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실제 주인공은 인물도 인물이지만 빗방울이 아닐까. 끊임없이 흐르는 빗줄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모든 서사를 관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비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 흐르고, 때로는 비가 운명의 손길처럼 작용을 하기도 한다.
비는 특히, 챈과 개츠비 사이에서 두 사람을 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데, 택시에서 재회를 시키고 그들에게 즉흥적인 시놉시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빗소리는 마치 무성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정의 리듬을 조율하는 듯하다.
한편, 애슐리(엘르 패닝)의 서사에서도 비는 함께 하지만, 애슐리에게 있어서 비는 로맨틱함이 아니라 불편함의 징표이고 피하고 싶은 대상일 뿐이다.
같은 빗줄기가 어떤 이에겐 시가 되고 어떤 이에겐 장애물이 되니~ 이런 점은 감독 "우디 앨런"이 구축한 섬세한 대비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챈과 개츠비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비는 다시 그들과 함께 하며 둘의 러브 라인을 확실하게 만들어주니, 주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연 뻘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싶다.
하늘 가득 부유하는 재즈 선율들은 마치 빗방울과 하나가 되어 도시의 아스팔트로 스며드는 듯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비와 재즈의 조화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잉도 결핍도 없는 조화, 재즈의 즉흥성과 빗줄기의 불규칙성이 만나 새 리듬을 창조하는데 그 안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일탈과 발견을 경험한다.
감독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단순히 배경이 아닌,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감정으로, 분위기로 승화시킨다.
이 영화는 세대와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이상향을 보여주는데 대학 신문 기자이자 영화 애호가인 "애슐리"는 남자의 권위와 명성에 이끌린다. 그녀의 시선은 영화계 거장에게 향하는데 그래서 그녀는 맨해튼에서의 하루를 연인인 개츠비가 아닌 동경하는 예술인들과 함께 하게 된다.
챈(셀레나 고메즈)은 애슐리나 개츠비보다 어리다. 현실의 무게보다 낭만을 믿는데 물론 그 밑바탕엔 부모님의 경제적 풍요로움이 함께 한다. 언니의 전 남자친구였던 개츠비를 마음에 품어온 그녀에게, 우연한 개츠비와의 재회는 운명이 선사한 두 번째 기회였고 챈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개츠비는 목표 없는 방랑자처럼 보이는데 그에게 돈은 유희의 수단일 뿐이며, 명예나 권력 같은 세속적 가치는 안중에 없다. 그가 몰두하는 건 빈티지 스타일, 올드 재즈, 클래식 시네마 그리고 비 내리는 뉴욕이라는 도시 그 자체라고나 할까.
비를 피하고 싶어 하는 애리조나 출신의 애슐리와 비를 사랑하는 개츠비가 연인이었으나 결국 어긋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항상 햇살이 쏟아지는 곳에서 자란 애슐리와 그 반대인 뉴욕, 이 두 풍경은 반드시 공존해야 할 이유가 없듯.
개츠비가 소중히 여기는 뉴욕을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챈! 그가 챈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공통적인 미학적 감수성에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중년에 접어든 저명한 감독(리브 슈라이버)과 각본가(주드 로)에게 애슐리는 청춘의 활력제와도 같다. 그녀의 존재는 시들어가는 자신감을 다시 부풀리는 산소와 같다고나 할까. 영화는 이 두 중년 영화인이 젊은 여성에게 보이는 묘한 호감을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포착한다.
반면, 그들보다 더 젊고 매력적인 배우 "프란시스코 베가"(디에고 루나)는 애슐리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끌린다. 이것은 상호적으로~ 애슐리는 다른 두 중년 남성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육체적 매력을 그에게서 발견한다.
스타에게 끌리는 보편적 여성의 마음, 애슐리 역시 예외는 아닌 것! 물론 그녀의 모든 바람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호불호가 갈리는데 내겐 주인공들의 분주한 여정이, 지루함을 주지 않았으며 어떤 극적 클라이맥스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상의 리듬으로 흐르는 그들의 하루가 나름 매력으로 다가왔다...
"Bing Crosby"의 "I Got Lucky In the Rain"이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데 가사는 마치 복선이 되는데 이 노래가 말하듯, 개츠비에게도 비 오는 날 사랑이 찾아오게 된다.
또한 개츠비가 우울할 때 연주하는 곡인 "Chet Baker"의 "Everything Happens to Me"는 그의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하는데, "쳇 베이커", "빌리 홀리데이"의 선율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영화의 정서적 온도를 조절한다.
영화에서 재즈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며, 그것은 캐릭터의 내적 언어이자, 도시의 흐름, 시간의 흐름 등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메타포가 아닐는지.
영화에 집중하다가 보면 90분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로맨틱 로드무비 형식의 이 영화는 여러 해프닝들을 경쾌하게 엮어낸다.
엉뚱한 유머가 여기저기 배치가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음악이 영상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비 오는 날을 감상하는데 짜증이 아닌 미소가 스며드는 영화여서 안 본 이들에게 추천한다.
재즈 선율이 흐르는, 비 오는 로맨틱한 뉴욕의 거리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포토 출처: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