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소가맥 Jun 22. 2023

허세가 너를 살게 하리니

2023_30. 영화 <마스터>

1.

 허세만큼 꼴 보기 싫은 게 없다.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웬만큼 현란한 말솜씨가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의 허세는 눈에 빤히 보이기 마련인데 그렇게 티 나는 허세를 부리며 젠체하는 걸 보고 있자면 얄팍해 보이다 못해 안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또 너는 안 그러냐, 물어보면 딱 잡아 아니라고 답하기도 민망한데 따지고 보면 내가 그런 부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허세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지적인 부분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부분이랄까.


2.

게임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

 나는 흔히 말하는 지적 허영심이 아주 강하게 있다. 그렇다고 딱히 그 허영심을 채우는 노력을 하는 편은 아니다.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자면, 마치 게임 속 커비가 악당들을 삼켜 능력을 흡수하는 것처럼 그냥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 모든 지식과 교양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은 ‘그럼 공부해’라고 말할 텐데, 누가 그런 방법을 모르나, 나는 그런 노력 없이 아주 비겁하게 남의 지식들을 훔쳐다가 하루아침에 똑똑해지고 싶다. 내 지식 욕구 대다수는 이런 허무맹랑하고 얄팍한 상상 정도로 끝나곤 하지만 딱 한 가지, 내가 그 허세만큼 실제 능력도 향상한 부분이 있는데 당연하게도 영화와 관련된 지식이다.


3.

 물론, 지금 내가 영화에 대한 교양이 높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형편없는 지금과 비교하더라도 스무 살 당시 나는 훨씬 더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 당시 내가 영화를 대하는 자세는 '본다' 정도에 머물렀고, 영화로 얻는 즐거움 또한 '본다' 이외에는 아직 찾지 못했던 시기였다. 때문에 영화를 볼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웃기게도 영화를 보러 간 날, 그날의 컨디션이었다. 이는 생각보다 더 많이 중요했다. 


 물론 20대 초반이라면 훨훨 날아다닐 때였지만 알바도 야간으로 하고 친구들과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술도 마시고 내키는 대로 자고 일어나 생활 패턴도 일정치 못했던 내게 푹신한 의자와 어두운 실내,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는 최적의 수면 환경을 제공해 줬다. 의외로 누워서 자는 것보다 앉아서 조는 게 더 달콤할 때가 있는데, 이 최적의 조건과 환경 속이라면 그 어떤 불면증 환자도 꾸벅꾸벅 졸지 않고는 베기지 못할 것이다.


4.

 이해 못 할 조용한 영화는 영화라기 보단 자장가에 가까웠다. 보고 있자면 졸릴 뿐이다. 잠들었다. 졸리면 자는 게 응당 자연스러운 이치 아니겠는가. 영화 보기 전 날, 잠도 잘 자고, 과음도 하지 않고, 몸이 가볍다 싶으면 조금 더 오래 버티는 것이다. 전날 잠자리가 뒤숭숭하고, 술도 얼큰히 마시고, 몸이 무겁다 싶으면 일찍 잠드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봐도 모르겠는 그 영화, '뭐 이런 게 다 있냐' 싶은 영화들을 꾸준히 봤다. 그 영화는 내 허영심을 채워줬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작품성 있는 영화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영화여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하고 즐긴다면 그건 '한낱 상업영화'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렵고 따분하고 머릿속은커녕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영화 정도는 되어야 '자본주의적 채산성으로 점철된 상업영화가 아니구나'라며 내 지적 허영심, 요샛말로 소위 '홍대병'이 채워졌다. 당연하게도 대다수 영화들은 상영관 불이 꺼지고 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잤다. 당시 나는 '영화'가 아니라 '예술 영화를 소비하는 나'가 더 중요했으니까.


5.

 문제는 그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볼 때, 그때 발생한다.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니까.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어릴 적, 어느 단편 영화 스텝으로 현장 일을 도운 적이 있었는데, 그 영화를 연출한 감독 형과 영화를 한 편 같이 본 적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방문해 본 독립 영화관이었고, 그 당시 본 영화는 <마스터>였다. 지금 누군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최고 영화가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마스터>라고 뽑을 사람이 열 중 아홉 일 것이다. 그 정도로 좋은 영화인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지만, 문제는 당시 내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 영화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볼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고, 그저 그럴듯한 영화들만 찾아봤던 시기지 않는가. 내가 <마스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영화 <마스터>

 영화를 본 뒤, 그 형은 나에게 연출이나 연기나 뭐 그런 것들을 물어봤지만 난 그냥 어물쩍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했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적잖이 민망했고, 솔직히 말해 수치심도 조금 느꼈다. ‘영화를 본 척’했던 내 민낯이 드러난 것이니 그럴 수밖에.


6.

 영화를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허세도 어느 정도 있는 놈이 부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영화를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대부분은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으니 당연히 졸렸고, 대부분은 반도 가지 못해 잠들었다. 그 당시 나는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영화 한 편이 끝날 때까지 자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7.

영화 <마스터>

 그렇게 한 편, 두 편, 나름대로 노력하다 보니 정말 놀랍게도 그럴듯한 변화가 생겼다. 우선 영화를 끝까지 보는 법을 배웠다. 정확히 말해 '영화 감상'이 아니라 러닝 타임동안 정신을 잡고 있는 법을 배웠다. 영화라는 매체가 정말 신기한 게 어쨌든 끝까지 보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그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졸음을 참는 게 익숙해지니 장면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장면을 보는 게 익숙해지니 스토리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얼추 이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졸음을 참는 것 이후부터 다음 과정을 놓치는 영화들도 많지만 어쨌든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그 당시 형이 나에게 보여줬던 <마스터>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였는지 알게 된 것은 이렇게 훈련을 하고 나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8.

영화 <어벤저스>

 사실 누군가 나에게 ‘2012년으로 돌아가 단 한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면 어떤 영화를 보겠습니까’한다면 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어벤저스>를 고를 것이다, <토리노의 말>이 아니라. 2013년도 다르지 않다. 난 <아이언맨 3>를 볼 것이다, <마스터>가 아니라. 그렇다. 난 아직도 예술 영화보단 상업 영화가 좋다. 


 처음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마스터>는 아니지만 영화를 제대로 봐야겠다 생각하게 된 계기는 <마스터>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터>라는 영화에, 그리고 그 영화를 보여줬던 (지금은 연락도 안 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그 감독 형에게 늘 빚진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향한다.


 그렇게 오늘도 난 독립영화관에 간다. 하지만 이제 이유가 다르다. 이제는 영화를 끝까지 볼 줄도 알고 나름대로의 해석도 덧붙일 줄 안다. 테마파크만큼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래도 소위 '예술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안다.(물론 내가 예술 영화의 범주를 규정지을 능력은 없고 같은 이유로 <마스터>가 예술영화인지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상업성에 찌든 내 취향을 완벽하게 바꾸지 못했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는 내 눈을 넓혀 놓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은 내 허세 덕분이다. 허세만큼 꼴 보기 싫은 게 또 없다. 근데, 허세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4872

매거진의 이전글 확장이 끝나버린 DC 확장 유니버스의 마지막 플래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