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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Feb 16. 2023

우리네 인생의 푸른 봄날에

2023_10. 영화 <족구왕>

1.

 과연 언제까지가 청춘인지 생각해 봤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은 정량적으로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청춘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먼저 따져봐야 했다. 푸를 청(靑)에 봄 춘(春).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보자면 '푸른 봄'이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청춘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쓰지 않는가. 당연히 기준을 한국으로 잡아봤다. 한국은 사계절이 있는 나라다. 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도 있고, 계산 상 편리하기도 하니, 100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자. 100을 4로 나눠보면 25, 즉 평균 나이에 계절을 대입해 보면 대략 25살까지가 봄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청춘은 푸른 봄이라는 뜻이니, 이 모든 정보를 조합해 보면 25살까지가 청춘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물론 봄과 가을이 비정상적으로 짧아진 요즘, 어쩌면 25세가 아니라 20세, 더 나아가 10대까지 내려가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슬픈 일 아닌가. 그냥 25살로 합의 보는 걸로 했다. 그렇다면 26살이 되면 '아, 젊은 날 다 갔다'라고 생각해야 하나? 사실 이런 주장을 수긍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당장 나부터도 충격받았는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과격하고, 단순한 접근방법인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계산 결과는 이렇다, 청춘은 25세까지.


2.

 영화 <족구왕>의 주인공 홍만섭은 24살 복학생이다. 우리의 공식대로라면 청춘이 고작 1년 남은 그는, 족구가 너무 좋다. 이미 족구로 군부대 내를 평정한 그는 전역 후 대학에 복학하고 난 뒤에도 족구가 계속하고 싶다. 문제는 족구장이 없다. 그가 열심히 나라를 지키던 사이 교내 족구장이 테니스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족구장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총장도 찾아가고, 과제를 함께 하게 된 안나와 서명운동도 벌인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안나의 남자친구(였던) 강민과 족구 대결을 하게 된 만섭. 이를 계기로 교내에 족구 바람이 일어난다. 과연 만섭은 족구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그는 다시 행복한 족구를 할 수 있게 될까? 그는 안나와 사귈 수 있을까?


영화 <족구왕>

 <족구왕>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청춘 영화다. <족구왕>에서 보여주는 것들 중 새롭다거나 신선한 것은 사실 거의 없다. 여느 청춘 여화에서나, 여느 스포츠 영화에서나 다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평범한 내용의 영화에 축구도, 농구도, 야구도 아닌 '족구'라는 스포츠 종목을 끌고 들어와 없어 보이는 청년들을 조금 더 부각하고(물론 족구가 없어 보이는 종목은 아니지만 영화 내에선 그렇게 보이도록 유도한다) 중간중간 재치 있는 장면과 대사를 삽입해 극의 활력을 높인다. 다들 알다시피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결국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족구왕>은 메시지는 흔하지만 어쨌든 '잘 보여준' 영화다.


3.

 <족구왕>에서 이야기하는 청춘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청춘이다. 극의 결말에 다다랐을 때, 인물들은 현실 도피, 치부, 수치와 같은 것들을 전부 걷어내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간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발표에서 이야기하듯 만섭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한다. 그 시대의 만섭은 누구보다 재미없는 삶을 살았고, 과거로 돌아가면 못했던 것들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그는 24살 만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족구를 실컷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안나)를 만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에게 창피함이란 없다. 누가 봐도 민망한 상황이지만 그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형국은 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3년 동안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그는 족구를 사랑한다. 3년 전, 식품영양학과를 족구 결승전까지 올려놓은 전설의 인물이다. 지금은 사회에 찌들고 현실에 치여 공무원을 세상 모든 문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여기는, 그런 사람이다. 선수 부상으로 만섭이 경기를 포기하려던 그때, 그는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족구의 품으로 돌아온다.


 강민은 허세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반지르르해 보이지만 사실 고시원 방세도 제때 내지 못하는 카푸어에, 이미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안나 주위에서 질척거리고 모진 말을 뱉으며 신경을 긁는다. 축구를 그만둔 뒤, 본인 입으로 '나 인생 종친 놈이니까'라고 말하며 거칠게 살아간다. 그런 그가 만섭을  찾아가 족구 한번 더 하자며 얘기한다. '안나 씨도 공 차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라는 만섭의 말에 토목과 해병대 선배를 찾아가 자존심 굽히고 '선배님' 소리를 하며 족구 대회에 함께 참여해 달라 '부탁'한다.


4.

영화 <족구왕>

 솔직히 우스워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족구가 뭐라고, 학교 체육대회가 뭐라고. 그래도 그들은 지금 가장 마음이 가는 곳,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 그걸 찾아간다. 마치 '별거 아닌 거 맞아, 근데 이게 좋아'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컴컴한 고시원 방으로 숨어버린 강민에게 안나는 얘기 한다. "야, 축구도 그렇고 고시원도 그렇고 벤츠도 그렇고 우리 사이도 그래, 좀 쪽팔리면 어떠냐?", "만섭이 봐, 존나 병신 같아도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잖아"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삶이 언제나 멋질 수는 없다. 쪽팔린 일 투성이다. 나는 당장 오늘만 봐도 세 번 정도 쪽팔렸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내가 하고 싶어도 주변을 의식해 숨기곤 했다. 누구나 'Love Yourself'를 얘기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느끼는 수치심의 정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족구왕>이 얘기하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만섭처럼 당당하게 하고 싶은 거 하면 돼', '인생 돌아갈 수 있어, 형국처럼 다시 돌아오기만 해', '쪽팔리더라도 강민처럼 고개 한번 숙여 인정하면 돼' 병신 같은 일일 수 있지만, 그 일이 내가 하고 싶다면 더 이상 그 일은 병신 같은 일이 아니라 내 청춘을 완성시킬 한 조각이다. 그래서 영화는 꾸준히 '좀 쪽팔리다고 숨지 말자', '숨기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자' 제창한다.


5.

영화 <족구왕>

 앞서 말했듯, 만섭은 안나에게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한다. 그게 그냥 여자에게 말 걸어 본 적 없는 복학생의 재미없는 농담인지, 진짜 미래에서 온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만섭은 청춘의 마지노선 25살이 되어서도, 서른 살이 되어서도, 마흔, 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가 되어서도 영원히 청춘일 것이라는 점이다. 만섭은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시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니까.


6.

 자, <족구왕>의 이런 희망찬 메시지를 읽었다면 청춘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볼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글 서두에 적어둔 정량적 방법은 너무 딱딱했다. 조금 유하고, 온순해질 필요가 있다.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마침 떠오르는 사례가 하나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유재석이 가수로 무대에 올라간 적이 있다. 해당 무대영상의 댓글로 누군가 '청춘은 단순히 숫자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열정적인 순간'이라는 말을 적었다. 그 댓글 작성자가 직접 만든 말인지, 아니면 원 출처가 따로 있는지, 그것까지는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내가 무언가 숨기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 순간이 청춘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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