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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Mar 02. 2023

스스로 만든 한계 속에서 새로운 발상을 내보이려면

2023_12. 영화 <서치 2>

1.

 가끔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역으로 활용하여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도서 『할리우드 장르』에서는 영화에서 새로움을 기대하는 관객의 요구를 만족시킬 만큼 창조적이고,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기존 관습에 의존해야 했다고 말한다. 즉, 영화란 기존의 관습을 구체화, 세련화 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추가하고 관객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발전한 것이다. '장르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난 후 마치 포디즘을 카메라로 찍어낸 듯한 통조림 영화들이 등장했지만, 여러 영화감독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던 장르라는 한계 속에서나마 새로움을 추구하며 양식을 비틀고, 예외를 만들며 장르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창조적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할리우드 장르 시스템은 이런 방식을 통해 정착되었다. 그리고 그 후, 할리우드는 포스터 모던 시대를 맞았다. 경계를 허문 포스트 모던 시대의 여러 예술들이 그러하듯 많은 장르들은 자신들 내부를 가르고 있던 장르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혼재하며 다시 발전했다. 이렇듯 영화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 내부에서, 그리고 그 한계를 무너뜨리며 발전해 왔다.


2.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긴 하지만 영화 <서치>를 보면서 한계 속에서 발전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느낌을 받았다. <서치>를 재밌게 봤던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이 영화가 보여준 연출 형식 때문이다. 관객의 긴장감을 형성해야 하는 영화 장르는 최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서 동력을 얻는다. 범인이 존재하는 범죄 영화라면 주인공은 아무 정보 없이 몸(혹은 머리)으로 뛰며 정보를 캐 다음 범죄를 예측해 막아야 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범인이 저지른 행동의 의도를 추리해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 공포영화는 어떤가, 최대한 시각적 정보를 줄여야 하다못해 점프 스케어라로 몇 개 집어넣을 수 있다.


영화 <서치>

 <서치>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숨긴다'라는 개념을 넘어 사실상 관객을 '가둔다'. 단순히 정보와 시각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 아예 사각 모니터 안에 관객을 말 그대로 가둬버린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휴대폰, 노트북, CCTV 화면만으로 극을 진행하며, 이로 인해 등장인물의 시야는 의미가 없어진다. 관객의 시야를 극단적으로 가둬버린 상황에선 긴장감보다 답답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서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정해놓은 아주 좁은 한계 속에서야 빛을 발할 수 있는 창의력을 가지고 극을 끌고 간다. 매끈한 노트북 UI 속 마우스 움직임에서 인물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지도 위치 표시를 통해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굉장한 능력이다.


3.

 <서치>에 대한 만족도가 꽤 높았던 이유들은 반대로 속편에 대한 우려로 나타난다. 사실 만족스럽게 감상한 영화의 속편이 제작되면 기대와 함께 우려도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다만, <서치 2>의 경우는 조금 남다르다. 전편이 가지고 있던 장점은 바로 '그 연출을 처음 봤기 때문에' 가능한 독창성, 신선함이다. '신선한' 연출이 장점이었다는 말은 반대로 그 연출이 '신선한' 기법으로 느껴지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과 같다. <서치 2>가 '2'라는 숫자를 제목에 달고 나온 이상(물론 원제에는 숫자가 들어가지 않지만) 전편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속편이 진행될지 유추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전편이 받았던 호평을 그대로 흡수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감독이 가진 부담감도 컸을 것이다. 물론 한 번의 동어 반복 정도야 눈감아줄 관객들도 많지만, 욕심 있는 연출가라면 그렇게 안전하게만 가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서치 2>는 전편이 가지고 있는 연출의 틀은 그대로 가지고 가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 연출가 나름대로의 욕심이 몇 숟가락 더 들어가 있다. 이 말은 곧 전편과는 다른 점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한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4.

영화 <서치 2>

 전편과 <서치 2>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대의 확장이다. 전편에서는 오롯이 아버지 혼자 사라진 딸을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면, 이번에는 심부름 서비스, 그리고 해당 서비스를 통해 고용한 플랫폼 노동자(자비)를 통해 타 국가까지 무대가 확정된다. 미국의 한 동네에서, 콜롬비아까지 확장된 무대 덕분에 주인공이 보다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게 된다.


 심부름 서비스를 통해 연결된 인물 자비는 사실상 형식에 묶여있는 주인공의 또 다른 몸이다. 해당 인물은 주인공의 분신임과 동시에 자아를 가진 새로운 등장인물이다. 자비가 준에게 고용된 이상, 그의 행동에 굳이 이유를 붙여 설득할 필요성이 낮아진다. 그가 준을 진정시키며 얘기한 자신의 과거는 사실상 주인공과 주인공 어머니 사이의 이야기로, 극 중 인물이 가졌을 감정을 관객들에게 환기시켜 준다. 주인공의 분신을 만나는 방식을 돈에 따른 계약으로, 그리고 분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사로 설득력을 부여한 것은 나름 치열한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5.

 SNS를 통해 딸의 흔적을 일방적으로 쫓아가는 입장인 전편과는 다르게, 이번 편에서는 스냅챗과 같은 SNS를 이용하는 딸이 주인공이 되었다. 영화는 이를 적극 활용한다. 영화 특성상, 활약할 수 있는 무대 하나 추가되는 것은 타 영화보다 큰 효과를 가져다준다. 전편에서 아버지와 딸이 느꼈을 감정을 영화 시작 시 보여주는 비디오와 캘린더 앱 정리로 보여주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전편과 같은 방식에 더해 SNS를 통한 설명을 덧붙여 주인공의 감정을 다시 한번 반복 설명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다만 이렇게 확장한 무대를 주인공 감정 묘사에 활용하는 정도로 그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6.

영화 <서치 2>

 모니터 외의 화면을 가져갈 수 있는 한 최대한 가져가려는 의도가 눈에 띈다. 조금은 강박적으로 화면 중앙에 띄워놓는 페이스 타임 창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는 확실히 인물을 보여줄 시점을 늘려놓겠다는 말로 보인다. 관광지 CCTV나, 집 앞에 설치해 놓은 CCTV를 보면 어떻게든 인물의 활동을 다각도로 하나라도 더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다만, 조금은 억지스럽게 늘려놓은 카메라 시점들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편집은 확실히 리드미컬하게 바뀌었다. 앱 UI 모션을 탄성 있게 만든 것은 분명 호평할 부분이다. 인물이 직접 이동할 수 없고, 이동한다 하더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모습을 대신하는 것은 UI 모션이다. 탄성 있는 모션은 인물의 액션이 없는 화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정적인 시간을 줄여준다.


이렇게 추가된 카메라와 UI 모션은 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모니터 속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이는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낄 틈을 줄여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 장르적인 쾌감도 향상한다. 전편에 비해 나름대로 반전도 몇 번 더 넣어 관객의 몰입도 높여준다.


7.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외의 모든 장점들은 1편에서 느낄 수 있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충분히 창의적이었던 전편에서 굳이 속편을 낼 필요가 있었냐는 의문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과거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다들 알다시피 극 중간, 한번 영화 전체를 크게 선회하는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호평한 이유의 5할 이상은 그 중간의 코너링이었다. 그 이후 이 영화의 짧은 스핀오프 작품이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이를 봐야겠다 생각한 적이 없다. 이미 그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였던 요소를 알게 된 이상 속편은 그 이점을 단 하나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서치 2>를 그 영화와 비교하기엔 다소 억울한 점이 있다. 하지만, 잘 만들었다고 해서 '굳이'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서치 2>는 충분히 재밌게 본 영화임에도 나에게 있어 '굳이'에 속하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잘 만든 영화는 그냥 그 한편으로만 놔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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