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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Feb 25. 2023

문제는 다른 게 아닙니다, 그냥 영화를 못 만들었어요

2023_11.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1.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이하 <앤트맨 3>)는 여러모로 마블에게 중요한 영화다. 우선 페이즈 5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나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영화들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망적으로 페이즈 4를 마친 이상, 페이즈 5를 여는 입장에서 부담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페이즈 4부터 페이즈 6까지 이어질 '멀티버스 사가'의 악당 정복자 캉이 처음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물론 드라마를 통해 잠깐 소개되긴 했지만, 일반 관객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 인피니티 사가의 타노스와 견줄 수 있는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앤트맨 시리즈의 3편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4편 제작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시리즈의 변주를 줄 타이밍이다. 


 여러모로 <앤트맨 3>가 진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앤트맨 3>가 그 부담을 이겨내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글은 <앤트맨 3>가 가진 아쉬움을 짚어보는 글이다. MCU 팬 입장에서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2.

 <앤트맨 3>에서 새롭게 소개되는 주요 인물은 크게 캐시, 재닛, 캉 세 명이다. 캐시는 이전 영화에서 관객들의 환심을 살 귀여운 어린이, 그리고 스캇 랭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동력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 캐시는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이지 극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인물이 아니었다. 지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시리즈 전체에 생긴 시간 공백으로 인해 캐시 랭도 성인이 되었고, 이는 곧 캐시를 극 전면에 내세울 다양한 방법이 생겼다는 의미와 같다.


 재닛은 지난 2편, 양자영역에서 구출된 인물로, 시리즈 내에서 누구보다 양자영역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앤트맨 3>의 배경이 양자영역인 이상, 재닛이 활용될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두 인물 모두 극의 중심으로 끌어들여왔다.


 1편에선 스캇 랭을 '앤트맨'으로 만들고, 2편에서는 그에게 파트너 '와스프'를 붙여주고, 3편에선 기존 인물을 중심부로 끌어들이고,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고. 사실 시리즈를 이어가는 아주 교과서적인 방법이다.


3.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안타까운 점은 두 인물이 썩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다는 것이다. 캐시는 '대책 없이 옳음만 추구하다 사고 쳐서 주위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 설정인데, 사실 이미 많은 관객들이 이런 캐릭터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옳은 일을 위해 힘쓰는 인물을 굳이 흠잡을 생각은 없지만, 앞서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를 통해 외골수에 가까울 정도의 정의로운 캐릭터도 매력 있게 만드는 방법을 충분히 익히지 않았는가. 많은 등장인물이 출연하고, 캐시라는 캐릭터만을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부울 수 없기 때문에 빠듯했을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2시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이 정도밖에 표현을 못했느냐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재닛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도움도 전혀 안되고 재미도 없는 미스터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실 <앤트맨 3>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은 재닛이 제대로 설명만 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이 있었고, 사실 듣고 나면 딱히 납득 못할 이야기들도 아닌데, 무조건 '나중에 말해줄게, 일단 내 말대로 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답답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캐시도 그렇고, 재닛도 그렇고 극 중 보여주는 모습은 내가 싫어하는 캐릭터의 전형이다.


4.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더 큰 문제는 캉이다. 앞서 말했듯 캉은 MCU 멀티버스 사가 전체를 아우를 최종 빌런이다. 드라마를 통해 잠시 등장한 적은 있지만, 스크린을 통해 많은 관객에게 소개되는 것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영화가 <앤트맨 3>라는 점이다. 앤트맨은 코미디에 방점을 찍은 시리즈다. 사실 MCU를 뒤돌아 봤을 때 진지한 영화가 몇 편이나 있었느냐 싶지만 <앤트맨> 시리즈는 특히 도드라졌다. 우리가 정복자 캉을 보며 느껴야 했던 감정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등장했을 때의 그 압도적인 강력함이다. (페이즈 4는 이미 지나갔으니) 두 개의 페이즈를 이끌어가야 할 중심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인물이 앤트맨과 함께 있으니 가져야 할 무게감이 줄어든다.


 아마 캉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드라마 <로키>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계속 존재하는 자'로 소개되지 않았는가. 모든 개체 하나하나가 강력하다면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그 점이 아주 치명적이고, 공포스럽게 다가왔을 것이다. 문제는 <앤트맨 3>에서 보여준 캉은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다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쿠키영상에서 나오는 여러 시간선의 캉들을 봤을 때,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딱히 강력한 위협으로도 와닿지 않는다. 물론 극 중 나온 캉은 양자영역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긴 한다. 근데 그게 또 문제다, 양자영역.


5.
 시리즈 1편에서는 양자영역에 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그곳에서 돌아온 스캇 랭이 기적이라는 식으로 묘사된다. 그랬던 양자영역이 <앤트맨 3>에 와서는 캐시 랭이 집 지하실에 만든 작은 기계로 통신하고, 타자 몇 번으로 포털도 열 수 있는, 앞마당 수준의 공간이 된다. 문제는 핍진성이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또,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양자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필연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는 스캇의 가족들이 양자영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이 우주에서 겪은 일이라고 해도 '그런가...'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다. 배경을 양자영역으로 설정하고, 양자영역에선 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한, 우리 현실과 전혀 다른 공간이라고 이야기했으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다른 시리즈 등장인물들이 현실, 혹은 우주 배경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로 구성했어야 한다. 하지만 <앤트맨 3>에서 보여준 양자영역과 그 설정은 그냥 캉을 잡아두기 위한 도구 그 이상, 그 이하의 역할도 되지 못한다. 다른 우주 정도로 대체되어도 하등 문제없을 공간이라면, 굳이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자영역 내에 존재하는 사회도 공감이 힘들다. 물론 캉에 의해 억압받은 사람들이라는 설정은 몇 장면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그 모습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봉기하는 인물들'이라는 인식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극 후반 캐시가 연설로 인물들을 감화시키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올리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앞서 MCU에서 소개된 세계관이 몇 가지 있다. 일단 가장 기본적으로 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는 현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위시한 우주 세계, 닥터 스트레인지 중심의 나온 마법 세계 등. 이 여러 세계 사이에 양자영역 세계를 소개하려면 확실한 차별화가 있어야 했다. 그 차별점을 이 영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6.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이 문제들이 수렴하는 지점은 결국 주인공 스캇이다. 주인공을 도우며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주변 인물,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매력을 부각할 악당, 주인공만이 갈 수 있는 세계이기에 특별한 세계. 이 세 가지 모두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캇이라는 인물은 '재밌지' 않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양자영역 속 소통이 부족한 재닛과 캐시의 뒷수습에 바쁜 앤트맨이 아쉽다. 캉의 무게에 맞추느라 앤트맨은 애매하게 어두워졌고, 앤트맨의 가벼움에 맞추느라 캉은 '끝판왕'이 가져야 할 무게를 잃었다.


 앤트맨의 특징은 극단이다. 양자영역에 들어갈 정도로 극단적으로 작아지고, 비행기를 집어던질 정도로 건물만큼 커지고. 차라리 영화도 극단적으로 가볍게 가거나, 극단적으로 무겁게 가는 게 어땠을까 생각한다.


 모든 히어로 영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히어로 영화는 배우보다 캐릭터가 앞서는 경우가 많다. 같은 맥락으로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히어로 영화를 보고 만족을 얻기란 쉽지 않다. 아마, <앤트맨 3>가 그 예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7.
 많은 사람들이 최근 MCU 시리즈가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로 PC를 이야기한다. 사실 난 PC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만큼의 큰 거부감이 없다. 물론 너무 억지로 집어넣은 PC라든가, 본인들이 여러 인종, 여러 성적 지향을 영화 내에 넣었다는 것을 구태여 티 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느끼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MCU가 가진 문제는 그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앤트맨 3>야말로 이성애자 백인 가족이 흑인 악당을 물리치는 지극히 반 PC적인 영화 아닌가.


 또 다른 이유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 나온 캉도 <로키>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사실이나 굳이 <로키>를 챙겨보지 않더라도 영화를 따라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 중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고 감상에 문제가 생길만한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밖에 없다. 문제는 PC도, 드라마도 아니다. 그냥 영화를 못 만드는 것이다.


 매번 마블의 위기, 마지막 희망 얘기가 나오지만 언제나 그랬듯 (평가를 떠나) 이번 영화도 흥행할 것이고, 속편은 계속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시리즈를 언제까지 개봉일을 기다리며 챙겨볼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4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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