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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Dec 01. 2023

내 메일함에는 둘만의 이야기가 없다

2023_53. 영화 <유브 갓 메일>

1.

 매일 아침 빠짐없이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양치질과 세수를 한다. 아, 물론 면도 또한 빠뜨리면 안 된다.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 자명하지만, 어쨌든 나는 하루종일 하관을 신경 쓸 것이다. 머리 감는 것도 빠질 수 없다. 외출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냥 말리기보다는 웬만해선 머리를 세팅하는 편이다. 이는 비록 집 안에만 있을 하루라 하더라도 마냥 쳐져 있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과 같다. 옷까지 차려입으면 일단 가장 급한 것들은 끝났다.


영화 <유브 갓 메일>

 사실 여기까지는 '나만의 루틴'이라기보다는 응당 사람이라면 아침 눈 뜨면 해야 할 청결 유지 정도가 맞을 것이다. 그다음 행동부터는 나름 루틴이라고 할만한 행동들인데 시간이 지나며 몇 번 바뀌긴 했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그 루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가지는 바로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2.

 메일 확인 시 주안점은 여기저기 웹서핑 하다 괜찮다 싶어 구독한 뉴스레터들이다. 그러니까, 이 메일 뭉치들 속에는 둘 사이에서만 주고받는 밀어 같은 것들은 없다. 누군가 웬만한 사람들이 읽더라도 통용될 수 있도록 작성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송부하는 일종의 신문이나 잡지에 가깝다. 다시말해, 내가 매일 아침 메일함을 뒤져보는 것은 사실 누군가와의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라기보다는, 배달된 잡지를 보는 행위에 가깝다.


 메일이라는 것을 개인적인 연락 용도로 사용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사실 거의 없다 보는 것이 맞다. 디지털 네이티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어릴 적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을 끼고 살 수 있었던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으레 메일 계정을 생성하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그냥 계정일 뿐, 실질적으로 누군가와 연락할 때에는 메신저를 이용하거나 직접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로는 개인 휴대폰을 개통했고, 그 휴대폰은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며 이어져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메일을 통해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3.

영화 <유브 갓 메일>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두 주인공, 죠와 캐슬린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90년대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을 느끼기엔 충분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애매하게 오가는 그 시절의 감성이 못내 아련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매력은 어쩌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 두 사람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두 사람은 일상생활 속, 그것이 기쁜 일이든 힘든 일이든 공유할 일들이 생기면 가장 먼저 메일로 작성하여 서로에게 공유한다. 답장이 오기까지 그들의 시간은 마냥 기다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설렘이 함께한다. 메일 확인을 하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연락이 되어, 또 반대로 연락이 안 되어 마음을 애타게 한다. 어릴 적부터 소통의 동시성이 보장된 세상에서 살던 내가 이런 감정에 100% 공감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동에서 설렘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여기서 느끼는 설렘의 원천은 공감이 아니라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에 대한 질투 내지는 시기, 혹은 궁금증에 가까운 것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4.

영화 <유브 갓 메일>

 오늘 아침 확인한 메일함에도 역시나 누군가의 편지가 아니라 뉴스레터와 광고가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떤 영화제는 오늘 개막했다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오후에는 한국 기준금리가 결정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며 내 친구의 이야기도 없다. 메일로 사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다시 말해, 나는 소통의 비동시성에서 오는 설렘이 존재하는 삶을 평생 살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이 보여주는 사랑의 설렘은 단순히 시작하는 사랑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절대 겪어 볼 수 없는 시대의 설렘이다. 물론 지금의 내가 그 시대의 방식으로 연락을 취한다면 불편함을 느낄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내 환상 속의 'You've Got Mail'은, 나의 시기와 호기심은, 내가 가볼 수 없는 그 시대는, 기다림과 공백이 있는 소통은, 애틋하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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