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이어 그대로 이어져 온 보물 같은 채소
유럽에서 10년을 살면서 마켓에서 자주 보던 채소들의 모양은 한국에서 보던 채소들과 참 많이 달랐다.
쭈글쭈글하게 생긴 아주 커다란 토마토, 포도송이처럼 이어 붙어져 있던 노란 토마토, 보라색에 줄무늬가 인상적이었던 가지, 껍질은 보라색인에 알갱이는 하얀 옥수수등, 살면서 볼 수 없었던 채소들이었다.
이 채소들을 가보란 뜻의 에어룸 (heirloom) 작물이다.
길게는 수백 년을 종자를 개량하지 않고, 변형 없이 자연 그대로 씨앗으로 이어온 채소들.
한국에서는 토종이라고 이름 붙여진 채소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럽토종, 미국토종, 남미토종 뭐 이렇게 되겠지.
주말마다 나갔던 런던의 파머스 마켓
온갖 식재료들을 파는 보로마켓이 그리워
한국에 돌아와서 농장을 만들었고, 유럽의 에어룸 채소들과 남미 이색 채소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다양한 색감과 이색적인 맛을 지닌 이 채소들은
여행자의 삶을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나에게는
기억이고 길이다.
지나온 그 장소의 작은 기억들을 나는 또 다른 형태로
이곳에서 기억하고 살아간다.
농사는 정직하다.
햇빛, 비, 바람, 기온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열매를 내어준다.
농부가 게으름을 피우고 풀을 방치하거나
벌레의 피해를 돌보아 주지 않으면
밭은 금세 혼돈의 도가니가 된다.
올해 해외 출장이 많아 몇 주 밭을 가지 못했던
호박밭의 풀이 허리까지 차올라 열매들을 보지도 못했다.
체감온도 35도를 넘는 이 더위와 장마를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인생처럼,
농사도 그렇다. 적당한 애정과 돌봄이
누군가를 성장하게 하고, 그 애정을 받은 누군가는
그 동력으로 또 다른 힘을 얻는다.
그리고 몇 년 전, 영국의 어느 지방 도시,
조용한 학교 운동장에서 일요일 아침에 열렸던
어느 마켓에서 맛보았던
통밀빵과 토마토수프의 맛을 기억한다.
내 밭의
속이 초록색인 버터넛 호박이 잘 익어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