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우라라"와 "유키"의 모습)
내가 한국에 살았을 땐 "친구"라는 개념은 학교를 함께 다닌 같은 학년, 나이의 친한 사람! 즉 나이가 일단 같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었다. 나와 친한 사람이 나보다 학년이 더 높거나 낮으면 "선배"와 "후배"라는 정확하며 강력한 단어가 있으므로 그들은 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독일에 와서 한국과 여러 차이를 느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친구"의 개념이었다.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뻘의 사람을 "내 친구"라고 소개를 했을 때, 그게 버르장머리 없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것처럼 사람들이 수긍하는 걸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친구"라는 개념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봤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독일에 "선배"나 "후배"라는 단어가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친구"라는 개념이 나이와 연관된 게 아니라는 게 다른 것일 뿐!
이 영화 속 주인공인 "우라라"와 "유키"는 나이 차이가 58살이나 난다. "우라라"는 고등학생으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소녀이며 아버지 없이 엄마랑 둘이서 살고 있다. 우라라는 또래 여학생들과 몰려다니지 않고 대부분 혼자 있으며 남모르게 BL(Boy's Love) 만화 보는 걸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 한 할머니가 들어왔는데 BL 만화책 한 권을 들고 당당하게 계산하려는 걸 본다. 그 후 할머니는 다시 다음 편 BL만화책을 사가게 되고 두 사람은 BL만화책 때문에 대화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친해지게 된다.
두 사람이 처음 친해지게 된 계기는 앞서 말했던 BL만화책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 BL만화책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므로... 그래서 대화를 시작한 건 맞지만, 영화를 보게 되면 그것 때문에 무조건 두 사람이 교류를 하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에 둘이 소율메이트가 될 수 있었던 건, 할머니 "유키"의 매너와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유키는 75세이며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정적인 삶을 살았으며 남편은 죽고 딸은 노르웨이에 살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지만 무척 외롭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는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소년들의 사랑을 다룬 BL만화책을 읽게 되어 푹 빠진다. 서점 아르바이트생 "우라라"를 만나게 되어 우정을 쌓게 되는데...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꼰대"라는 말! 노인이나 기성세대를 상대로 권위주의적인 사상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말인데... 영화 속, 유키가 없는 부분이 바로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사실, 우라라는 완벽한 소녀도 아니고 어른인 유키가 볼 때 우라라의 모든 행동이 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 카페에서 BL 만화책을 카페 직원이 볼까 봐 우라라가 재빨리 만화책을 숨기는 모습 등을 봐도 그러하다.
그러나 유키는 우라라의 행동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질을 하지 않는다. 유키는 그러니까... 자신이 봤을 때 맘에 들지 않는 것과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잘 구별할 줄 아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임에도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질을 하고 나이 어린 이에게 무조건 쓴소리를 하는 건 "꼰대"가 아닐는지.
유키는 그걸 구별할 줄 아는 어른이었으며, 그래서 그녀는 나이가 어린 소녀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BL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친구가 된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친구 사이에 도를 넘는 경우가 있다.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인생 조언을 하는데 그게 과연 맞는 일인가 생각해 본다. 그 친구가 바보도 아니고 과연 그럴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조언을 한다고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조언질처럼 들릴 수 있으며 차라리 그냥 그 친구를 믿어주고 무한지지를 해주는 게 친구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그 친구가 내 뜻과 다르다고 해서 친구에게 지적질을 하는 게 아닌 존중해주는 마음이 친구의 첫 번째 조건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서 참견이 아닌, 우라라를 믿고 끝없이 지지하는 나이 많은 할머니 유키처럼 말이다...
누가 알았을까! 그림이 예뻐서 집어든 만화책이 인생 친구를 사귀게 해주는 발판이 될 줄! 결국 BL만화책은 두 사람 사이를 잇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우라라는 별로 공부에 관심 없고 BL만화책 보는 것만 즐길 뿐 만화를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유키를 만난 이후, 우라라는 점점 성장하게 된다. 우라라는 스스로 동인지를 출간할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그건 유키와의 만남으로 인해 얻게 된 변화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유키는 물론 우라라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네 인생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이 영화 속엔 BL 만화 독자인 유키와 우라라뿐만 아니라, 만화를 직접 만든 작가 "코메다 유"도 등장을 한다. "코메다 유"가 만든 만화로 친구가 된 유키와 우라라! 그 후 우라라는 유키의 성원으로 동인지를 직접 만들게 되는데...
당시 슬럼프에 빠져 있던 "코메다 유"는 우연히 우라라가 만든 만화를 보게 되고 그 덕분에 슳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무사히 만화 편집을 끝낼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그렇다고 해서 우라라가 천재적인 기질로 갑자기 어린 스타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처음 그린 만화이므로 아직은 많이 미숙하지만 상상력과 참신함 그리고 잠재력이 가득하다는 걸 강조한다.
영화 제목 "Metamorphosis"는 원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변신, 변형, 탈바꿈이란 뜻을 의미한다. 원제목인 "BL Metamorphosis"는 그러니까~ BL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에 의해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뜻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다.
이 영화를 보니 나도 툇마루에 앉고 싶어졌다. 그리고 솔솔 풍겨오는 카레 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영화 결말은 유키는... 딸이 사는 노르웨이로 떠나는데, 극적 감동을 위해 유키를 죽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서 더욱 맘에 들었다.
공통된 관심사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갖춰야 할 미덕은 무엇인지를 두루두루 알게 해주는 값진 영화! 바로 이 영화 "메타모르포제의 툇마루"가 아닐까!...
*포토 출처: IM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