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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Nov 26. 2023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만을 위해 노력하는 아쉬운 청춘영화

2023_52. 영화 <동감>

1.

 고백하자면 속편이나 리메이크 같은 것들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오랜 영화를 다시 해석해 본다는 행위에서 오는 즐거움을 포기하기란 썩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대로 좋은 영화를 있는 그대로 놔두는 미덕도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런 개인적인 바람으로 시장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영화 <동감>이 리메이크되었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굳이 마다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극장에 걸릴 로맨스 영화가 제작되는 일이 드물 때는 한편 한편이 더욱 소중하다. 하지만 원작이 있었기에 더 기대가 컸던 것일까, 개인적으로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기에 아무래도 덜 공격적이고, 더 너그럽게 보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에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2.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럼에도 사랑’인 것 같은데 쉬이 공감되지는 않는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무늬와 용, 두 인물이 겪는 사건과 깨달음이 딱히 와닿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인물이 느꼈을 감정선을 설득하기보다는 두 인물이 '비련의 영화 주인공'처럼 보이기 위해 다소 투박하게 영화를 전개한다. 


영화 <동감>

 이는 두 인물이 마주한 상황이나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크게 두드러진다. 무늬와 용이 처음 약속을 잡았던 날부터 시작된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용을 기다리며 책을 꼭 끌어안고 있는데,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의 당위를 보여주기보다는 '쫄딱 젖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더 많이 읽힌다.


 (이걸 무늬 탓으로 돌리는 게 맞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무늬는 용과 한솔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화가 난 용은 무늬와 연락을 끊는다. 이제 무늬는 아련한 눈빛으로 먼 산만 바라볼 뿐, 이를 풀어나갈 의지를 보이지도, 어떤 행동을 실천하지도 않는다. 실제 주인공인 것은 맞지만, 정말 '비련의 주인공'처럼 그저 감수성에 젖어 있을 뿐이다. 그러다 갑자기 용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에 대한 감정을 배웠다며 사랑 전도사 같은 발표를 씩씩하게 하니 공감하기 힘든 면이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발표했다간 얄짤없이 재수강이다.


영화 <동감>

 용이라는 캐릭터 또한 비슷하다. 20여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얼굴도 모르는 무늬와 소통하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무늬의 말만 믿은 채 어떤 대화도 배제하고 말 그대로 폭주하기 시작하는데, 영화 전반부의 용과 후반부의 용은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모든 일을 본인이 망치기 시작했음에도 '비련의 주인공'처럼 빗속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뒤돌아가는 용의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보다는 답답함에 가깝다.


 두 인물 모두 '비련의 주인공'이 합당한 과정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단순히 '그렇게 보이기 위해' 전개된 결과로 보이는 경향이 크다.


3.

영화 <동감>

 대사 또한 아쉬움이 크다. 무늬와 영지가 주고받는 대사가 붕 뜨게 들릴 때가 많다. 용과 한솔의 대사 또한 그 시대를 감안하고도 다소 유치하게 느껴진다. 아마 현수막과 공중전화 같은 몇몇 소품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체감되지 않는 1999년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표현해보고자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방가방가’와 같은 말 외에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안타까움이 든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편지'는 부담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다. 너무 좋은 음악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굳이 그 장면에 꽤 긴 시간을 할애하여 넣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90년대 명곡들을 리메이크하여 영화를 홍보했는데, 개인적으로 지금도 자주 꺼내 듣곤 한다. 어쩌면 이 음원들이 영화와 관련하여 90년대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4.

영화 <동감>

 여러 결점들이 있지만 좋은 점이 없는 것은 또 아니다. 개인적으로 <화이> 때부터 여진구 배우의 연기를 좋아했다. 물론 같은 결의 연기는 아니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꾸준히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좋아하는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를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없다. 드라마보단 영화를 선호하는 취향 탓에 조이현 배우가 나온 드라마를 따로 챙겨보진 않았지만 이런 장르와 그 나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풋풋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웠던 연기를 떠나 더 좋은 작품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5.

 물론 영화 <동감>이 보여준 단점도, 장점도 리메이크 작품이기 때문에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는 <동감>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이 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아쉬웠어, 추억이 담긴 영화의 리메이크였는데'라고, 괜히 듣지 않아도 될 비교와 볼멘소리를 듣게 되겠지. 모든 리메이크 작품이 가진 일종의 부담일 것이다. 언젠가 영화 <동감>이 다시 리메이크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멋진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는 리메이크 소식이 들리는 모든 영화에 통용되는 부탁이기도 하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59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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