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
3주간의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나고 어학원이 다시 시작되었어.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그 휴가 기간이 리프레쉬가 되었는지 얼굴도 밝고 더 친절해졌어. 새로 온 학생들도 많았는데 한국에서 온 고등학생 아이들도 몇 명 있었어. 내 첫 제자보다도 나이가 어린아이들이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르길래 같이 한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어.
영국에서도 중심지가 아닌 탓에 한식을 파는 곳이 많지가 않아. 버스를 타고 구글 지도를 따라가며 도착한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음식 냄새가 물씬 풍겼어.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등을 주문을 하고 앉아 있자, 주인아주머니들이 말씀하셨어.
"한국 사람이에요? 아이고, 다들 예쁘게 생겼네."
"네, 하하. 감사합니다."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 표정이 어색한 것을 나도 느낄 수가 있었어. 왜 그랬는지 그 날 곰곰히 생각해보니 알겠더라고. 첫 만남에 외모에 대한 언급을 듣는 것이 너무 어색했던 것 같아. 한국에서는 초면에 외모에 대한 칭찬을 주고받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잖아. 오히려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고 서로 기분 좋아하지.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렇지가 않아. 반년 이상의 외국생활 동안 그 문화에 익숙해졌나 봐. 영국에서는 보통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할 때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언급하지. 예를 들어,
"I like your hat."
"I like this colour."
그러면 상대방은 "Thank you." 하며 기분 좋게 대답해.
어느 나라에서나 미의 기준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초면부터 그것을 언급하는 나라도 참 드문 것 같아. 그렇게 외모를 최우선으로 하는 가치관이 누구에게는 상처를 주는 칼이 되기도 하지.
몇 년 전에 친구의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 그 친구는 나에게 '예쁘게 생겼네.'라고 말했어. 나도 예쁘다는 말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동갑인 친구가 나를 '평가'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더라고. 내가 원하지 않는 외모 평가는 그것이 칭찬이든 욕이든 달갑지 않은 것 같아.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모 평가가 일상이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 기준을 원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멋대로 들이대는 것은 폭력이야.
한 번은 어학원의 브라질 친구가 물었어.
"한국은 성형을 많이 한다며? 왜 그러는 거야?"
이 질문에 대답을 하며 한국의 취업성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줬더니 그 친구는 경악했어. 나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인다는 얘기에 놀라워하는 그 친구가 놀라웠어. 내 머릿속에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는 게 당연한데, 이 친구에게는 아닌 거지. 너무 충격적이었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고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게 되는 거야.
영국에 살고 있는 지인은 영국이 한국보다 좋은 이유가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라고 했어. 한국에서는 '그렇게 먹으면 살찐다, 다이어트는 언제 할래, 살만 빼면 남자 친구 생길 텐데.' 등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잖아. 어떤 도움 하나 주는 거 없이 말이야. 그런데 여기서는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자존감 낮은말을 하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너는 그대로 충분히 예뻐.'라고 한다는 거지.
나도 이제 외모 평가가 어색한 걸 보니 한국을 떠난지 좀 되긴 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