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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Dec 14. 2023

다른 시선과 같은 사랑 속 역으로 설계된 <라쇼몽>

2023_55. 영화 <괴물>

1.
 사오리는 어느 날부터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아들 미나토가 걱정이다. 자신의 머리에 돼지의 뇌가 있다 그러지 않나, 혼자서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리고, 몸에 상처가 늘어가기 시작하더니, 신발 한 짝도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불쑥 사라져 버린 미나토를 찾아 데려오는 길에선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려 버렸다. 걱정 어린 추궁 끝에 미나토의 담임 선생님 호리가 미나토를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오리는 학교에 찾아간다.


영화 <괴물>

 호리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선생님이자, 장난스럽게나마 여자친구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저 멀리서 화재가 발생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걸스바에 다닌다는 소문이 학교에 돈다. 물건을 집어던지는 학생을 말렸을 뿐인데 어느 날 폭력의 가해자로 몰려있고, 하지도 않은 짓에 사과를 하게 되었으며 결국 폭력교사라는 기사까지 나온다.


 미나토는 우연찮게 같은 반 왕따 요리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요리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알려질까 두려웠던 미나토는 다른 아이들 앞에선 괴롭힘을 방관하지만 뒤에서 몰래 요리와 감정을 쌓는다. 폐철도에 버려진 기차 한 칸에 둘만의 아지트를 만든다. 둘 사이의 감정이 깊어질수록 미나토에게는 숨겨야 할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 모든 이야기의 단초가 된다.


2.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세 가지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나의 사건이 사오리에게는 '아들이 겪는 학교폭력' 이야기로 비추어지고, 호리에게는 흡사 영화 <더 헌트> 혹은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같은 억울한 누명에 관한 이야기로 비추어진다. 마지막으로 미나토에게 이 사건은 숨겨야 하는 요리를 향한 감정과 그로 인한 혼란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 <라쇼몽>

 하나의 사건을 연거푸 되풀이하며 다른 정보들을 중첩시키는 영화 구조를 보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다르게 본 작품은 영화 <라쇼몽>과 꽤 거리를 두고 있다. <라쇼몽>은 하나의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산하는 영화인 반면 <괴물>은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시선으로 수렴하는 영화다. 다시 말해, '진실은 존재하는가'와 '진실은 이것이었다'의 차이다.


 <라쇼몽>에서 인물들의 거짓 증언을 보태며 진실이 모호해진 까닭은 그들의 명예욕과 이기심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두 영화 사이의 명확한 차이를 내놓는다. <괴물> 속 인물들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를 사랑하며 호리는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사랑하고, 미나토는 요리를 사랑한다. 그들이 그런 입장에 서있게 된 까닭은 각자가 가진 사랑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행동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은 하나로 합일된다. 이렇게 이 영화는 <라쇼몽>의 역으로 동작한다.


3.
 하나의 파트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제목이 지칭하는 '괴물'이 누구인지 찾고자 한다. 첫 번째 파트에서 괴물은 호리였다. 두 번째 파트가 끝났을 때, 사오리와 미나토는 반대로 괴물이 되며 호리는 연민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 미나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제 우리는 미나토를 마냥 괴물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호해진다. 중심인물 세명은 각자의 입장이 있었다. 모두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행동들은 어쩌면 서로 가지고 있던 정보의 차이와 그로 인한 시야의 넓이가 불러온 결과다.


영화 <괴물>

 그렇다면 괴물이란 무엇인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괴물이 물론 흉측한 겉모습을 가진 괴물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괴물이란 보통과 다른 것들, 제도적으론 제도권에서 벗어난 위치의 사람, 사회적으로는 남들과 다른 사람을 뜻할 것이다. 제도권 내의 사람이 정상이라면 바깥의 사람은 비정상이고, 남들과 같다면 일반적이고, 다르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 주변에도 만연하게 퍼져있다. 사오리와 호리는 미나토에게 '남자다움'와 '평범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고 그것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미나토를 압박한다.


영화 <괴물>

 그와 동시에 사오리와 호리 또한 미나토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 싱글맘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사오리를 자극한다. 일본 직장 문화와 학생 및 선생님들로 대변되는 옐로 저널리즘과 가십 문화는 호리를 압박한다. 어쩌면 이들을 괴물로 바라보도록 만든 것은 그들 자체라기보다는 외부의 것들에 가깝다. 다시 말해, 여기서 말하는 괴물은 요리를 학대하던 그의 아버지와 같은 특정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괴물을 찾기 위해 쌍심지 켜고 이들을 바라보던 우리들까지 포함하여, 우리들 사이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인식과 제도다.


4.

영화 <괴물>

 극 중 후시미 교장 선생님은 이야기한다. "몇몇 만이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행복이지". 미나토와 요리가 만든 폐철도의 아지트에는 세상의 기준과 동떨어진 곳이다. 두 아이는 기준이 없는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기준이 없는 곳에선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같다. 괴물은 없다. 상영관 불이 켜지면, 많은 관객들의 귀에 교장선생님의 대사가 한없이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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