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37. 영화 <베테랑 2>
※ 스포일러 주의
1.
류승완 감독은 참 성실하다. 군함도 이후 잠시의 공백을 제외하면 1~2년 단위로 꾸준히 영화를 연출하고, 심지어 대부분의 작품이 꽤 준수한 만듦새와 높은 흥행, 하다못해 최소한 손해는 안보는 성적을 보장한다. 그런 꾸준함과 연출력,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 극장 시장에 기여하는 바를 놓고 평가해 보면 류승완 감독은 21세기 한국 오락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실제 많은 사람들의 평가 또한 그러하다)
그런 감독이 처음으로 속편을, 그것도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 <베테랑>의 후속 이야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대하지 않을 관객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9년 만이지 않는가. 추측건대 올해 개봉할 한국 영화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대작으로 뽑았을 것이다.
2.
속편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전편에서 얻은 즐거움을 다시금, 동시에 새로운 방식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베테랑 2>는 흥미롭게도 1편과 전혀 다른 노선의 길을 걷는다. 전편은 코미디를 베이스로 한 유쾌한 액션 영화였다면, 이번 편은 유쾌함은 크게 덜어낸 후 짙은 하드보일드 색상을 입혔다. 보다 어둡고 진지하다. 아마 <베테랑 2>를 1편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극장을 향했던 이들이라면 많이 당황했을 것이고, 1편에서 느꼈던 유쾌함을 기대했다면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조금 과하게 이야기하면 전편과 같은 인물들이라고 설정했을 뿐이지, 사실상 전편과는 딱히 연관 없는 다른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인상 깊던 전편 대사들을 다시금 읊는 것을 통해 내내 잊고 있던 이것이 속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차라리 '베테랑'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아예 독립된 작품으로 나왔더라면 오히려 평가가 높아졌을 것이다.
3.
류승완 감독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볼 맛 넘치는 액션은 여전하다. 배우들이 아끼지 않고 몸을 굴려가며 촬영한 계단 액션과 마약 소굴에서 펼쳐지는 우중 액션만으로 이미 액션 영화로서의 최솟값 그 이상을 갖춘다. 마약 소굴 우중 액션은 빠른 편집과 복싱을 가미한 빠른 액션 스타일로 속도감을 준다. 좁은 복도, 비 오는 밤이라는 설정으로 인하여 여타 액션 영화들이 그러하듯 피아식별이 어렵고, 액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다소 번거로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빗물을 액션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재치 있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영화 오프닝인 도박장 잠복 장면 액션은 꽤 아쉬운 편이다. 유치한 코미디의 반복 정도로까지 보인다. 한 철 지난 슬랩스틱과 코미디 연기가 다소 과잉되어 장면 자체가 썩 와닿지 않는다.
4.
한 명의 메인 빌런(조태오)을 상정하여 한 사람이 힘과 권력을 통해 할 수 있는 범죄들을 보여줬던 1편과 달리, 사적 제재를 가장 큰 범죄 소재로 끌고 와 보다 큰 범주의 범죄들을 나열한다. 전편은 선과 악이 마치 흑과 백처럼 뚜렷했기에 서도철의 대사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에서의 '죄'가 명확했다면, 선과 악이 분명 나눠져 있긴 하지만 정의와 죄에 대하여 전편보다 입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상황에서 반복되어 나온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의 '죄'는 딱 잡아 말하기 어렵다. 사실 사적 제재는 이제 와서 그렇게까지 신선한 소재로 보기 힘들다. 다만 그 대상이 경찰이 되니, 사적 제재뿐만 아니라 제재의 선을 어디서부터 어디로 정할 것인지까지 그 범주가 확장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워진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거 하려고 경찰 됐다'는 박선우의 대사가 인상 깊다.
영화는 박선우가 보여준 사적 제재뿐만 아니라 소위 '사이버 렉카'로 불리는 자들이 만드는 가짜뉴스, 마녀사냥, 학교폭력 등 여러 가지 악행들을 다룬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모든 소재들을 심도 있게 다루지는 못하고 중심 소재를 끌고 가기 위한 소재 정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어쨌든 요즘 특히 화두에 오른 범죄들이 반복되어 언급되다 보니 몇몇 관객들은 피로감을 꽤 많이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5.
주인공인 서도철의 성격이 꽤 사나워졌다. 영화 내내 쉬지 않고 나오는 짜증에 '뭐 이렇게까지...'라는 생각도 든다. 앞서 이야기했 듯 영화의 전반적인 노선이 바뀌며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사실, 화 많은 짜증 섞인 경찰 캐릭터는 많다. 아니, 경찰이 나오는 거의 모든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걸리는 것은 전편과의 연결이다. 전편을 생각하고 극장을 향했을 관객들은 막말로 '성격 더러워진' 주인공이 꽤 거슬렸을 것이다.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는 크게 줄이고 서도철과 박선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의도를 좋게 해석하자면 선택과 집중이고, 나쁘게 해석하자면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데, 보이기엔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어쨌든 활용만 잘하면 재밌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보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코미디 성격 짙었던 전편이 있었기에 코미디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는지 툭툭 던지는 말장난들이 그렇게까지 재밌지 않고, 웃음을 불러오는 몇몇 농담들도 이번 편에서 설정한 분위기와 상통하지 않아 겉도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몇몇 단점들이 보이는 와중에도 빛이 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출연진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배우들의 호연은 충분히 기대를 충족시킨다. 이번 편에서 특히 눈에 들어왔던 배우는 정해인 배우였다. 사실 캐릭터를 빌드업하는 연출이 썩 마음에 든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의중을 읽을 수 없는 텅 빈 동공을 보면 이 캐릭터가 어느 정도 납득된다.
6.
결론적으로 재밌는 영화는 맞다. 다만 전편에 비해 아쉬움이 조금 더 남는 영화다. 어쨌든 쿠키 영상을 통해 속편에 대한 암시도 남겨뒀고, 감독 또한 3편 제작에 대한 질문에 확답 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속편은 다음엔 어떤 성격의 <베테랑>이 나올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신경 쓰면 꽤 괜찮은 3부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