말로 소통하는 데 서툴고 어색한 내가 세상을 향해 조금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 나를 표현해낼 수 있는 표현의 도구가 글이기 때문이다. 


말이 서툴고 어려운 나에게 맞는 소통 방법을 하나씩 찾는 중이다. 전화를 할 때는 미리 이야기할 내용을 간단한 키워드로 정리하기, 회의나 발표를 할 때는 미리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대본을 적고 그 대본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해보기, 말실수를 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때는 바로 사과하고 상황을 설명하기, 마음을 표현해야 할 때는 편지 쓰기, 매일 저녁 일기를 쓰며 머릿속에 안개같이 뿌옇게 둥둥 떠다니는 말을 정리해보기… 아직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방법들을 사용해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섞여서 대화하고 조금씩 소통 능력이 나아지고 있다. 글쓰기는 말하기를 도와줄 최고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 가지는 절대 뗼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보완할 수 있다. 


문득 이렇게 내가 말이 서툴고 표현을 잘 못하는데도 내 곁에 있어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고마워진다. 내게서 원하는 만큼의 표현을 듣지 못해도, 의도하진 않았지만 뾰족하게 혹은 못되게 튀어나간 말들에 상처 받았을 때도 있었을 텐데 진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고 믿어준 것이니까. 말이 서툴다고 내 마음 알겠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글로 더 많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 표현을 하면 할수록 느는 법이고, 말도 할수록 시행착오를 겪으며 늘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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