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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Sep 23. 2023

운전도 못하고, 차도 관심 없고, 근데 영화는 또 봐요

2023_43. 영화 <그란 투리스모>

1.

 아무리 관심 없는 분야라 해도 일반적인 선에 있는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자동차에 관련해서는 바보에 가까울 정도로 유난히 아는 것이 없다. 스포츠에 관심 없어도 손흥민이 누군지, 지난 월드컵 우승 팀이 어느 팀이었는지 정도는 알지 않는가. 그런데 자동차에 관련해서라면 그 정도 최소한의 지식도 가지도 있지 않다. 나를 태우러 오는 친구들만 불쌍할 뿐이다. '길 건너 티볼리', '흰색 스포티지'라고 말해봤자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한참을 찾아보고 있으니.


2.

영화 <그란 투리스모>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다만, 그 면허를 활용한 경험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법적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문서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정도의 의미뿐이었다. 운전의 필요성이야 당연하게도 날이 갈수록 더욱 크게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난 뚜벅이로 살고 있다. 사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운전이 무섭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운전대를 잡았을 때, 아는 형의 차를 타고 커다란 주차장을 돌았었다. 두세 바퀴 정도 차를 몰던 나는, 핸들을 꽉 붙잡고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으며 형에게 이야기했다. '형, 저 오줌 쌀 것 같아요', 운전이란 것이 뭐고 자동차란 것은 또 뭐길래 사람에게 이렇게 겁을 주는 것일까.


3.

영화 <포드 V 페라리>

 그렇게 관심 없는 자동차건만, 이상하게 레이싱 영화는 또 잘 봐진다. 자동차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걸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십 년 전 이맘때쯤, 영화 <러시: 더 라이벌>을 꽤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 <포드 v 페라리>는 2019년 최고 영화 중 하나이자, 제임스 맨골드 감독 영화 중에서도 꼽히는 작품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선택지가 크게 없는 지역 멀티플렉스의 한계 상 따로 볼 영화가 없다는 이유가 크진 했지만, 어쨌든 닐 블롬캠프의 신작 <그란 투리스모>를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 또한 우연찮게도 자동차 레이스를 다룬 영화다.


영화 <독수리 에디>

 위 영화들을 하나하나 잘 생각해 보면, 사실 레이싱 영화를 이해하는 것은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이는 어떤 스포츠 영화든 마찬가지인데, 사실 우리가 봅슬레이를 잘 알아서 영화 <쿨러닝>을 재밌게 본 것이 아니고, 스키점프를 잘 알아서 영화 <국가대표>와 <독수리 에디>를 본 것이 아니지 않은가. 왜 이상하게 레이싱 영화만 '이상하게 잘 보게 되었네'라고 느끼는지 이유를 찾아봤을 때, 아마 운전에 대한 공포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생각 든다.


4.

 운전 좀 한다 말하는 친구들을 볼 때, 항상 '그럼 너 드리프트 잘해?'라며 물어본다. 대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라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사실 농담 삼아 물어본 것도 맞긴 하지만, 어느 정도 기대하는 마음도 들어있는 질문이라는 것을 그 친구들은 알까. 솔직히 드리프트 하며 내 앞에 멈춰 선 차에서 사람들이 나와 '시간 없으니까 얼른 타!'라며 내 팔을 강하게 잡아챈다면 그냥 지나칠 자신이 없다.

 

영화 <그란 투리스모>

 주워들은 말이지만, 요즘 레이싱 경기에서는 드리프트 나올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드리프트 하며 코너링하는 것이 속도 면에서 더 손해라나 뭐라나. 생각해 보니 여기저기 TV 채널을 돌려보다 간혹 나오는 레이싱 경기 자료화면에서 진짜로 드리프트 장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 <그란 투리스모>에서도 드리프트는 단 한 장면도 안 나온다. 이겨야 하는 스포츠 세계에서 구태여 시도할 필요는 없겠다만, 사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그것만큼 멋있는 게 없는데. 순수한 마음이 조금 상처받긴 했지만, 그래도 승부는 승부니까.


5.

 나이가 들어가며 개인적으로나, 업무상으로나 이제는 진짜 운전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것을 느낀다. '어려서 그럴 수 있지'라는 나이도 이제 한참 지났고, '못하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넘길 수 없는 일들도 숱하게 발생하니까. 그때가 되면 친구들 차도 잘 찾고, 레이싱 영화를 볼 때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을까. 물론 새로 산 차로 드리프트를 시도해 보는 바보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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