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_07. 영화 <휴민트>
1.
개인적인 평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영화 <휴민트>는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액션 영화다. 반대로 잘 만든 첩보 영화로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장점도, 단점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 완성본을 놓고 보자면 약간 애매한 지점에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배우의 매력에, 그리고 후반부의 크게 터지는 액션에 감상의 방점을 놓고 보면 그럭저럭 만족하고 나올 수 있겠지만, 첩보 영화가 가진 매력을 찾고자 한다면 아마 좋은 평가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2.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음울하거나 침체되고, 다소 낙후되기도 한 도시 묘사는 극장의 관객들에게까지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게끔 하는데, 이는 이 영화가 추구하는 미장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서로를 믿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단 한 명도 믿지 못하는 고독한 상황을 이 배경 묘사를 통해 배가시킨다. 여러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인물의 고립감만큼은 제대로 와닿는 것은 이 배경 묘사 덕이 크다.
류승완 감독의 주특기인 액션은 역시나 보는 재미가 있다.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무쌍, 액션 합보다는 단순 컷 연결이 전보다 조금 더 느껴지긴 하지만 역시 기본적인 재미, 그리고 소위 '멋'이 있는 액션을 선보인다. 영화 후반 부의 2:1 격투 씬은 짜릿한 임팩트를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의외로 총격전보다는 카체이싱 장면인데, 극 중 가장 큰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본인이 하고 싶은 액션을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
3.
개봉 전부터 많은 홍보가 되었던 배우들 역시 맡은 바 충분히 본인 몫을 수행해 낸다. 워낙 연기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들로만 캐스팅이 채워져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듯, 이번 영화에서 특별히 더 눈에 띈 배우는 박정민 배우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가장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명의 힘을 많이 받긴 했지만) 첫 등장에 보였던 사나운 짐승의 눈빛에서 채선화와의 만남으로 요동치는 내적 갈등까지 그 감정의 파동을 잘 표현해 낸다. 조인성 배우가 분한 조 과장은 휴민트 포섭을 위해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말투를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조 과장과 박건 사이 대비가 더 커져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조 과장과 박건은 가장 차가워야 할 사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으로 인해 감정의 벽이 무너지게 된다. 첫 휴민트를 잃음으로 감정적으로 더 크게 동요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사람은 조 과장이나, 의외로 감정적으로 내려앉는 것은 조 과장이 아닌 박건이다. 조 과장이 채선화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것은 신의라는 측면에 기댄 것이었다면 박건이 달려든 것은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캐릭터 구성 면에 있어서나, 액션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나 보다 본능적인 경향이 크다. 이렇게 엇갈리게 구성해 놓은 설정이 꽤 흥미롭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좋은 각본의 이야기로까지 연장되지는 않는다.
4.
다른 것은 몰라도 각본에 신경을 덜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인물 구도 자체는 설정을 잘해놨다. 조 과장, 박건, 채선화 세 사람은 채선화를 교점으로 하나의 팀으로 묶이는데, 하나의 팀이지만 그 누구도 서로를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재밌는 장치들을 많이 배치해 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구도의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단지 조금의 의심이나 긴장 정도로 구도 활용이 마무리되고, 이를 통한 서스펜스 형성은 따로 크게 없다.
조 과장과 박건 두 인물도 너무 허술하다. 그래도 해외까지 나와서 활동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인정받은 요원이라는 의미일 텐데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 한 둘이 아니다. 마스크 하나 정도만 걸치고 대놓고 '저 여기 있어요'라며 홍보하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접선해야 한다면서 누가 봐도 '여길 통해서 이동했겠네'라는 생각이 들게끔 연결된 방으로 대놓고 잡아두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설정이 국정원 요원 아닌가. 포스 있게 등장했던 초반의 기세와는 다르게, 몰래 설치해 봤자 바로 들켜버리는 녹음기에, 감시당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술을 병째 들이켜는 모습을 보면 실력에 비해 너무 크게 포장되어 소문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보위성 조장이라고 그러지 않았나. 남발되는 허술함에 첩보물이라는 장르가 무색해진다.
5.
아마 많은 관객들이 보면서 놀랐을 법한 부분이 후반부 인신매매 장면일 것이다. 일종의 전시장처럼 방탄유리상자 안에 갇힌 북한 여성들이 쭉 줄지어 세워져 있는데, 이를 보고 불쾌함을 느꼈을 관객들이 꽤 될 것이다. 이는 인신매매를 단순히 소재 정도로 쓴 것이 아니라 요깃거리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여성들이 갇혀있는 방탄유리 상자를 구조물로 활용하여 총격전을 벌이는 것을 봤을 때, 안일하고 큰 고민 없이 단순히 볼거리만 생각해서 설정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설정뿐만 아니라 타이틀 타이포 디자인도, 어느 순간 류승완 감독이 꽂힌 것 같은 인물 얼굴을 강조한 디졸브도, 조 과장과 박건이 총격전 와중에 등을 맞대는 다소 예스러운 구도도 시대에, 혹은 작품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6.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말이 나쁜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평가라고 본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의 영화를, 이 정도 네임벨류를 가진 감독이, 이 정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들을 데리고 만든 영화를 평가할 때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말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분명 재밌게 봤지만, 그래서 더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류승완 감독은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 이상의 평가를 받을 작품을 분명 들고 나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 믿음을 충족시켜 줄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