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_08. 영화 <파과>
1.
베스트셀러의 영화화는 이후 완성도와는 별개로 일단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사기 마련이다. 특히 구병모 작가의 작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은 책이라면 그 기대는 더 커질 것이다. 구병모 작가의 대표작 『파과』를 원작으로 영화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기대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개봉 이후, 전반적인 완성도 부분에 있어서 평가가 갈린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많은 독자가 선택한 원작을 가진 만큼 눈길 가는 부분이 많았던 영화이기도 하다.
2.
영화 <파과>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인물 설정에서 나온다. 주인공 '조각'은 '노쇠한 60대 여성 킬러'라는 설정인데, 노화의 과정을 겪는 여성은 많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고, 또한 노화의 과정을 겪는 킬러 또한 여러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둘을 하나로 묶은 캐릭터는 여태껏 한국 영화에서 살펴볼 수 없었던 캐릭터임이 확실히다. 이 설정이 영화 내 여성 캐릭터의 다변화로 봐야 할지, 킬러 캐릭터의 단순한 변주로 나온 설정일지는 판단하는 사람의 몫이겠지만, 어쨌든 꽤 큰 의미가 있는 인물 활용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좋다는 것과 낯설다는 것은 어쨌든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설정이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많이 접해본 내용이 아니라면 이를 관객들에게 어색하지 않도록 소개해주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는 것은 아무래도 이혜영 배우일이다. 이혜영 배우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과 연기는 조각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했다고 보인다. 따로 액션 연기를 수행한 적이 없었던 배우이기 때문에 아쉬운 움직임이 드문드문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액션 쪽에서의 존재감 또한 돋보인다.
3.
김성철 배우가 분한 '투우' 또한 흥미로운 캐릭터다. 특히 투우가 바라본 조각과의 관계는 단순하게 유사 모자 관계 정도가 아닌 뒤틀린 애증을 보여주는데, 이를 풀어내는 김성철 배우의 표현력이 뛰어나다. 이 관계 설정으로 두 인물이 벌이는 마지막 전투는 그저 서로를 무너뜨리거나 상처 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자 지난한 관계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워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김성철 배우의 대사 처리나 표정 또한 감정에 잠겨 있어 비현실적인 상황임에도 어느 정도 몰입을 보장한다. 이혜영 배우와 김성철 배우는 확실하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다.
4.
다만,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와중에도 두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앞서 나오고, 다른 인물들에 대해 풀어낼 것이 없다는 것은 그대로 영화의 약점이 된다. 조각과 투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이 다소 단순하게 묘사된 지점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조각과 투우를 제외한 인물 중 극 중 비중이 가장 크고, 다른 인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강 선생'인데, 해당 인물의 경우에도 단순히 본인의 역할을 하는 것쯤에서 그치고 만다. 심지어 몇몇 부분에서는 그 '본인의 역할'이 극 진행을 위해 다소 작위적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조각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강 선생과 그의 딸은 굉장히 어색할 정도의 행동을 조각의 일상에 욱여넣는다. 일상생활 속 숨어 사는 킬러 조직이 현실적인 소재라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느끼는 비현실성과 강 선생의 행동이 보여주는 작위성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의구심을 주기도 한다.
5.
전달하는 이야기 또한 다른 영화들과 흡사한 부분들이 꽤 존재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장르 영화가 그러하니 참작할만한 부분이다. 다만, 흥미로운 설정을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투우는 강 선생에게서 자신의 스승이었던 '류'의 모습을 찾고, 그를 보호하기 시작하는데, 원작이 어땠는지를 떠나서 이 보호의 동력을 보편적인 인류애쯤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쉽다. 단순히 두 관계를 성애적인 부분으로 풀어갔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조각을 성적 어필을 배제한 채, '60대 킬러'에 집중하여 묘사한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본다) 보다 다층적인 감정 묘사로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다양하게 묘사되지 못해서 아쉽다는 의미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해피랜드 대규모 액션 신이다. 그러나 액션 연출이 다소 어색하고 액션 또한 비현실적이다. 일종의 템포 조절이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은데, 많은 액션 영화들이 짧고 빠른 컷 편집으로 액션에 속도감을 부여하곤 하지만, 파과의 경우 그것이 속도감이라기보다는 부산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 아쉽다.
6.
작년에 개봉한 영화기 때문에 성적표는 이미 나온 상태다. 극장 개봉으로 손익 분기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베를린, 브뤼셀, 부산 등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하고, 새로운 편집본이 다시 극장에 걸리기도 하는 등 사람들에게 영화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 여럿 보인 영화인 것은 변함없지만, 그럼에도 충실한 팬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는 그 영화의 매력에 깊게 감겼다는 뜻이다. 상업 영화인 이상 그 쯤에서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소정의 성과는 달성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