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23. 영화 <힘을 낼 시간>
1.
<힘을 낼 시간>은 개봉 한참 전에 어느 영화제를 통해 이미 감상을 마친 영화였다. 세상에 완벽한 영화가 몇이나 있겠냐만, 그럼에도 만듦새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몇몇 부분들이 있어 함께 극장을 방문했던 사람들과 술집에 자리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아쉬움을 토로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힘을 낼 시간>은 그렇게 영화제 기간 중 우악스럽게 먹어치운 여러 영화들 중 하나가 되어 기억 속에 잊혔었다.
영화는 결국 관객을 만나기 위해 만들어진다. 한참이 지나고 난 후에야 들려온 정식 개봉 소식 덕분에 기억 저편에서 다시 <힘을 낼 시간>을 끄집어 내보았다. 감상 시간은 꽤 멀리 떨어지긴 했지만, 그 기간 덕분에 다소 불만이 있었던 만족도에 가려져 미처 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오히려 보이기 시작했다.
2.
이른 나이에 은퇴한 아이돌 가수 수민과 사랑, 그리고 태희. '아이돌'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은퇴'라는 단어가 그들의 지난한 활동 과정을 느껴지는 것 같은데, 심지어 '이른 나이'라는 묘사까지 붙었다. 이 몇 안 되는 단어들의 조합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애잔함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 청춘은 온전히 자신의 꿈에 투자한 시간 동안 다른 무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잊은 것 같기도 했다. 은퇴 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한 그들은 우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수학여행을 경험해보고자 무작정 제주도로 떠난다.
3.
극 중 세 청춘이 은퇴한 아이돌로 설정되었지만, <힘을 낼 시간>은 어떤 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대다수의 청춘들, 그리고 어떤 일에 몸을 던졌지만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어떤 좌절감을 가지고 빠져나온 또 다른 청춘들 모두를 품는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 또한 방황의 20대를 겪은 적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지금의 일을 찾기까지 숱한 무력함을 느꼈다. 그 당시의 나는 나 스스로 너무 못난 나머지 다른 누군가와 마주치기 조차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불쌍하다고 구태여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져있었나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때 당시 나는 그랬다. 물론 이 영화처럼 법적인 문제에 얽혀 다른 일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거나, 거식증이 생기거나, 자해를 한다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어쨌든 꽤 힘든 시간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 당시의 내가 가장 힘들다. 지나고 봐서 '그때 왜 그랬지'는 의미가 없다. 말 그대로 지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4.
가방도 잃어버리고 돈도 다 떨어진 세 청춘이 얻을 수 있는 힐링이라고는 없을 것 같지만 세 사람은 뜻밖의 치유를 하게 된다. 한때 세 아이들의 팬이었던 소윤 덕분이다. 세 사람은 사랑받아야만 하는 존재들이었지만 사랑받지 못해 그 가치를 잃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확실한 팬이었던 단 사람의 존재는 다시 한번 그들의 가치를 작게나마 되살려주는 존재가 된다.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소윤은 어쩌면 세 아이들이 꿈꿨던 수많은 무리의 팬덤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그들을 사랑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 아이들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는 그들뿐만 아니다. 우리에게도 소윤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가치 있고, 또 우리가 다른 이들의 존재에 가치를 만들어주는 것은 내가 받는 사랑과 내가 주는 관심이다. 우리를 가치 있게 만드는 사람은 늘 우리 주변에 있다. 힘들고 지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5.
사실 나도 삶에 대한 경험은 적다. 영화 속 세 청춘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당시의 내가 가장 힘들다. 사실 이는 내가 그 당시의 나를 가장 소중히 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팠던 것이다. 소중하지 않으면 애초에 아플 이유도 없다. 나를 사랑해 주는 다른 누구만큼 나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 하루 힘을 내보고자 한다. 소중한 내가 더 힘들면 안 되지 않는가. 그렇게 1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영화 후반의 대사가 다시 한번 들렸다. 그렇다, 우리 모두 힘을 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