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OST와 함께 하는 해석)
누군가와 함께 하다가 어떤 이유로든 헤어지게 될 때, 그 헤어짐의 장소는 몇 년이 지나도 늘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중에서 기차역! 내게 기차역은 떠올리기만 해도 먹먹하고 애잔한 장소다. 그건 아마도 기차역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내 개인적 추억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기차역이 나오는 영화들은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종착역",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여정" 그리고 이 영화 "비포 선 라이즈"
이 영화는 내가 처음 보고 나서 영화에 나오는 "비엔나"가 너무 좋아, 일부러 한 달을 그곳에서 지내기도 했었지...
그게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영화 속 비엔나는 물론, 내 경험 속의 비엔나까지 합해져서~ 이 영화는 특히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다 마지막 장면을 꼽을 것 같다. 헤어지기 전, 기차 앞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급하게 정하는 모습, 정신없이 헤어지고 난 후 넋을 놓는 그 모습...
난 그 장면은... 솔직히 인상적이라기보다는 보면서 너무 아팠다. 마지막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영화에서는 더 이상 묘사되지 않았으나, 물리적 헤어짐 이후, 만날 그날을 기다리면서 겪게 될 두 사람의 아픔이 바로 보이는 듯했으니까 말이다.
이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다른 이유를 들자면 이 영화 속 나오는 장소나 배경, 그 외 두 사람의 만남 속 모든 사물이나 추억의 음악조차도 다 올드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비행기가 아닌, 약 200년 전부터 존재하는 "기차"에서 만나게 되고 또 기차역에서 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의 추억의 장소들도 하나같이 모던한 곳은 없다.
마치, 이 영화는 앤티크 숍에 있는 보석함을 조심스럽게 여는 듯한 느낌의 영화였다고나 할까.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영화화하게 되었다는 후문은 유명하다.
아울러 이 영화는 영화 음악 OST 또한 인상적인데 오늘은 대표 음악들을 중심으로 리뷰를 해볼 생각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17세기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노와 아이네이아스"의 서곡이 울려 퍼진다.
이것은 16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감독의 의도는 아마도 "영화 시작"이라는 의미로 서곡(Overture)을 넣었을 것 같다.
이 오페라 서곡의 느낌은 1막에 시작될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사랑은 물론, 나중에 두 사람의 사랑의 비극에 대해 미리 암시를 해주는 것 같은 곡인데
이 서곡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남주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이 만나는 설정이니, 그 설정이 납득이 된다.
부다페스트에서 할머니를 뵙고(또한 올드한 설정)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과 마드리드에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엔나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제시가, 기차에서 처음 만난다.
오래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듯한 셀린은 제시의 어린 시절 이야기 중에서 물호스로 물 뿌리기를 하다가 할머니 환영을 봤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에게 반한다.
아마 그녀는 그때~ 설령 그가 비엔나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 스스로 그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셀린이, 제시의 말을 들으면서 그 순간 갑자기 표정이 바뀌니까 말이다.
제시가 하루를 함께 보내자는 제안에, 셀린은 기차에서 내리면서 "제시"라는 남자와 오늘 자게 될 거란 예감을 한다.
처음 만난 남자와 함께, 낯선 도시를 여행을 한다는 건 어쩌면 "일탈"이라는 낯선 단어를 시도하게 되리라는 걸 어느 정도 예감을 하는 게 아닐까!
제시는 갑자기 셀린을 만나기 전, 길게만 느껴졌던 비엔나에서의 하루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셀린은 제시와 하루라는 시간이 있다는 게 감사하기만 하다.
두 사람이 가게 된 곳은 오래된 중고 음반을 취급하는 가게! 그곳에서 둘은 1984년 곡인 "Kath Bloom"의 "Come Here"라는 곡을 들으며 서로를 힐끔 바라본다.
There'e wind that blows in from the north(북쪽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있어요)
And it says that loving takes this course(그 바람은 사랑도 이렇게 온다고 말해요)
Come here, come here(곁으로 와요, 이리 와요)
...
오래된 노래 가사를 들으며, 서로를 슬쩍슬쩍 바라보는데... 서로에게 마음은 있지만 아직은 수줍다...
그 후, 프라터(Prater) 놀이공원 관람차 속, 둘만 있는 하늘과 가까운 밀폐된 공간 안에서 둘은 첫 키스를 하게 된다.
죽음, 사랑, 인간관계, 여성과 남성 등...
매번 여러 가지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데...
셀린은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이 세상에 마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셀린이 이 말을 하는데 제시의 눈빛이 마구 반짝인다. 그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듯이!...
그들은 함께 다니며 서로가 다름을 발견하게 되었으나, 그러면서 서로를 또한 사랑하게 된다.
밤에 유람선 카페에서 들리는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이 어우러진 비엔나 왈츠는 참 특별한 곡인데...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딸 "지젤라 루이제 마리아 대공"과 바이에른의 "레오폴드 왕자"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을 한 것이어서 그러하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감독은 복선을 깔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리라는...
너무나 행복한 만큼 내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운 두 사람은 내일 이별을 위해 이별의 대사까지도 미리 말해본다. 이렇게 금세 사랑하게 될 줄이야!...
아직 밤은 남았고 벌써 이별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 와인 한 병을 비우고 살짝 오른 취기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평생 다시 못 본다고 해도 둘은 절실히 원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른다고 했던가! 이제 조금 후면 헤어져야 한다...
어느 집 지하에서 쳄발로 소리가 들리고 둘은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이 순간의 상대방 모습을 머릿속에 소중히 담는다.
이때 흐르는 곡은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
정말 이곡은 현존하는 모든 변주곡을 다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변주곡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단순한 리듬변형, 멜로디, 조성 변형 정도가 아니라, 장르 자체(토카타, 캐논, 푸가, 프렐류드 등)를 변형하며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베리에이션을 창조해 낸 바흐!
그중에서 이 부분에 쓰인 25번째 변주곡은 "아다지오"로 곡 전체에서 가장 심오한 곡이라는 말을 한다.
이곡은 특히, "인간의 고통을 잘 드러냈다"라는 평을 받는 곡으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왜 위대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곡이기도 한데, 왜 이 부분에 이 곡이 쓰였을까.
어쩌면 감독은 앞으로 있을 이별의 고통에 대해, 그리고 헤어짐의 쓰라림에 대해 조용히 언급하려 함이 아니었을까...
셀린은 제시에게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로 사랑에 빠지게 될 것 같다"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들은 제시는 셀린을 사랑이 충만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제 모든 것을 뒤로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쿨하게 헤어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그들은 다시 만나고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6개월 후, 12월 16일 9번 승강장 저녁 6시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아, 이땐 진짜로!
내가 헤어지는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린 순간!...
그러면서도 둘의 그 약속에 설렘도 공존한다.
셀린은 기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고 제시는 공항으로 가는 길!
그때 흐르는 곡은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 1번"의 3악장인데... "비올라 다 감바"는 바로크 시대의 악기로 비올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첼로도 아닌, 두 악기와는 또 다른 독립적인 악기다.
물론 현재 어쩌다 사용되지만, 음색이 비슷한 첼로가 그 악기를 대신하여 연주를 하고 있는데, 왜 하필 "비올라 다 감바"의 소나타를 곡 설정을 한 걸까?
서로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를 보여주면서 이 곡이 흐르는데... 이젠 과거가 된 "두 사람의 추억"을 표현하려 이 작품을 선별한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현재엔 거의 쓰이지 않는 비올라 다 감바!
이 악기의 음악과 함께 두 사람 이외 아무도 모를~ 사랑의 추억을 영화는 표현한다.
둘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될 하루 동안의 아련한 추억!
파도가 모래성을 훑어서 모래성의 존재가 사라졌다 해도 그 모래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건 늘 기억 속에서 숨 쉬니까...
이렇게 영화는 끝나지만
영화 시리즈인 같은 감독, 같은 주연 배우들로 구성된 영화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역시 감동인데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그 후에 결혼하여 일상을 사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이후 비포 시리즈는 더 이상은 없는데, 영화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처럼, 다시 한번 제시와 셀린의 노년의 모습과 이야기가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OST와 함께 영화를 되짚어보았다. 오늘의 리뷰는 이렇게 마친다.
*포토 출처: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