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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Dec 23. 2023

그렇게 나는 또 나의 것 하나를 잃어버렸다

2023_56. 영화 <카모메 식당>

1.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원체 싫어하는 성격이다. 영화야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니 이 영화 저 영화 가리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지만 영화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선 그것이 뭐가 되었건 하던 것만 계속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새로운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기보다는 익숙한 사람들과 편하게 노는 것이 편하고, 새로운 곳에 여행 가는 것보다도 전에 가서 좋았던 곳에서 쉬다 오는 것이 좋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한번 가서 맛있었다 느낀 곳이면 몇 날며칠이 되도록 그 식당만 찾는다. 몇 날며칠이 문제가 아니라, 몇 년이 되도록 한 식당만 가는 경우도 드문 있다. 사실 맛이 뛰어나다거나, 시설이 훌륭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다시 말해, 그냥 평범한 식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식당이라 할지라도 몇 년 동안 방문하다 보면 그 식당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이 생긴다. 나는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2.

영화 <카모메 식당>

 영화 <카모메 식당>은 헬싱키의 어느 한 구석에 새로 생긴 식당, '카모메 식당'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모은 영화다. 한 달이 넘도록 손님 하나 없는 일식당. 그럼에도 꿋꿋하게 영업하는 사치에와 하나둘씩 찾아오는 손님들로 점점 활기를 찾아가는 카모메 식당을 보며 내 인생에도 있었던 여러 카모메 식당들이 겹쳐 보였다. 그 식당들 속에 존재했던 나만의 관계들은 앞서 말한 그 식당만의 특별함이 된다.


3.

 한 술집이 있었다. 못해도 2000년대 초반에 지어졌을 것 같은 오래된, 약간은 허름한 술집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뒤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를 세게 겪고 있던 당시, 한 선배는 나를 달래며 그 술집에 데려갔다. 난 아직도 그 술집에서 먹은 안주들이 눈에 선하다. 눈뿐만 아니라 입에도 선하다. 그 형과 약속을 잡을 때엔 '며칠 몇 시'는 정했지만 '어디'는 단 한 번도 정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오로지 그 술집만 갔으니까. 20살 대학 신입생 때도, 휴가 나온 군인이었을 때도, 눈치 없는 복학생이었을 때에도, 우리는 그 술집에 갔다. 비록 허름했지만 그곳은 그곳만의 정취가 있었다.


 나름의 정을 쌓을 때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없어질 때는 허망하도록 한순간이다. 그 술집은 정말 말 그대로 한순간에 없어졌다. 건물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내부는 마치 처음부터 다른 식당이었던 것인 양 바뀌었다. 딱 한번, 그 식당에서 형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고기는 빗소리를 내며 익어갔지만 우리의 시선은 고기보다는 벽 쪽을 향했다. 이곳은 냉장고가 있었고, 저곳은 우리가 자주 앉던 테이블이 있었는데, 따위의 이야기를 나눴다. 참으로 무상한 이야기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 술집이 없어진 지 이미 5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함께 그 술집에 방문하던 형을 만나면 아직도 '거기가 없어지니까 갈 곳이 없다'라며 함께 푸념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정착하지 못했다.


4.

영화 <카모메 식당>

 당시 나에게는 다소 생경했던 닭불고기라는 메뉴를 팔던 식당이 있었다. 프랜차이즈라 맛집이라고 소개하기엔 다소 민망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맛집이 맛만 있으면 됐지, 프랜차이즈더라도 맛만 있으면 맛집 아니겠는가.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항상 답하던 그 닭불고기 집에 질려버린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내놓은 메뉴를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항상 진심이었다. 어쩌면 평생 한 메뉴만 먹고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졸업 후, 다니던 학교 근처의 그 식당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맛이 바뀌었다더라, 요즘 장사가 잘 안 된다더라 같은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 식당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었다. 다시 방문하기 전까지는. 오랜만에 찾아간 그 식당의 음식은 맛도 바뀌고 재료도 바뀌고 자잘한 추가요금이 붙었으며, 손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는 콜라와 같은 기성품들 뿐이었다. 그날 직감했다. 조만간 없어질 수도 있겠다고.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정말 문을 닫아버렸고, 이제 어떤 식당이 들어왔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5.

 마지막은 치킨집이다. 난다 긴다 하는 치킨집들이야 많지만, 내가 가던 치킨집은 딱 한 곳이었다. 처음 방문했던 기억이 2017년이니,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대부분 치킨집이 그러하듯 이곳 또한 프랜차이즈였는데, 내가 아는 선에선 내가 사는 지역의 유일한 지점이었다. 치킨 맛은 물론이고 친절하고 살가운 사장님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넘어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던 곳이었다.


 비보는 친구로부터 날아왔다. SNS에 폐업 소식을 전했다나 뭐라나. SNS를 하지 않으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SNS에 올릴 용도 치고는 다소 긴 분량의 글을 찬찬히 읽으며 사람 마음이 이렇게까지 싱숭생숭할 수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문 닫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갈 곳을 잃었다. 나는 또 나의 것 하나를 잃어버렸다.


6.

영화 <카모메 식당>

 극 중 카모메 식당은 많은 손님들이 북적북적거리는 소위 맛집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나만의 카모메 식당들은 (그게 어떤 이유든지) 사라졌다. 그 식당에 방문할 때, 그 식당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지금 나와 이어진 현재였다. 이제 다시 찾을 수 없게 된 식당과 그 식당에서 쌓았던 많은 일화들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다시는 닿을 수 없는 그 너머로 넘어가는 것은 참 아리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3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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