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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Jul 20. 2023

마이너 한 취미생활을 충족하기란 쉽지 않아요

2023_34. 영화 <어벤져스>

1.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영화 <어벤져스>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만화를 처음 접한 것은 아주 어릴 때긴 했지만 내 취향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난 이후, 직접 만화를 찾아본 것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쯤부터였다. 시작은 웹툰이었다. 무엇보다 접근성이 좋았으니까. 덕분에 나는 강풀 <아파트>를 조금 늦긴 했지만 나름 연재 시기 즈음에 바로 볼 수 있었다.(당시 '미스테리심리썰렁물'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됐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아파트'라는 제목으로 불렸다)


만화 『아파트』

 비슷한 시기에 일본 만화 또한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TV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 상당수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지만, 그 애니메이션을 볼 당시에는 그 만화의 국적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당시 집 앞에 규모가 꽤 큰 대여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이런저런 만화책을 빌려보곤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 잠시. 오래가진 않았다. 어느 나라 콘텐츠든지 당연하게도 그 나라 문화가 담겨있기 마련인데, 일본 만화에 담겨있는 그 문화와 감성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화 자체에 대한 관심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원래 삶에 공백이 생기면 반드시 그 공백을 채울 무언가가 나타난다. 나에게 그것은 미국 만화였다. 그것이 떨어진 일본 만화에 대한 흥미를 채웠다.


2.

 요즘에야 접근성이 좋아진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극히 제한적인 작품들만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 미국 만화인데 그 당시에는 오죽했으랴. '코믹솔로지'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 당시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었고, 정식 발매 되었던 책조차 몇 권 없었다. 무엇보다 어렸던 내가 그 책들을 사서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현실적인 여건만 따지면 '그냥 관심을 끊어'라고 누군가 종용하고 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좋지 않았지만 멋모를 변태 기질이 있었는지 제한된 접근성은 미국만화에 대한 욕구를 더더욱 높여놨다. 나는 그나마 접할 수 있었던 몇몇 '선구자'들이 올려놓은 스토리 정리본과 욕구에 비해 크게 빈약한 권 수의 코믹스를 통해 그 욕구를 아주 얄팍하게나마 충족해 갔다.


3.

영화 <어벤져스>

 2012년은 히어로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해지 않았나 싶다. 히어로 장르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놓았다는 평을 받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가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통해 마무리되었고, 히어로 영화계의 불후의 명작 스파이더맨이 리부트 되어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개봉했으며, 무엇보다 히어로 장르는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시장 자체를 뒤흔들어 놓은 영화 <어벤져스>가 개봉했다. 이 세 개의 큰 사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이냐 물어본다면 아마 십중팔구 영화 <어벤져스> 개봉을 말할 것이다.


 아마 나에게도 그렇고, 당시 미국만화에 관심을 가졌던 몇몇 팬들에게 MCU 시리즈는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영화 <어벤져스>가 흥행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영화 시장뿐만 아니라 국내 미국 만화 시장에 있어서도 일생일대의 사건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비단 나 하나만 할 수 있던 생각이 아니라 다소 김새긴 하지만 어쨌든 꽤 그럴듯한 추론이었고, 모두 알고 있다시피 그 믿기 힘든 가정은 머지않아 실현되고 말았다.


영화 <어벤져스>

 영화 <어벤져스>는 '만화니까 가능한 것'의 범위를 넓혀놓은 영화였다. 여러 타이틀에서 떼 지어 나오는 캐릭터들의 향연을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니. 정말 꿈의 기획이라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영화 <어벤져스>의 폭발적인 흥행 덕분에 국내에서 미국만화가 가지는 위상이 전과 다르게 높아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어벤져스>와 국내 미국 만화 입지의 상관관계를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히어로 장르의 흥행과 더불어 미국 만화에 대한 국내 관심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사막에서 이슬방울을 핥듯 불쌍하게 미국 만화를 접하던 국내 미국 만화 팬들에게는 영화 자체도 환상적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만화 『블랙키스트 나이트』

 사실 마블 코믹스 만화는 크게 관심이 없고 대부분 슈퍼맨과 그린랜턴 관련 타이틀을 구매하긴 했으나, 어쨌든 그 조금이나마 넓어진 파이를 잠깐동안 열심히 즐겼다.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만화들을 즐기고 있을까. 새롭게 미국 만화에 입문한 팬들은 그때 그 불모지 시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4.

 야속하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성공의 단물은 빠져버렸으며, 그 사이 내가 가지고 있던 팬심은 식어 들어갔다. 그 긴 기간만큼 나는 사회에 녹아들어 갔고 개인적인 취미생활, 특히 이렇게 마이너 한 취향을 충족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 파는 것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다. 이제는 가끔 오는 알림을 통해 이번 달에 정발 되는 타이틀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가끔 텀블벅 후원이 열리면 웬만해선 후원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배송 온 만화책들의 비닐조차 뜯지 않고 있다. 이젠 사봤자 펼쳐보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아직도 우악스럽게 그 만화책들을 주문하는 이유는 어릴 적 관심사에 대한 미련 내지는 그때 충족시키지 못했던 욕구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이나마 그 욕구를 풀어줄 수 있게 만들어준 영화 <어벤져스>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 <어벤져스>

 어쨌든 영화 <어벤져스>는 어린 시절 내가 가진 어떤 갈망을 채워준 '낭만'이었다. 때문에 이 영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속 부족한 부분이 개인적인 사연으로 채워지는 영화가 가끔 있기 마련이니까. 아, 캡틴 아메리카의 그 촌스러운 코스튬만큼은 최악이었지만.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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