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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Jun 15. 2023

확장이 끝나버린 DC 확장 유니버스의 마지막 플래시

2023_29. 영화 <플래시>

스포일러 주의


1.

영화 <맨 오브 스틸>

 2013년, 영화 <맨 오브 스틸>부터 시작된 DC 영화 세계관, 즉 DCEU(DC Extended Universe) 소속으로 나왔던 영화를 재밌게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해 만족도 높은 영화를 찾기 힘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결과 많은 관객들은 'DC에서 나온 영화들은 퀄리티가 낮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DC는 자신들의 세계관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저스티스 리그>,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영화를 연달아 제작하면서도 '이것이 자본의 힘인가' 싶을 정도로 꾸역꾸역 세계관을 밀고 갔지만 끝내 제작사 측은 DCEU를 DCU(DC Universe)로 리부트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결국 DCEU는 회생의 기회마저 사라진 비운의 세계관이 되었다.


2.

영화 <저스티스 리그>

 세계관에 소속된 시리즈는 '이 영화가 세계관 안에 어떻게 추가되는가', '다른 영화의 어떤 캐릭터가 깜짝 등장할 것인가', 그리고 '이 캐릭터가 앞으로 소속된 세계 속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를 주요 기대 포인트로 가진다. 세계관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은 이런 이점이 가져다 주는 기대가 반감한다는 말과 같고, 결국 DCEU 소속 영화가 가지고 있는 큰 이점을 버리고 간다는 의미다. (사실 DCEU에게 더이상 기대 하지 않는 관객들이 많고, 때문에 세계관이 가진 기대 포인트가 더이상 기대 포인트로 작용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제작사는 이를 기대하고 진행한 것일테니)


 그렇다면 더 이상 확장의 여지가 없어진, 즉 매력 포인트가 줄어든 'DC 확장 유니버스'의 마지막 영화, <플래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경험'과 '추억', 두 가지 키워드를 찾을 수 있었다.


3.

영화 <플래시>

 극 중 배리 앨런은 어릴 적 죽은 엄마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그로 인해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배리가 바꾼 과거로 인해 미래는 물론이고 더 먼 과거까지 영향받는다. 즉, 새로운 멀티버스가 생겨난다. 그가 만든 과거는 원래 살고 있던 현재와 다르다. 과거 배리 앨런과 현재 배리 앨런, 벤 애플랙 배트맨과 마이클 키튼 배트맨, 슈퍼맨과 슈퍼걸 등, 배리가 만난 멀티버스 속 인물은 본질적인 요소는 같지만 묘한 이질감을 가지고 있다.


 재밌는 점은 배리가 느꼈을 이질감이 일반 관객들이 리부트 된 DC 세계관에서 느끼게 될 이질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잘 알지만 또 아예 모르는 인물들을 만나는 배리 앨런은 실패한 시리즈를 바로 잡기 위해 리부트 하고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같은 캐릭터를 만나는 관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플래시>

 이런 면에서 볼 때, 극 중 배리가 겪은 모험은 관객들이 겪은, 그리고 겪을 새 DCU 여행과 궤를 같이한다. 우리는 어쩌면 DCEU에서 DCU로 넘어가는 과정을 영화 <플래시>와 배리 앨런을 통해 미리 한번 경험한 것이다. 물론 워낙 얼렁뚱땅 진행되던 시리즈라 이를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꽤 맞아 떨어지는 설정이 되었다.


4.

 잭 스나이더 감독판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드라마 <플래시>에서도, 플래시 시간 여행 설정은 계속해서 등장했다. 또한 이번 영화의 기반 설정을 플래시의 시간 여행을 기반으로 한 만화 『플래시 포인트』에서 가져올 것이라고 했으니 DCEU 이전 제작된 영화 등장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 <플래시>

 개봉 전 공개된 정보들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플래시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 복귀 소식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실제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셀링 포인트이기도 하다.


5.

 개봉한지 30년이나 훌쩍 지난 영화를 다시 끌어왔다는 것은 이를 통해 과거 팬들의 향수를 끄집어내겠다는 의미다. 배트 케이브에 주차되어 있는 배트카와 조커의 웃음주머니, "let's get nuts?" 대사 등, 팀 버튼 감독 <배트맨>을 봤던 팬들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는 팬서비스들이 넘친다.


영화 <플래시>

 단순히 추억 소환 정도였다면 오히려 실망하고 갔을 것이지만, 키튼 배트맨은 이를 넘어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배트윙은 등장과 동시에 추억을 소환하고 이후 수행하는 비행 액션 또한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배트맨이 보여준 액션 또한 우수한데, 특히 크립톤인 남-엑과의 전투는 영화 <저스티스 리그>에서 배트맨에게 바랐지만 아쉽게도 보이지 못한 지능적이고 유려한 전투였다.


6.

 키튼 배트맨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DC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최종 전투 장면이다. 크로노볼에서 벌어지는 세 플래시의 전투 속 여러 세계들이 총돌하는데, 아마 DC 영화 팬이라면 각 세계에 있는 여러 영웅들을 보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제작까지 가지 못하고 카메라 테스트 정도에서 마무리 지었던 니콜라스 케이지 슈퍼맨이 등장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포인트였다.


7.

 사실 니콜라스 케이지 슈퍼맨처럼 제작조차 되지 않은 영화 뒷 이야기까지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설정은 오히려 매력이 반감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마 나이 조금 어린 관객들은 이런 뒷이야기는 둘째치고 팀 버튼 감독 <배트맨>조차 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이처럼 연관된 영화가 많을 때에는 당연하게도 관객들의 부담 혹은 피로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배트맨과 다른 배트맨'을 만났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존 <배트맨>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알았을 때 재미가 커질 뿐이지, 모른다고 해서 아예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극장 영화도 아니고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봐야만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사례를 생각했을 때, 이는 충분히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8.

 영화 <플래시>는 '경험'과 '추억'을 빼고 평가해도 꽤 만듦새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다. 아쉬운 CG, 빤히 보이는 반전 등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연기, 액션, 설정 등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 <플래시>

 에즈라 밀러는 과거 배리 앨런과 현재 배리 앨런, 즉 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두 사람인 인물을 연기했다. 같지만 다른 인물을 표현한다는 게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임에도 충분히 잘 수행해 냈다. 헤어스타일, 서로 다른 플래시 복장과 번개 색상 등을 통해 차이점을 뒀지만 그런 아이템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이클 키튼 연기 또한 두말할 것 없이 좋았다. 특히, 극 중 찢어진 상처를 꿰매며 거울을 바라보다 흐릿한 미소를 짓는 장면을 보면 표정 하나만으로도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 <플래시>

 액션 또한 꽤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마이클 키튼 배트맨의 액션은 기대 이상이었고, 극 초반에 있었던 벤 애플랙 배트맨의 카 체이싱 액션 또한 극 초반 관객을 끌어당길 요소로 충분했다. 두 플래시의 합동 공격과 스피드스터 능력을 적극 활용한 다양한 공격 방식도 꽤 재밌게 볼 수 있다.


 멀티버스 설정을 설명하는 것도 나름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해 냈다. 사실 멀티버스라는 것이 이미 관객들에게는 꽤 익숙한,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이다. 그래서일까, 플래시 능력, 영화 <백 투 더 퓨쳐>, 파스타 면발 등을 이용해 최대한 짧고 가볍게 풀어나가려고 한 노력이 눈에 보인다.


9.

 다만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지만, 플래시가 달리는 자세가 다소 엉거주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변 인물이 느려지도록 연출한 의도는 이해가 되나 플래시 자체에 속도감을 조금 더 붙여줘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이는 플래시가 처음 등장한 영화 <저스티스 리그> 때에도 똑같이 느낀 감상이다)


영화 <저스티스 리그> 감독판

 덧붙여, '이미 끝난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저스티스 리그> 확장판 설정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극장에서 개봉한 <저스티스 리그> 설정과 잭 스나이더가 본래 본인 의도대로 재편집한 <저스티스 리그> 감독판 설정은 꽤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중 플래시 캐릭터와 연관 있는 것은 시간 여행 설정이다.


 이미 극장판 <저스티스 리그>가 정식 설정이라고 밝혔기에 플래시는 시간 여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야 하지만 이번 <플래시>에서 브루스 웨인은 감독판에서만 나온 시간 여행을 언급한다. 물론 여러 시리즈가 나오면서 소소한 설정들이 틀어지는 경우야 드문 일이 아니고, 이번 시간여행 설정은 일부러 차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얼렁뚱땅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0.

영화 <플래시>

 이번 <플래시>는 'DCEU 시리즈치고는'이 아니라 그냥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전반적으로 잘 만들고 재치 있는 장면들도 꽤 찾아볼 수 있었다. 개봉 전 '마블 게 섰거라'하던 마케팅 섞인 후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수작으로 보인다. 썩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0년이란 시간 동안 이어온 세계관을 이처럼 준수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DCEU에서 E 하나 빠진 DCU, 점 하나 찍고 다시 돌아온 동일인물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음 세계관은 엉클어진 시리즈를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니면, 뜬금없는 조지 클루니처럼 어긋난 버린 세계관이 되거나. 그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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