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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Dec 10. 2023

이런 것만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2023_54. 영화 <픽셀>

1.

 나는 항상 과거를 앓는다. 그러지 않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치기는커녕 나 스스로도 감동하지 못할 정도로 심해진 고질병이다. 그래서 추억을 맞닿게 해주는 매개체는 나에게 늘 소중하다. 어릴 적 봤던 만화라든가, 그 당시 만났던 사람, 그 시절 사용했던 물건과 같은 것들은 일종의 완화제로 작용하여 내 병을 진정시켜 준다.


2.

 감성에 젖었던 첫 문단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맥은 얼추 같은 이야기다. 나는 내가 어릴 적 봤던 콘텐츠들이 리메이크된다면 참을 수가 없다. 사실 난 영화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음에도 단순히 '파워레인져의 리메이크'라는 이유 만으로 빠르게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명탐정 피카츄>

 영화 <수퍼 소닉>이 개봉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소닉 더 헤지혹'이라는 게임을 플레이한 기억은 앞으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홀린 듯이 영화관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속편까지 꼬박 챙겨보았다. 영화 <명탐정 피카츄>가 개봉했을 때에는 그 영화에 단순히 '포켓몬'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한 것을 넘어 과분했다. 이런 영화들을 만나면 말 그대로 참을 수가 없다. 영화에 대한 평가야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낮은 점수를 매길 완성도였다 하더라도 잠 안 오는 어느 날 밤, 한 번쯤 다시 꺼내보게 된다.


3.

영화 <픽셀>

 이런 나에게 영화 <픽셀>은 종합 선물 같은 영화다. 아마 <픽셀>을 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이런 영화를 선물과 같다고 표현할 수 있지'라며 기겁을 할 것이다. 맞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다소 뒤떨어지는 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구에서 쏘아 올린 우주선 안에 들어있던 비디오 게임들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외계인들이 비디오 게임 캐릭터들로 모습을 바꿔 지구를 침공하고, 과거 비디오 게임 챔피언이었던 주인공이 게임을 통해 지구를 구해낸다는 내용은 꽤 그럴듯한 코미디 영화로 발전할 수 있는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재밌는 설정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몇 줄의 스토리 라인을 길게 늘어뜨려 수행하는 것에 급급한 영화로 마무리된 것은 퍽 안타깝게 생각한다.


영화 <픽셀>

 그렇지만 이 영화에는 팩맨이 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있고, 알카노이드가 있다. 갤러그가 있고 테트리스도 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동키콩이 있다. 요즘에야 더 화려하고 더 풍부한 게임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게임들은 너무 당연하게도 재밌는 게임들이지만, 어릴 적 내가 동키콩에서 느꼈던 그 즐거움과는 결이 다르다. 그때 내가 느꼈던 즐거움은 이젠 다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다. 1980년도에 나왔던 게임 캐릭터들을 화려한 그래픽으로 부활시켜 내 눈앞에 가져다 놓는데, 어릴 적 게임 몇 번 해본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아무리 실망스러운 만듦새의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4.

영화 <픽셀>

 사실, 내 나름의 애착이 있는 영화다 보니 다른 영화들보다 만듦새에 더 큰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있다. 그래도 영화 시장은 여전히 내 추억을 한 번씩 되살려 주곤 한다. 숱한 리부트와 리메이크로 창의력의 고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렇게 한 번씩 내 추억을 건드려줄 때면 한 번씩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콘텐츠들을 잊지 않고 끄집어내 주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영화들이 개봉할 때면, 차를 쫓는 강아지처럼 달려간다. 그것이 비록 상술이라 할지라도, 참을 수가 없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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