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방에 걸릴 '한 장의 그림'을 위하여
호텔 아트페어에 대한 기억
2007년 겨울로 기억합니다. 당시 한국 현대미술시장이 막 뜰 때였지요. 덩달아 많은 갤러리에서는 컬렉터들을 상대로 해외여행을 겸한, 아트페어 참관 프로그램들을 많이 기획했습니다. 그때 마이애미 해변의 카탈리나 호텔에서 열린 브리지 아트페어(Bridge Art Fair)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호텔 룸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갤러리나 국·공립 미술관, 혹은 백색 입방체 형태의 가벽으로 구성된 기존 미술 견본시장에 익숙했던 저에겐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호텔 아트페어의 역사
앞에서 언급한 브리지 아트페어를 비롯해 마이애미 스코프나 마이애미 아트 바젤과 함께 열리는 아쿠아 아트페어(Aqua Art Fair)는 호텔 룸을 대여해 시작한 실험적인 프로젝트였으나, 이제는 세계적 아트페어로 성장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드라이브 인 모텔이나 작은 호텔을 빌려 전시회를 진행하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림은 이제 고답적인 갤러리의 경계를 넘어, 어디서나 걸리고 향유되며, 소비되는 일상의 오브제가 되었지요. 이 과정에서 최근 부티크 호텔과 라이프스타일 호텔이라 부르는 유형의 호텔들은 이러한 아트상품들을 유치하고, 디스플레이하며 나아가 개성이 뚜렷하고, 삶에 대한 주제의식과 쉼의 방식을 독자적으로 찾으려는 고객들을 위해 아트마켓 자체를 호텔에서 열곤 합니다.
2009년 한국에서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가 열리는데 그 이후로, 매년 이 행사는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를 기획하시는 금산 갤러리의 황달성 대표님과는 친분이 깊습니다. 그 덕택에 오프닝 파티에도 자주 초대받기도 했고, 패션을 주제로 강연도 여러 차례 했지요. 이번에도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리는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에 다녀왔습니다. 아티스트 토크도 겸해서 했지요.
호텔 아트페어는 말 그대로, 그림이 전시된 공간이 기존의 전시장과 달리 호텔이라는 아늑한 실내공간에서 펼쳐집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갤러리들은 고객들에게 ‘미술품을 사서 집에 가져가 직접 걸어본 후 마음에 들면 산다’는 Home Loan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특히 미술품 컬렉팅을 시작할 때 갤러리 내부의 인테리어나 판매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소비자가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는 필수적이지요. 실제로 갤러리에 전시를 보러 갔다가 '작품에 필이 꽂힐'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구매의사를 밝히고 작품에는 흔히 빨간색 스티커를 붙여놓지요. 하지만 이때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작품을 내 집에 들인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림을 산다고 하면, 어디에 걸지, 어떤 방에 배치할지, 그 방의 벽지의 색은 어떤지, 방의 전반적인 느낌과 인테리어 가구가 통합적으로 연결되어야죠. 그런데 그림을 구매할 때, 이 과정을 많은 초보 컬렉터들이 놓칩니다.
컬렉터와 예비 소비자들에겐 침대와 콘솔(작은 장식용 탁자), 소파와 책상들이 놓인 호텔 룸은 실제 집의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호텔 아트페어는 그림을 구입해 자기 집 벽에 걸어놓을 경우에 대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이 되는 셈이지요.
미술품 구매는 결국 자신의 집에 작품을 걸 때 완성되는 것이므로, 호텔이라는 전시공간에 걸린 미술품에 호감을 느낀 관람자는 구매욕구가 높아지게 됩니다. 호텔 아트페어는 그런 점에서 구매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내 집과 작품, 취향을 하나로 묶어내려는 노력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번 아트페어도 딸 서아와 아내와 함께 참관했습니다. 아이는 한창 캐릭터에 눈을 뜰 떼여서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나 아트 토이에 유독 많은 관심을 보였고요. 라운지에 들러 차 한잔 하며 쉬고, 객실 구경과 함께 놓인 그림들과 조형물들을 보는 즐거움이 유독 컸습니다. 늦기 전에 들러보세요. 그리고 내 집에 걸어놓을 '한 장의 그림' 하나 정도 마음속에 정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