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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Apr 20. 2023

어쨌든 진심을 담은 이 세상 모든 영화인을 위하여

2023_21.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1.

 대학 입학 후, 학과에서 가장 먼저 진행했던 행사는 과 동아리 OT였다. 내가 갔던 학과는 과 내 동아리를 중심으로 여러 학사 일정을 진행했고 그런 고로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과 동아리를 선택해 들어갔다. 소속이 없다고 불이익받는 것은 물론 없었지만, 굳이 과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동아리 하나 소속되어 여차저차 소식을 듣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자 관습이었다. 난 당연하게도 영상제작 동아리에 가입했다. 해당 동아리 내에서 내가 만들어낸 두드러진 성과나 결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었던 추억 정도로는 기억하고 있다.


2.

 '영상제작 동아리'답게 동아리 회원들은 카메라를 비롯한 각종 촬영 장비를 손쉽게 대여할 수 있었다. 영상 편집용 컴퓨터도 있었고, 당연히 영상 편집 프로그램 또한 제공되었다. 이렇다 할 재주가 없었기에 그럴듯한 결과물은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쏘다녔던 기억은 꽤 많이 있다. 정말 눈뜨고는 봐주지 못할, 학부 1학년이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퀄리티였지만 어쨌든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고 그때 만들어진 모든 영상들에는 내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3.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영화인들을 위한 영화다. 극중극으로 상영되는 <One Cut of the Dead>는 누가 봐도 조악하고 형편없는 호러영화지만, 촬영 현장 속에는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시키겠다는 감독과 현장 인물들의 노고가 숨 쉬고 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그 모든 영화인들을 위한 일종의 연서이자 찬사다.


 물론 결과물은 조악하지만 그들의 진심 혹은 노력과 열정 같은 것들이 아카데미 수상작이나 칸 영화제 상영작에 뒤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끝까지 감상했다면 <One Cut of the Dead>를 그저 그런 졸작 정도라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영화에는 어쨌든 진심이 담겨있고, 세상 모든 영화인은 어쨌든 진심을 담는다.


4.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솔직한 고백의 시간. 사실 과거에는 영화의 흠을 찾기 위해 영화를 본 적도 꽤 있었다. 물론 '아, 오늘은 진짜 감독 하나 저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가능한 작게 최소 단위로 쪼개 하나하나 씹어보곤 했다. 영화를 있는 힘껏 파헤쳐 최대한 많은 단점을 찾아내고 신랄하게 꼬집는 것이 영화를 잘 소비하는 방법 내지는 잘 감상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나는 아마 영화를 비평하는 것을 영화를 헐뜯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크게 착각했었던 것 같다. 그때 어떤 저작물을 남겨두지 않고 골방에서 혼자 생각만 하고 끝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5.

 언제부턴가 그런 감상법은 나 스스로 피곤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한층 힘을 뺀 상태로 말 그대로 '감상'하기 시작했고, 아마 그때부터 영화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니까. 지금도 영화를 볼 때는 조금 더 너그러운 눈으로, 장점을 더 많이 찾기 위해 노력한다. 솔직히 '이건 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다 느껴지는 영화를 볼 때는 울컥울컥 하기도 한다. 너그럽게 감상하고자 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도 영화에 담겨있는 진심을 조금 더 살펴보기위해 나름 노력한다.


6.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연말연초, 나름 새 마음 새 뜻으로 살아보고자 하는 일 중 하나가 외장 하드 정리다. 이리저리 데이터 더미들을 휘젓고 다니다 보면 스무 살 적 찍었던 영상 한두 개를 발견하곤 한다. 물론 눈 뜨고 보기 민망해 1분, 아니 30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꺼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그 영상들 속에는 그때의 내가 있다. 스무 살 나는 히라구시였고, 그 영상들은 내가 찍었던 <One Cut of the Dead>였다. 조악하고 형편없지만, 촬영할 때만큼은 진심을 담았었다는 뜻이다.


 영화라고 부를 수 도 없는 짧은 영상 조각이지만, '카메라로 담은 모든 영상물'을 영화로 보겠다는 관용적인 기준을 적용해 본다면, 사실 그 1분도 제대로 보지 못할 영상들이 나에겐 세상 가장 재밌는 영화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9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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