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4번가의 연인 리뷰

by 필름과 펜

영화 84번가의 연인 리뷰(Film#5)



데이비드 존스 감독의 영화 "84번가의 연인"은 빨강, 파랑 테두리의 국제 우편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편지 교감을 나눠본 사람이라면, 책을 사랑하고 책 애호가들과 교류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중고 서점애서 나는 오래된 책 냄새를 알고 그걸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될 영화다.


1987년작으로 50대의 "앤 밴크로프트"와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이 영화는 영화에서 안소니 홉킨스 아내 역을 맡았던 "주디 덴치"가 아끼는 영화로도 유명한데 왜 그녀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금세 납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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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헬레인 한프와 프렝크 도엘의 모습)


뉴욕에 사는 가난한 여류 작가였던 헬렌이 고전 영문책을 싸게 구하기 위해 영국 런던의 84번지에 책 주문 편지를 쓰게 되면서 그걸 계기로 20년간 편지로 우정을 나눈 실화를 영화화했는데 영화 속에서 그들이 한 번도 볼 수 없었듯, 실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84 Charing Cross Road


영화의 원제목은 실제 런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주소를 그대로 타이틀로 담았는데 한국에서의 제목인 "84번가의 연인"보다도 더 의미가 깊다. 84번가의 연인은 로맨틱 무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반면에, 이 영화의 빠질 수 없는 배경이자. 편지가 오가고 무엇보다 그들의 공통분모인 중요한 고서와 희귀본들이 있는 장소인 "채링 크로스 84번지"라는 제목은 결국 프랭크와 헬렌을 연결해 주는 상징이자 우정의 메타포이며 물리적 거리를 초월, 문화적 장벽도 무너뜨린 교류를 강조하므로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 책으로 먼저 알려졌고 이후에 TV드라마,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던데, 영화는 편지 내레이션으로 진행이 되며, 편지가 오가는 내용을 강조하다 보니 영화적인 느낌보다는 연극적 감성이 또한 느껴졌다. 영화에서는 편지 내용을 정면샷을 통해 대사로 보여주는 시퀀스도 있는데 마치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지 내용을 읊는 그 부분에서는 좀 더 가까이에서 두 주인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헬렌과 프랭크를 연결하는 게 전부가 아닌, 영화에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의 정서적 교감인데 "책"에 대한 공감이 둘을 가깝게 만들고 그렇게 쌓게 된 인연은 둘만이 아닌 주변인들과도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만들어주게 되어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처럼, 그들은 비록 본 적은 없지만 서로를 아끼게 된다.


로맨틱한 만남의 뻔한 이야기처럼~ 영화는 처음에 보였지만. 책을 통한 연결을 강조하며 클리셰적 요소를 없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사람이 느꼈을 떨림, 책을 받을 때 헬렌이 느꼈을 가슴 벅참, 헬렌으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을 때의 프랭크의 몽글몽글함도 상상이 되었으며 영화를 보면서 내가 마치 그들의 주변에 함께 하는 듯한 가까움이 절로 느껴졌다.


헬렌& 프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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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소울메이트 프랭크의 실화를 영화화하는 만큼, 헬렌 핸프는 사실성을 위해 각본을 컨트롤 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그녀가 썼던 책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영화는 영국과 미국에 있는 헬렌과 프랭크를 풍경, 음악, 조명, 문화적 대비를 통해 차이를 두었으며 그것들은 헬렌과 프랭크 사이에서 교차편집되어 관객에게 보여주게 된다.


호탕하고 솔직담백한 헬렌 주변은, 음악도 재즈풍의 수다를 떨고 싶은 경쾌한 느낌의 멜로디가 가득하며, 환한 봄 햇살이라든가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도 유난히 해맑아 보인다. 그러나 전쟁 직후 식량 배급제를 하는 영국의 실상을 보여주는 시퀀스에서는 잿빛 배경에 실내 역시 어두우며 프랭크 표정도 헬렌과는 다르게 경직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영국을 표현하는 음악은 클래식 음악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프랭크가 편지를 쓸 때 흘렀던 코렐리의 교회소나타라든가 영국 크리스마스 전통 캐롤, 헨델의 메시아에서 오르간 음향으로 경건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주어 완성시켰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시간이 흘러 프랭크가 죽고 나서, 헬렌은 그동안 프랭크와 교류를 하며 샀던 책들을 정리하는데 자신이 늘 꿈꿨던 "영국"이 어느새 자신의 책장 안에 모두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거였다!


그녀는 늘 "영국 속에서 영문학을 느껴보고 싶다"라며 영국으로 가고픈 이유를 밝혔는데, 영국은 어느새 영문학과 함께 자신의 책장 안에 책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극 중, 헬렌은 인간 관계에 의한 이유로 그 곳 채링 크로스 84번지에 가야함을 깨닫게 되어 바로 영국으로 향하게 된다.


영화에서 헬렌은 한 번 예전에 영국으로 가려고 계획을 했었으나 치과 진료 과다 비용으로 포기하게 되었다가 프랭크가 죽고 나서 드디어 20년만에 영국을 가보게 된다. 그녀가 가보고 싶어하는 곳은 다른 유명 명소가 아닌 추억의 채링 크로스 84번지였고 그녀는 감회, 회한, 슬픔을 느끼며 헐리기 전의 서점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실제 헬렌은 시나리오 작가였으나 넉넉하지 않았으며, 그녀에게 영국 여행을 가능하게 한 건 1970년 회고록 책인 "채링 크로스 84번지"가 출간되고 나서라고 알려져 있다. 실화여서 더 몰입이 되었으며 이 영화는 전에 다운로드하고 이제서야 보게 된 영화였는데 요즘 계절과도 잘 어울리는 영화여서 후기를 남겨본다.헬렌과 프랭크처럼 손편지를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어지는 영화! 조용한 영화임에도 강렬함이 느껴졌던 영화 "84번가의 연인"이었다.


*정보, 포토 출처: IMDb,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