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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Jul 30. 2023

인형을 비추는 화려한 틀, 인형이 말하는 장황한 메시지

2023_35. 영화 <바비>

1.

 그레타 거윅 연출, 노아 바움백 각본,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이들이 한 영화에 들어와 있으니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있을까. 개인 일정으로 인해 다소 늦긴 했지만 영화 <바비>를 위해 극장을 향하는 발걸음에는 설렘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관람한 많은 관객들의 평을 보면 호불호가 꽤 갈리는 것으로 보였는데, 직접 감상해 보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그리고 재미없게 느꼈던 사람들은 왜 재미없게 느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나는 '호'에 가깝다. 


2.

 시작부터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패러디로 문을 열더니, <오즈의 마법사>, <대부>, <매트릭스> 등 다양한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 몇몇은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들이고,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영화도 꽤 된다. 추측건대 영화 팬이라면 '호'에 가까운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영화 <바비>

 세트 구성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비 세트 제작으로 인해 한 회사의 핑크색 페인트가 모두 동났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바비'가 인형을 원작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 배우가 아니라 세트다. 애초에 리얼월드와 바비랜드 사이를 이질감 없이 오갈 캐릭터 설정이 필요했기에 바비를 구태여 인형처럼 보이도록 설정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세트에 큰 힘을 실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 속 설명처럼 파스텔톤 플라스틱 건물처럼 보이도록 노력한 것이 크게 눈에 띄며 여러 세트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앞으로 영화가 이끌고 나갈 톤 앤 매너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바비>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올 초 영화 <바빌론>을 통해 봤던 마고 로비의 연기에 또 한 번 놀라며 얼른 다음 작품을 보고 싶다 생각했었다. 이번 <바비>에서 또한 코미디에서부터 섬세한 감정까지 다양한 역량을 두루두루 보여주며 본인 능력을 증명한다. 블랙코미디, 그것도 다소 뻔뻔하게 B급 감성을 자극하는 웃음 코드를 그럴듯하게 용인하게 해주는 것은 라이언 고슬링의 능수능란한 연기가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3.

 영화 속 등장하는 두 세계, 리얼월드와 바비랜드는 각각 극단으로 치우친 세계다. 하지만 단순히 '극단으로 치우쳤다'라는 말은 바비랜드 측에겐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현실 세계(리얼 월드)의 가부장제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능숙하게 숨겨 교묘하고 체계적으로 사회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 바비랜드의 여성중심 사회는 마텔 사가 상업적으로 만들어낸 캐치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병처럼 퍼진 가부장제를 여러 바비들이 모여 직접 깨부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그들의 가치와 지위는 오랜 기간 응축된 가부장제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숨통을 틔어주듯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바비들(여성들)이 직접 쟁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바비>

 바비 인형은 정형화된 여성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이 있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모든 여성을 아우르는 일종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 <바비> 속 '바비'라는 이름은 단순히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인 바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작가, 의사 바비 등 다양한 바비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대명사라 볼 수 있다. (이는 켄 또한 마찬가지다) 기존 사회 인식을 아예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와 웃음 코드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물론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껄끄러울 수 있었음에도 이를 용인한 마텔 사의 과감함도 돋보인다.


영화 <바비>

 다만, 이 과정을 묘사하는 방식은 유난히 직접적이고 장황하다. 그 메시지가 어떤 것이 되었든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일장연설 장황하게 의도한 바를 늘어놓는 것 또한 딱히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영화 <바비>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휴머니즘과 같은 메시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제시하다 보니 영화가 다소 단순하게 느껴지며 이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과는 별개로 영화 특유의 가벼운 톤과 화려한 세트로 인하여 영화 후반부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메시지들을 소화하며 느낄 부담은 확실히 줄어든다.


4.

 사실 바비 인형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게 어떤 방식으로 나오게 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바비 인형에 내가 모르는 스토리나 어떤 설정이 있었던가?', '그것도 2시간 가까이 풀어낼 분량이?'라며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소재가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역으로 풀어내 전혀 반대의 아이콘을 만들어내는 영화 진행 방식은 꽤나 현명했다.


영화 <바비>

 별개 이야기지만 흥행 양상이 꽤 흥미롭다. 전 세계적인 흥행과는 별개로 한국에서는 흥행이 조금 뜨뜻미지근한 것 것으로 보인다. 유난히 한국에서 더욱 크게 흥행하는 영화가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안 되는 영화가 있는 것도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런 큰 격차는 다소 신기한 감이 없잖아 있다.


5.

 바비랜드를 떠나 리얼월드로 넘어온 바비가 앞으로 어떤 역경을 겪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바비'들'이 바비랜드를 지켜낸 것처럼 우리네 현실 속 교묘하게 숨겨진 여러 차별과 사회 구조적 모순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누군가가 되지 않을까.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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