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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2 : 정의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는가

《베테랑2》와 조지 오웰의 그림자

by 커튼콜 스완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진실부(Ministry of Truth)'는 진실을 지키는 곳이 아니라, 권력에 유리한 거짓을 만드는 본거지였다.

뉴스, 오락, 예술, 교육을 담당한다는 명목 아래, 불편한 진실은 지워지고 새로운 거짓이 기록된다.

류승완 감독의《베테랑2》는 이 오웰적 세계를 2025년 한국 사회의 디지털 풍경 속에 재현한다.

2024년 9월 13일 개봉한 《베테랑2》는 전작의 통쾌한 응징을 뒤로하고,

정의의 실체를 되묻는 어두운 하드보일드 드라마로 돌아왔다.

75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024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한 이 작품은 단순한 속편을 넘어서, 디지털 시대 권력의 새로운 양상과 정의의 모호함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황정민이 다시 맡은 서도철 형사는 여전히 거침없지만,

이번엔 그가 쫓는 악보다 자신의 정의감이 더 위태롭게 보인다.


정의는 언제나 옳은가? 응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며, 관객에게 편안한 카타르시스 대신 불편한 성찰을 요구한다. 이는 2015년 전작이 제공했던 명쾌한 권선징악의 쾌감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2편의 가장 큰 변화는 악역의 성격이다. 전작의 조태오(유아인)가 명확하고 가시적인 악이었다면, 속편의 박선우(정해인)는 모호하고 은밀한 존재다. 그는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모니터 속 숫자와 메시지로 사회를 조종하며, 얼굴 없는 권력의 상징이 된다.

류승완 감독은 박선우에 대해 "실체를 모호하게 한다"는 의도로 캐릭터 서사를 일부러 비웠다고 밝혔다. 이는 현대 사회의 권력이 더 이상 물리적 폭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정보·미디어·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함을 보여준다. 박선우는 전통적인 악역의 클리셰—과거의 상처, 복수의 동기, 명확한 목표—를 거부한다.

대신 그는 시스템 자체가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 전체를 교란한다.

또한, 영화는 스마트 범죄를 통해 MZ세대의 소외감과 좌절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영화 속 젊은 범죄자들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서 정당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느끼는 세대의 대표자들이다. 이들의 범죄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띤다.


영화는 이러한 세대 갈등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처리하지 않는다. 대신 양쪽 모두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다루며, 범죄자조차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서도철이 젊은 범죄자들을 대할 때 보여주는 복잡한 감정—분노와 동정, 이해와 거부감의 혼재—은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 갈등의 실상을 반영한다.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카 체이싱이 주는 감정은 통쾌함이 아니라 긴장과 불안이다. 추격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위험에 노출되고, 도시 인프라가 파괴되는 모습은 정의 실현의 부작용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는 액션 영화의 전형적 쾌감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선택이다.

격투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도철의 주먹이 악역을 때릴 때, 관객은 속시원함보다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폭력이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옳은 방법인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특히 젊은 범죄자들과의 대결에서는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베테랑2》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섬뜩한 부분은 미디어와 여론 조작에 대한 묘사다. ‘정의부장 TV’는 정의를 실현하는 미디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건을 자극적으로 편집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장치다. 이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진실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진실부는 진실을 지키는 기관이 아니라, 권력에 유리한 거짓을 기록하는 곳이다. 정의부장 TV 역시 정의의 이름으로 분노를 유도하고, 클릭 수를 위해 사건을 왜곡한다.


두 장치는 모두 ‘선의의 외피를 쓴 폭력’을 구현한다.

진실과 정의라는 이름 아래, 대중은 감시당하고 조종된다.

이러한 미디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액션 장르 안에 녹여내며,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믿는 정의는 과연 진짜인가?”

류승완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사회의 권력 변화를 기록한 시각적 연대기다.

골목의 폭력에서 제도권 부패, 국제 정치, 그리고 디지털 권력까지, 그의 관심사는 넓어졌지만, 중심에는 항상 '정의'와 '권력'의 긴장이 있었다.

《베테랑2》는 이러한 그의 여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불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이고 의미 있는 거울이다.

이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결국 우리 각자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함께 찾아가야 할 몫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서는 사회적 가치를 획득한다

베테랑 2 포스터 (출처: CJENM Movie 공식계정)


#류승완감독 #조지오웰 #베테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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