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_36. 영화 <더 문>
1.
과하다, 그리고 고루하다. 영화 <더 문>을 보고 난 후 바로 들었던 짧은 한 문장 감상이다. 감정과 연기는 과하고 설정과 연출은 고루하다. 감독 전작인 <신과 함께> 시리즈 또한 비슷한 단점을 안고 있었고 같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영화니 '그랬었지'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차기작은 다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이 있었을 것이다. 개선하고자 의지가 필요했고, 전과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그 의지가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것이다. 본인 입으로 '문과 출신'이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앞세워 '어떻게 된 일인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데'라며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권력을 가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극 중 그가 하는 일은 결국 옆에서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지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상황 설명 외 인물의 정확한 쓰임을 찾기 힘들다. 이는 장관뿐만이 아니라 극 중 많은 등장인물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지구와 우주 사이를 오가는 영화 설정 상, 배경이 둘로 나눠지고 그 둘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무전이기 때문에 사건 전개는 모두 대화로 이루어지며, 인물들의 행동은 그 대화에 대한 보조적 수단으로 밖에 쓰이지 않는다. 비단 통신상황뿐만이 아니다. 영화 진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설정은 다른 장치나 시각적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중 누군가의 입을 통해 하나하나 설명한다. 그렇게 떠먹여 주며 관객을 이해시키는 것이 과연 좋은 연출 혹은 각본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CG 기술을 앞세워 '볼거리'에 집중한 블록버스터 영화임에도 그 '볼거리'가 보조적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꽤나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사실 감독 전작 <신과 함께> 시리즈를 본다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전개 방식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 여러 시왕들과 판관들이 맡은 주된 임무는 인물의 행동과 그 당위성을 최대한 길게 풀어내 관객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조금 안일한 전개방식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당시에도 꽤 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지점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3.
두 주인공 설경구, 도경수뿐만 아니라 그 외 등장인물들도 안정된 연기력으로 익숙한 배우들이 연기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연기력이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과잉된 연기처럼 느껴져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영화가 추구하는 감정적 과잉에 도달하기 위해 배우 연기 또한 필요 이상의 표정과 과한 액션, 격양된 목소리 톤이 일관된다.
4.
감동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꽤나 예스럽다. 발걸음을 멈춰 뉴스에 눈을 뺏긴 시민이나 주요 인물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센터 직원들을 비추어 줄 때마다 지난 시절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장면이 나오는 모든 영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그 빈도가 잦고 방식이 다소 안일하다. 이는 비단 리액션 장면뿐만이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느껴지는 감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다 못해 일종의 밈으로 변한 클리셰들이 이곳저곳 혼재되어 있다. 임신한 아내를 지구에 두고 온 상원이 '우주에서 아이 이름을 지어주겠다'며 얘기할 때에도, 윤종이 아이가 준 인형을 부적처럼 지니고 있는 것을 보여줄 때에도 '이 두 사람은 조만간 죽겠구나'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감정을 건드리고자 만든 설정이 단순한 면이 있다.
황선우, 이상원, 조윤종은 모두 가족 관련 에피소드들을 들고 있고, 재국은 선우의 아버지와 연관이 있으며 문영은 비록 이혼한 상황이긴 하지만 재국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감정을 건드릴 설정을 끼워 넣고 이를 관객들에게 밀어 넣는다. 영화 말미에 다다라서는 가족애를 넘어 인류애를 빌려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벌여놓은 사건을 (다소 맥 빠지게) 봉합한다. 어떻게든 심적 동요를 일으켜보겠다는 욕심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김용화 감독 연출작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가족애를 직접적인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번 <더 문>은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가족애를 가장 비대하게 넣어뒀다. 표현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감독 본인만이 알겠지만, 그게 뭐가 되었든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5.
영화가 내건 가장 큰 셀링 포인트는 CG다. 본격적으로 달을 배경삼은 최초의 한국 영화니 당연히 볼거리를 기대하고 가는 관객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사실상 대한민국 최고의 VFX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덱스터 스튜디오가 그래픽을 맡았으니 이런 기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영화 자체도 이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CG를 과시하듯 보여주는 장면들이 꽤 많다. 심지어 극 중 황선우가 흘리는 눈물조차 물방울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며 느꼈던 여러 단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시각적 체험이 뛰어났는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승부수를 던졌지만 판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하거나 날카롭지 않다. 몇몇 거슬리는 부분들도 물론 있지만 대체적으로 준수한 CG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것이 앞선 단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압도적이진 않다. CG 기술을 중점으로 제작된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 정도 CG가!'라는 반응도 함께 따라오곤 한다. 물론 국내 기술력이 높아진 사실 자체는 축하할 일이지만, 영화를 평가할 때 '이제 한국에서도 이 정도 CG가!'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6.
나도 취향이 있는 사람이고, 뚜렷하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평가기준이 있는 관객으로서 모든 영화를 다 포용하진 못한다. 그래도 웬만한 영화들을 착한 눈으로, 그럼에도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찾아보고자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 <더 문>이 가진 가치도 물론 크게 있지만 앞으로 그 가치를 조금 더 찾기 쉽게 드러내는 영화가 나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