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22. 영화 <듄>
1.
영화가 기술 발전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물이냐, 물어본다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 인간은 늘 움직이는 동영상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왔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일반적인 의미의 영화가 기술 발전으로 인하여 대중화되고 체계화되었냐고 물어보면 이는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그렇다, 명백한 사실이다. 동영상에 대한 욕구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기술이 1800년대 후반에 와서야 개발되고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또, 영상 언어를 체계화하였으며 그 결과물을 산업화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현대의 영화란 과학 기술, 첨단 기술과 절대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영화와 관련된 여러 기술들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봐 왔다. 화면비는 우리가 살펴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영화 발전 과정 중 하나다. 카메라의 발전은 영화인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은막의 크기를, 관객들에게는 시야를 움직일 수 있는 동공의 범위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4:3 비율과 아카데미 비율로부터 시작하여 시네마라, 시네마스코프, 비스타비전을 거쳐 오늘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16:9까지. 모두 카메라 기술과 영사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들이다.
2.
모두가 알다시피 기술 발전의 특징은 필연성이다. 한번 시동 걸린 기술이 걷잡을 수 없이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화면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제 16:9를 거쳐 아이맥스의 시대를 살고 있다. 꽤 인기 있는 영화들은 요즘 같은 극장 시장의 불황에도 인기 가수 콘서트 못지않게 치열한 티켓팅 경쟁이 펼쳐진다. 영화 <듄>이 아마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나 또한 아이맥스 관에서 <듄>을 보며 그 넓직한 화면과 커다란 사운드를 즐기며 '아, 아이맥스로 보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듄> 뿐만 아니라 소위 '돈값'하는 영화들을 볼 때면 단순 만족을 넘어 뿌듯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맥스 영화를 즐기다 보면 간혹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발전된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물론 너무 좋은 일이지만, 그게 모두에게 공평한 일일까? 그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3.
<듄>을 보며 가장 압도당했던 부분은 바로 아라킨 공습 장면이다. 공습당한 기지를 쳐다보는 폴과 제시카의 뒷모습을 비춰주는 카메라 워크는 말 그대로 화면에 압도당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내뿜었다. 이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은 분명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봐야지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이건 꼭 아이맥스로 봐야 해'라는 말을 호들갑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이라면 호들갑이라는 표현이 틀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장면을 일반 상영관 화면비로 본 관객들이라면 영화가 의도하고자 했던 연출을 반 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다수의 관객은 일반 포맷이 아닌 아이맥스 포맷으로 <듄>을 관람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우리는 아이맥스관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까?
4.
현재 한국에 있는 아이맥스 관은 총 26개로, 이중 절반인 13개관이 서울/경기/인천, 즉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2025년 기준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겼으니, 어찌 보면 아이맥스 관 반절이 수도권에 모여있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그 나머지 반절의 인구가 얼마나 넓은 면적에 분포해있는지다. 한국 인구 나머지 반이 수도권 외 지역에 사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단순 계산으로 수도권에 13개, 나머지에 13개 이렇게 위치한다면, 이것이 과연 수도권 외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아이맥스 관람이 가능하도록 기회를 준 것일까.
5.
내가 사는 곳에는 아이맥스 관이 있다. 나름 어디 가서 내세울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그럴듯하게 만들어 오픈했는데, 이 상영관이 생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맥스 영화를 보기 위해선 고속버스를 타고 저 멀리 시외로 나갔어야 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여전히 많은 지역의 관객들은 아이맥스 영화를 보기 위해 그것이 시외버스가 되었든, 고속버스가 되었든, 그것도 아니면 기차가 되었든 어쨌든 무언가를 타고 저 멀리 떠나야 한다. 영화보다 교통비가 더 드는, 러닝타임보다 왕복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 감상하기를 포기한다. 사실 대다수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정말 보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단순히 그 사람에게 있어 영화가 그정도 가치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 보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일반 관에서 감상하게 되고, 결국 의도한 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유는 결국 특별관에 대한 접근성이다. 접근성의 차이가 감상의 차이를 낳는다. 결국 영화 <듄>(을 비롯한 많은 아이맥스 포맷 개봉 영화)의 관객은 아이맥스 관을 통해 그 의도를 제대로 감상한 관객과 일반 관을 통해 연출 의도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더 많은 관객으로 나뉘게 된다. 그럼 앞선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보편적인 상영관이 아닌 특정 상영관에서 봤을 때 제대로 된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영화라면 그것이 과연 공평한 것일까? 그것이 좋은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6.
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영화관, 단관도 아닌 멀티플렉스, 거기다가 특별관을 운영하는 입장이라면 영화 관람률도 떨어지고 인구수도 한참 부족한 동네에 아이맥스 상영관을 턱 하고 개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배임행위로 까지 보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음에도 모두에게 공평한 관람 환경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보고 있는 대부분의 기술들은 모두 한때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그 시대의 아이맥스 상영관이었다. 그 기술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며 표준이 된 것이다. 기술이 있으면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늘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누군가는 같은 영화를 보고 있음에도 같은 환경에서 보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동등한 환경에서 영화를 보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히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모두가 나쁜 환경에서, 모두가 특별관에서, 모두가 일반관에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오랜 논의 끝에도 답이 나오지 않을 이 질문을 끊임없이 고민할 때, 우리는 보다 나은 영화 관람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