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문학을 번역하며 만난 이야기들

by 커튼콜 스완

내가 처음 스코틀랜드의 땅을 밟은 것은 2003년 겨울이었다. 런던에 살던 나는 글라스고에 도착해 낯선 게일어 표지판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 여기는 영국이 아닌가?’

같은 브리튼 섬이지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짙은 안개의 땅. 그날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거리는 적막했다. 산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덩그러니 서 있던 작은 펍 하나였다. 그곳에서 맛본 홍합과 로컬 맥주의 풍미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음식보다도 더 오래 남은 것은 그 장소가 품고 있던 고요와 어둠이었다.

런던에서 몇 시간을 달려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하룻밤을 쉬고, 다시 북쪽으로 차를 몰아 에든버러와 하일랜드로 향하는 여정은 언제나 신비로움을 찾아 떠나는 길이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로 향하는 길은 현실에서 한 겹 벗겨지는 듯한 감각을 주었다. 산맥이 깊어지고 안개가 짙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다.


어느 날은 네스호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일랜드의 깊은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점점 더 인적이 드물어지고, 물빛은 어둡고 묵직해졌다. 네스호는 단순히 큰 호수가 아니라, 산과 산 사이에 길게 눕듯 놓인 깊은 물의 골이었다. 물은 탁해 수면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바람이 불면 물결은 거칠게 요동쳤다. 날씨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곳에 서자 나는 저절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여기에 괴물이 없을 수가 있어?’

농담처럼 떠올린 질문이었지만 동시에 아주 진지했다. 이곳은 상상력이 스며들 틈이 너무나 많은 장소였다. 전설과 괴담이 태어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풍경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신화였고, 그 안에서 괴물이나 유령 같은 존재는 자연의 일부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스코틀랜드 문학 속 오컬트와 기묘한 이야기들이 결코 꾸며낸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 땅의 풍경이 스스로 길러낸 목소리였다.


스코틀랜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위대한 작가들을 길러냈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낭만이라기보다 기록에 가깝고, 공포는 환상이 아니라 삶과 신앙,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은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자랐다. 『보물섬』(1883)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를 반복해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그의 작품 속 상상들은 스코틀랜드에 서 있던 그 순간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문학 속 세계라고 믿었던 어둠과 안개, 인간의 분열은 이곳에서는 풍경이자 공기처럼 느껴졌다. 소년 짐 호킨스가 선과 악의 경계에 발을 들이듯, 스티븐슨의 상상력 역시 이 땅 위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슨은 평생 폐질환으로 고생하며 요양을 위해 세계 곳곳을 떠돌았지만, 그의 상상력의 뿌리는 언제나 스코틀랜드에 있었다. 1881년 여름, 그는 피틀로크리 근처에서 「마녀 재닛(Thrawn Janet)」을 썼다.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쓰인 이 단편은 악마에 홀린 가정부의 이야기를 다루며, 어린 시절 유모에게서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들의 흔적을 담고 있다. 헨리 제임스는 이 작품을 두고 ‘열세 쪽 분량의 걸작’이라 평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 Treasure Island』 초판에 실린 보물 지도(1883). 퍼블릭 도메인

그리고 전세계가 사랑하는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1859~1930). 에든버러 출신인 그는 가장 미신적인 풍경에서 자라나, 가장 이성적인 탐정을 창조했다. 이 역설은 스코틀랜드라는 땅의 성격을 닮아 있다. 도일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며 조셉 벨 교수를 만났고,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추론 방식은 셜록 홈즈의 모델이 되었다. 셜록 홈즈를 읽을 때면 베이커 스트리트 221B의 음산한 골목조차 어딘가 스코틀랜드의 풍경을 닮아 있는 듯하다.

도일의 작품 속에서도 스코틀랜드적 풍경과 정신은 은밀히 드러난다. 《바스커빌가의 개》의 음울한 황야와 괴수 전설은 하일랜드의 전설과 닮아 있고, 《글로리아 스콧호》의 바다와 죄수들의 이야기는 스코틀랜드 해양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도일은 가장 이성적인 탐정을 창조했지만, 그 탐정이 활약하는 무대는 언제나 미신과 합리, 공포와 관찰이 교차하는 스코틀랜드적 긴장을 품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두 작가는 서로를 알고 있었다. 스티븐슨은 사모아에서 코난 도일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썼다. “당신의 재치 있고 흥미로운 셜록 홈즈 시리즈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 사람이 내 옛 친구 조 벨일 수 있을까요?”

같은 땅에서, 같은 교수 밑에서 공부한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스코틀랜드의 정신을 세계에 전했다. 스티븐슨은 인간 내면의 분열과 어둠을, 도일은 이성과 관찰의 힘을 통해 신비와 공포를 해석했다.


나는 얼마 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마녀 재닛(Thrawn Janet)」, 월터 스콧 경의 『레드건틀릿』에 수록된 「떠돌이 윌리의 이야기(Wandering Willie’s Tale)」—국내에서는 「지옥의 영수증」으로 옮겼다—, 그리고 조지 맥도널드의 「늑대 여인(The Gray Wolf)」을 번역해 "스코틀랜드 오컬트 단편선"으로 엮어 출간했다. 스코틀랜드 고딕 문학은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칼뱅주의의 엄격함과 켈트의 미신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태어난 독특한 전통이다. 신과 악마, 이성과 광기, 문명과 야만 사이의 긴장이 이 작품들의 핵심을 이룬다. 스티븐슨의 지킬과 하이드처럼, 스코틀랜드 문학은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스코틀랜드의 땅을 처음 밟았던 나의 경이로움은 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오래된 목소리를 듣는 청자가 되었다. 안개 낀 들판과 바람이 스치는 돌담 속에서, 스코틀랜드가 길러낸 이야기들의 풍경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새로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네스호의 물결 속에서, 에든버러의 어두운 골목에서, 하일랜드의 황량한 들판에서.


늑대 여인 / 마녀 재닛 / 지옥의 영수증 (북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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