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쓰는 대신, 머문 날들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라는 북도슨트의 미술 에세이 공저 프로젝트에 공동저자로 참여하며, 그림 앞에 머무는 시간을 글로 옮겼다.
먼 곳에서 시작했다. 고흐의 별이 소용돌이 치는 하늘 아래 고흐의 별이 소용돌이 치는 하늘 아래서는 불안조차 빛이 되었고, 밀레의 들판에서는 흙과 노동이기도로 변했다. 프리다 칼로의 찢긴 마음에서는 고통이 꽃잎처 럼 피어났고, 클림트의 황금빛 속에서는 사랑과 죽음이 하나의 숨결로 이어졌다. 유럽의 미술관들을 거쳐, 멕시코의 푸른 집을 지나, 빈의 황금빛 홀을 통과해, 나는 결국 가장 가까운 곳으로 돌아왔다.
십장생 병풍 앞에 섰을 때, 나는 비로소 집에 온 것 같았다. 고흐의 격렬함도, 프리다의 고백도, 클림트의 화려함도 필요 없 었다. 십장생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것들이었다. 할머니 의 옷장에 붙어 있던, 명절날 병풍으로 둘러쳐진, 떡집 벽에 걸 려 있던 그 익숙한 상징들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한 작업이지만, 동시에 가장 확실한 연결의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고흐를 통해 누군가의 불안을 위로하고 싶었고, 밀레를 통해 누군가의 일상을 존엄하게 만들고 싶었다. 프리다를 통해 누군가의 상처가 꽃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고, 클림트를 통해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견딜 용기를 주고 싶었다.
미술은 어쩌면 인간이 서로의 마음을 번역하기 위해 만든 가장 오래된 언어일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불로초는 없지만 괜찮아" 중 발췌)
나는 영국에서 10년 넘게 사는 동안 미술관들을 거닐며 시간을 보냈고, 한국의 미술잡지에 미술관의 특별전에 대한 글을 기고해왔다. 그 시간들이 이 책에서 ‘설명’보다는 ‘머무름’을 선택하게 한 배경이 되었다. 그렇게 여러 이유가 겹쳐 공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처럼 멋진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번 책에서 또 하나 특별했던 점은 공저라는 작업이었다.
서로 다른 시선과 속도가 만나는 과정에서, 이 책은 혼자였다면 조금 더 빨랐을 대신 조금 덜 머물렀을 책이 되었다. 공저는 이 책이 선택한 느린 리듬을 가능하게 한 방식이었다. 아니, 혼자였다면 시작조차 어려웠을 무모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길에서 공저는 용기이자, 함께 건너는 방식이었다.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은, 그림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문학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책들을 찾아보기도 했고, 프리다 칼로의 삶에서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두 개의 자아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사랑에 관한 그림들 앞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림을 읽고 문학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경험. 그 시간은 예술이 서로를 향해 조용히 닿아 있던 지점들을 돌아보게 했다
예술은 우리를 구원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든다.
이 책 내게 나만의 십장생이었고, 손닿아 잡을 수 없는 별이었으며, 땅과 하늘을 잇는 사이프러스 나무였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하나의 결론이라기보다, 계속해서 돌아오게 되는 자리였다. 그림 앞에 머물고, 마음에 그리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