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양연화 리뷰

창문 너머로 본 사랑의 초상

by 필름과 펜

영화 화양연화 리뷰 (Film#12)


시간이 머무는 곳


왕가위 감독의 렌즈는 시간을 붙잡는다. 흐르지 않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는 시간. 1960년대 홍콩의 비좁은 골목과 계단, 그 안에서 두 사람이 숨을 쉰다. 소려진(장만옥)과 주모운(양조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난 영상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었지만 이야기의 본질을 놓쳤다.


화려한 색감과 세련된 구도, 느린 템포의 미장센에 눈을 빼앗겼지만, 정작 두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시놉시스가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다고까지 생각했다.


몇 번을 다시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영화는 보통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사랑하지 못함이 때로는 사랑함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것을.




계단과 보온통- 의미가 부여되기 전


왕가위 감독이 구축한 홍콩은 숨이 막힌다. 장면이 대부분 창문 너머, 문틈 사이, 거울 반사로 포착된다. 비좁은 계단과 복도,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우리는 전체를 볼 수 없다. 방의 전체 모습도, 건물의 구조도, 거리의 풍경도...


왜일까? 왜 감독은 관객에게 완전한 시야를 허락하지 않는 걸까?


여러 겹으로 포장된 선물처럼, 감추어진 것일수록 더 소중하기 때문은 아닐는지... 한 번에 보여주지 않는 것, 조금씩 드러내는 것. 그것이 비밀이고 미스터리이고 결국 사랑의 본질이다.




내가 눈을 감고 이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보온통을 든 두 사람. 소려진과 주모운이 서로에게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


그뿐이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 옆집 남자와 옆집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시절. 서로에게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던 때.


나는 이때를 떠올리면 편안한데 이 순간만큼은 떠올려도 가슴이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사랑이 시작되기 전이니까. 아직 잃을 것이 없었으니까.


맘껏 떠올려도 마음이 아리지 않으므로 그래서 나는 아마도 이 시퀀스를 가장 자주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시간의 모호함과 공간의 비밀



감독의 영화에서 시간은 늘 모호하다.

계절의 변화로 시간을 알려주지도 않고, 자막으로 날짜를 표시하지도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갑자기 며칠이 뚝딱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장면은 언제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


특히, 화양연화에서는 많은 장면이 작은 창문을 통해, 좁은 문틈을 통해 보인다. 여러 공간이 겹쳐 보이면서 원근감을 만들고, 가운데 공간에 인물을 배치하는 구도도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들을 그냥 직접 보여주지 않고 창문을 통해, 문을 통해 보여준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까 잠시 언급했듯, 몇 번을 열어봐야만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선물처럼, 비좁은 창문과 좁은 문을 통해 보게 되는 사물들은 더 비밀스럽고 더 은밀하며 더 미스터리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사무실이든, 집이든, 단지 부분적으로만 볼 수 있는데 방의 자세한 구조, 가구의 배치, 공간의 크기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데 그래서 영상미가 더욱 중요해진다. 전체를 보여주지 않으므로 보여주는 부분이 완벽해야 한다. 미니멀한 공간 사이에서 감독 특유의 감성이 극대화된다.




치파오와 담배 연기- 답답함의 미학



처음에는 그저 이웃이었던 소려진과 주모운은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외도 사실을 알고도 무척 담담해 보인다.


소리 내어 울거나, 화를 내거나, 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 담담하다고 해서 내면도 그런 것은 아니다.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엔 자주 자욱한 담배 연기가 내부를 잠식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외부 공간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끔 두 사람의 감정선을 예고하듯,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청아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빗줄기가 거세게 내려도, 여전히 갑갑한 62년의 홍콩이 느껴진다.


왕가위 감독은 겉으로 담담하다고 내적으로 쿨하게 인정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복잡한 심경을 그 갑갑함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소려진이 입은 치파오는 그 자체가 상징이기도 한데, 몸에 딱 달라붙는 그 옷은 매일 바뀌는 색상과 무늬로 관객에게 날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시계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오히려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보다도 소려진이 입고 있는 옷으로 날이 바뀐 것을 쉽게 알게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소려진의 치파오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답답한데,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속은 복잡하기만 한 두 사람의 심경 또한 치파오가 그대로 표현하는 듯하다. 아름답지만 숨이 막히는, 우아하지만 갑갑한...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반복되는 운명



배우자의 외도로 만나게 된 소려진과 주모운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반복한다.


우리는 절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더 고상하고 더 도덕적이고 더 절제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결국 두 사람도 서로에게 빠지게 된다.


예기치 않았던 일이다. 갑자기 불어닥친 감정. 통제할 수 없는 끌림,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아이러니면서 동시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가 비난했던 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상황이 주어지면 감정이 일면, 우리도 같은 기로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별의 리허설



주모운은 결심한다. 소려진의 곁을 떠나기로, 싱가포르로 가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별을 연습한다. 미리 한 번 겪어두면, 실제로 겪을 땐 두 번째가 되니까 마음이 덜 아플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처음이어서 그런 걸까? 리허설인데도 소려진의 눈에서는 폭풍 같은 눈물이 쏟아진다. 담벼락에 기댄 채, 몸을 파르르 떨면서 울고, 주모운은 "이건 그저 연습이다!"라며 달랜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연습과 본 공연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별을 연습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진심으로 하는 연습이라면 그것은 이미 진짜가 아닌가.


소려진의 눈물도 거짓이 아니다. 주모운이 붙잡는 손도 거짓이 아니다. 떨리는 목소리도 모두 진짜다.


그렇다면 이것은 연습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이별이다. 첫 번째 이별, 그리고 가장 아픈 이별,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진다.




싱가포르의 빈 공간 -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63년 싱가포르 주모운의 집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 누군가가 집에 다녀갔다는 것을 안다. 무언가가 다르다. 공기가 분위기가 공간의 느낌이...


그는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듯 침대 주변을 뒤적이며 계속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쓴다. 서랍을 열고 이불을 들추고 침대 밑을 들여다 보고.


그가 없을 때 싱가포르까지 찾아온 사람은 소려진이었다. 그렇다면 소려진은 무엇을 가져간 걸까?




언뜻 생각하면 분홍색 슬리퍼가 떠오른다. 소려진이 주모운의 집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밤을 보냈을 때 신었던 그 낡은 슬리퍼. 추억이 담긴 물건. 그것을 주모운이 싱가포르로 가져갔을 것이고 소려진이 그것을 다시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왕가위의 영화 속에서, 그런 눈에 보이는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주모운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소려진이 가져간 것은?


혹시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었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고 소중했던 사랑의 한 조각은 아닐까. 형태가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소려진은 그것의 절반을 가져갔다. 그리고 주모운에게 나머지 절반이 남았다!




앙코르와트- 사랑을 묻다



그 후, 주모운은 캄보디아를 여행한다. 앙코르와트 사원 단지를 방문하는 동안, 그는 사원의 벽 틈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말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그러고 나서 흙으로 단단히 막는다.


사랑을 고백하고 막는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 계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을 끝맺는다는 의미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랑은 세상으로 나오지 않는다. 벽 속에 영원히 갇혀 잇다.




이 장면이 그토록 경경한 의식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사랑을 떠나보내는 애틋함과 공손한 예우가 함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싱가포르에 왔던 소려진이 가져간 사랑의 절반, 그리고 이제 주모운이 앙코르와트에 묻어버린 나머지 절반.


두 사람에게 남아있는 사랑은 이제 없다. 사랑했었다는 추억만 존재할 뿐.




창문 너머의 시선



1965년 소려진은 예전에 주모운과 이웃으로 살았던 그 낡은 집에 방문한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그가 살았던 방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 숨길 수 없었던 욕망과 사랑의 느낌이 가득했던 그 시절. 보온통을 들고 오르내리던 계단.


덧없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깨닫는다. 그와의 시간이 화양연화였음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이었음을. 그녀는 다시 그곳을 임대하여 살기로 한다.



그 후, 주모운도 예전 그 집을 방문한다. 그녀가 그랬듯, 멀리 창문을 통해 그녀의 방을 바라본다.


새 주인을 통해 그녀가 머물렀던 곳에 여인과 아들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소려진이다. 그녀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는 만나지 않고 다시 떠난다.


두 사람은 끝내 마주치지 않는다.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에 찾아온다. 창문 너머로만 서로를 그리워할 뿐. 이렇게 해서 스치고 지나가던 인연이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




사물들의 언어



이 영화엔 의미를 담은 소품들이 많다.


분홍색 슬리퍼: 소려진이 주모운의 집에서 부득이하게 밤을 함께 보낼 때 두고 왔던 물건, 두 사람의 추억 속에 자리 잡은 물건


보온통: 배우자의 부재를 상징하는 외로움의 징표, 배우자가 없을 때 두 사람은 그 보온통을 들고 국수를 사러 가곤 했다.


시계: 내 생각에 이 영화 속의 시계는 시간의 의미라기 보단 두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 가까워짐을 상징하며 초침, 분침 역시 서로를 향해 움직인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오히려 소려진의 치파오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갠적으로 생각했다.


무협소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둘을 더 가깝게 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대화의 소재이자 공통의 관심사이자 서로를 이해하는 통로였음




시대의 그림자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을 썼지만. 화양연화는 리우이창의 중편 소설을 일부 각색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67년에 쑨 부인 등이 다른 나라로 떠나는데 60년대 홍콩은 영국 식민지의 암흑기였으니 이해가 되는 설정이다.


영화 "화양연화"는 재개봉할 때 리마스터링되면서 푸티지(미편집 원본)가 다시 편집되어 나왔다. 그때 캄보디아와 드골 장군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왜 이 부분이 들어간 걸까?

캄보디아의 불안정했던 60년대와 이 영화를 찍었던 당시 홍콩 반환 후의 불안정했던 시기가 비슷해서가 아닐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겹쳐 보여서 넣은 것 같다.


왜냐하면 감독의 다른 영화들 중에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역시 홍콩 반환과 무관하지 않게 많은 정치적 부분을 투영했기 때문에 그런 추정을 해봤다.


개인의 사랑 이야기에 시대의 불안을 함께 조명하는 것! 그것이 왕가위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므로...




시처럼 읽히는 영화



감독은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을 "비밀"로 하려 했다고 한다. 그것도 좋았겠으나, 이 제목이 더 완벽했다.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


이 영화가 마치 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수많은 감정을 담은 함축적인 영상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다림과 외로움을 담은, 채도 높은 색상들로 가득한 화면, 어린 남녀의 싱그러운 사랑이 아닌 인생을 바라볼 줄 아는 중년 남녀의 애틋한 시선! 그래서 더 지적이고 더 완숙하며 더 아름답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수많은 비평가의 찬사를 받은 이 영화!


이것은 보는 영화가 아니라, 느끼는 영화다.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암시하는 영화다.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침묵하는 영화다.


무수한 느낌과 감정을 남긴 채, 종지부를 찍은 가슴 저린 추억, 그것을 그저 떠올리며 잠시 그 순간을 느끼면 그만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그날들은 기억 속에서 먼지가 쌓이듯 퇴색되며 점점 희미해져 간다.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가지만 가장 찬란한 순간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있다. 그렇게 사랑은 끝나고 추억이 된다. 화양연화는 그렇게 남는다. "사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우리는 화양연화라 부른다!..."



*포토 출처: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