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블리 사태를 생각하며-셀레브리티에 중독된 팬덤의 내면
Photo Credit : Vogue Korea
임블리,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탐나는 라이프스타일은 브랜드가 된다." 2017년 12월 보그와 인플루언서 임블리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녀는 탐나는 라이프스타일을 '일상'이라는 친밀함의 옷을 입혀 우리에게 보여주었지요. 보그 vogue의 논평은 항상 그러하듯 100퍼센트 옳습니다. 1700억의 매출 신화를 만들어낸 84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렸던 임블리 제국이 요즘 위기입니다. 호박즙 사태에서 불거진 임블리 사례는 지금껏 가족기업으로서의 방만 경영과 권위적 고객응대, 명품 카피와 협력업체 갑질까지 하나하나 불어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집단 피해를 호소하며 법에 기대는 동안, 임블리는 온라인에서 지금껏 보여준 소통의 여왕이란 면모와는 달리 댓글 삭제 및 변명, 피해자 계정에 대한 고소까지 일삼으며 현 사태를 넘어가려 하고 있고요. 며칠 전 진행한 소비자 간담회는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을 교묘히 피해 가며 사과 퍼포먼스로 변질되었습니다. 임블리 측은 질의응답이 녹화된 동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해놓고 '불가'라는 최종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무엇이 걸리는 걸까요?
15도 미녀와 45도 미녀 이야기
임블리는 자신의 고객을 블리 님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블리란 호칭은 임블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자발적으로 그녀가 만든 취향 공동체의 성원이 된 이들에게 붙여진 것입니다. 중국의 예를 한번 들어볼게요. 중국에도 왕홍이라 하여, 임블리와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존재합니다. 중국에서는 SNS를 통해 엄청난 구매력을 행사하는 여성 인플루언서를 15도 미녀로 부른답니다. 45도 미녀란 표현도 있답니다. 내용이 궁금해 알아보니, 45도 미녀란 확고부동한 인지도를 얻은 연예인들, 배우들을 칭하는 말이래요. 고개를 45도 각도로 들어서 우러러봐야 하는 존재란 것이죠. 반면 15도 미녀는 고개를 살짝만 들어도 볼 수 있는 우리 곁에 있는 친근한 미녀랍니다. 15도 미녀가 놀라운 것은 그녀가 추천하는 화장품, 패션을 소비한다면, '살짝 깨끔발만 들어도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겠지'하는 환영을 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친숙함과 정서적 거리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다가가지요.
왜 우리는 임블리의 시녀가 되는 것일까?
임블리 브랜드에서 나온 각종 화장품, 패션, 먹거리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사용했다'는 말을 제품 품질에 대한 보증처럼 믿는 소비자들의 뇌 속엔 어떤 메커니즘이 자리할까요? 제가 궁금했던 건 바로 이겁니다.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고, 이것이 확인되고, 수많은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언론이 검증을 해도, 계속 임블리를 믿는 이들, 그녀에 대한 충성서약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임블리 사태는 놀랍게도 인간 내면의 자유와 순응이라는 꽤 육중한 인문학적 화두를 던져줍니다. 현대사회에서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유를 향한 꿈'에 접근합니다. 이때 우리는 놀랍게도 '개인 자체'가 자유를 찾아가기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집단적 성원권'을 얻는 쪽을 택하죠. 이 집단의 우두머리가 보여주는 환영과 비전을 '내면화 interalize' 함으로써 자유의 추구라는 노력이 행여 가져다줄 수 있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극복하려 합니다.
네 이웃의 라이프스타일을 탐하지 마라
라이프스타일이란 단어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장 규범과 화장법, 신체 표현과 같은 것들은 항상 삶의 방식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런 생활방식, 라이프스타일은 때로 컬트 Cult 에 가까운 지위를 획득하지요. 옷과 액세서리에서 상표가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보세요. 혹은 고딕이나 펑크 같은 하위문화가 복장 규범에 어떤 규준을 적용하고 영향을 미치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때 이런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특정한 집단의 추세에 어느 정도 순응하는지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평가된다고 생각합니다. 집단 성원으로 인정받는 자격은 해당 집단의 생활 방식에 얼마나 적응하는지에 따라 좌우되죠. 집단 내 지위도 순응과 헌신이 클수록 많은 이익을 누리게 됩니다. 실제로 쇼핑몰은 구매액을 표면적으로 하여, 구매에 따른 고객리뷰에 점수를 부여하고 이에 따라 소비자 계층의 위계를 만듭니다. 여기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의 깊이가 달라지죠. 여전히 임블리를 믿는 이들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믿음이 깨어질 때, 자신도 깨어진다고 믿고 있지요. 눈 앞에 나타나는 모순에 여전히 눈을 감고 눙치는 이유입니다.
임블리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임블리는 한때 탐나는 라이프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이 땅의 많은 인플루언서 기반의 브랜드가 이런 토대 위에서 구성되고 흘러왔습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브랜드를 성립시키는 철학과 긴 호흡의 목적이 부재한다는 점입니다. 임블리 외에도 이런 쇼핑몰 브랜드가 부지기수입니다. 인플루언서 경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유에의 갈망'과 '명성'을 얻기 위해, 깨끔발을 들어 자기와 동일시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를 찾겠지요. 이러한 자아 찾기 여행을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인플루언서의 제품 데모나 조언은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한 측면' 혹은 잘 차려진 뷔페의 작은 요리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