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_46. 영화 <퍼스트 라이드>
※ 스포일러 주의
1.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에서 한바탕 소동에 휘말리고, 뜻밖의 여정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꽤 많이 사용되는 코미디 소재다. 영화 <휴가 대소동>은 그 대표 격이 되는 작품이고, <행 오버> 시리즈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퍼스트 라이드> 또한 이와 비슷하게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 자체는 평범하고 무난한 영화다. 다만, 풀어가는 방식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2.
여행 영화지만 영화 초반에는 주요 인물들이 왜 여행을 못 갔는지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며, 네 명(혹은 다섯 명)의 인물들이 어떤 관계인지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이 과정을 끌어가는 방식은 서사를 쌓는 것보다는 단발성 농담들이다. 이야기의 밀도를 포기하는 대신 선택한 소위 잔잔바리 농담들이 극의 활력을 살리는 것은 맞다. 다만, 극 자체의 서사가 깊지 못하다 보니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의 과정에서 힘이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여행을 떠날 때의 쾌감은 다소 줄어든다.
또한 태국에서 주인공 일행들이 겪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방식도 다소 안일하다. 극 중 일어난 사건을 주인공들이 직접 해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물 사이 갈등은 한바탕 싸우면 알아서 풀려있고, 외부의 사건들도 가만히 소리 지르다 보면 다른 누군가가 도와서, 가만히 있었더니 알아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듯 해결된다.
3.
영화가 나름의 반전으로 준비해 둔 것은 친구 연민의 죽음이다. 연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도진은 20대 내내 정신병원을 드나들며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영화는 이를 내내 숨기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 밝히게 되는데 사실 연민의 죽음을 비밀이라고 치기에는 굉장히 뻔해 보인다. 이 정도의 뻔함이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 정도가 적당하다 판단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은근하게 몇몇 요소들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심어놓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트리거를 세워두니 이를 반전으로 끌고 가는 동력 자체가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추후에 연민의 죽음이 밝혀졌을 때, 반전으로 작용하여 관객들에게 주는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다. 오히려 밝혀지기까지의 피로가 늘어날 뿐이다.
영화 말미, 장기 매매라는 소재를 끌고 와서 주인공의 여정에 묶어내는데 이 맥락이 눈에 띄게 튄다. 중간에 한두 번 장기 매매를 언급하며 언질을 줬음에도 극 중 등장이 뜬금없이 느껴지는 것은 결국 복선의 유무가 아닌 영화 전반적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방식과 편집이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코미디 영화 내에 무거운 소재를 집어넣어 현실을 꼬집거나 주제의식을 심는 영화는 많지만, 안타깝게도 <퍼스트 라이드>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4.
여타 코미디 영화들이 그러하듯 배우 자체의 역량에 기대는 것도 꽤 크다. 강하늘 배우는 영화 <스물>, <청년경찰>, <해피 뉴 이어>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는 중인데, 이를 통해 강하늘 표 코미디가 또 다른 장르로 자리 잡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번 <퍼스트 라이드>가 영화 <30일>에 이어 남대중 감독이 두 번 연속 강하늘 배우와 작업한 영화임에도 전작만큼 배우를 활용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다.
5.
다소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연말 분위기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요즘, 올해 극장 시장을 조금 빠르게 되돌아보자면 아무래도 한국 코미디 영화의 강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 10위에 든 한국 영화는 총 5편으로, 그중 3편(<좀비딸>, <히트맨 2>, <보스>)이 코미디 영화며 이중 <좀비딸>은 단순히 '10위권 안에 들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 자체가 약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는 그래도 코미디 영화가 선택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영화 <퍼스트 라이드>가 그 흥행 배턴을 넘겨받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태까지의 흥행 목록을 봤을 때, 영화의 만듦새가 흥행과 직결되는 것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금 더 나은 완성품을 보여줬다면 조금 더 관객수를 끌어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