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소가맥 Nov 17. 2023

해외 영화 제목, 그대로 읽기와 만들어 읽기

2023_51.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1.

 제목은 영화의 첫인상이다. 사람의 첫인상에 이름이 깊게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영화에 관한 한, 제목은 첫인상에 아주 깊숙하게 관여한다. 포스터, 마케팅, 연출 및 출연진 목록 등 영화를 보기 전부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대충 견적을 낼 수 있는 바로미터들이 꽤 있긴 한데, 의외로 제목은 이 중에서도 가장 직관적이고 큰 영향을 끼친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과거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영화를 접했을 때, 어렸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참 민망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런 제목은 누가 짓는거지'라며 열변을 토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힘없는 민망함의 메아리 뿐이었다. 근데,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제목이 별로라고 하더라도 원제 <mean girl>을 뭐라 번역할 것인가? 적어도 나에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없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봤을 때, 해외 영화를 국내에 소개하기란 참 까다로운 일이다. 물론 국적불문 원어 제목이 그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제목이겠지만, 그렇다고 읽지도 못할 글자를 그대로 박아 놓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 고충은 십분 이해한다만,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을 보면 '조금 심한데' 생각이 드는 제목들이 간간히 보이곤 한다. 바로 과도하게 사용된 영어 음차 제목이다.


2.

영화 <파더 앤 도터>

 영화 <Fathers and Daughters>의 국내 개봉명은 <파더 앤 도터>였다. 나 또한 원제를 그대로 번역한 '아빠와 딸'을 제목으로 붙였다면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너무 정직하게 <파더 앤 도터>라고 써놓으니 제목 자체의 호불호를 떠나 당혹감까지 느껴졌다. <파더 앤 도터> 뿐만 아니라 <위크엔드 인 파리>,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로스트 도터>, <에브리띵 윌 비 파인> 등 노력하여 찾아보지 않더라도 이런 음차 제목들은 숱하게 많다.


영화 <엔더스 게임>

 원래 소개되었던 제목이 있음에도 음차 제목을 쓰면 그 당혹감은 배가 된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Ender's Game>의 한국어 제목은 <엔더스 게임>이었다. <엔더스 게임>의 원작은 한국에서도 출간된 소설 '엔더의 게임'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엔더의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작품을 구태여 음차한 이유는 뭘까. '엔더의 게임'이 '엔더스 게임'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딱히 의미전달에 있어 좋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오히려 아포스트로피 없이 써진 '엔더스'는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어떤 의미인지 머리를 한번 더 굴려보게 된다.


3.

영화 <트루 시크릿>

 조금 더 황당한 경우로 넘어가보자. 지난 2019년 개봉한 <트루 시크릿>이라는 영화의 영제는 <Who You Think I Am>이다. 이 영화의 영제에는 '트루'도, '시크릿'도 없다. 심지어 이 영화는 사실 프랑스 영화다. 프랑스어 제목은 <Celle que vous croyez>으로 이 제목에도 역시 '트루'에 대응하는 단어도, '시크릿'에 대응하는 단어도 없다. 이 음차는 무엇을 위한 음차인가?


 언제부턴가 영어 음차 제목들이 우후죽순 나오기 시작했다. 일종의 영화 업계 트렌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원제도 아닌 영어를 가져다가 음차해서 쓰는 기형적인 제목까지 나오게 된 것 아닐까. 사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제목 붙이는 방식에 대한 유행은 음차 제목 전에도 있었다. 바로 문장형 제목이다.


4.

영화 <잘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

 영화 <Gray Matters>는 <잘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사실상 원제와 전혀 상관 없는 제목이다. 아마 이 제목을 생각해낸(혹은 이런 제목을 붙이도록 밀어붙인) 분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판단될 제목을 붙이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 했겠지만, 결국 제목 때문에 등을 돌린 사람도, 제목에 속아 영화를 본 사람도, 그 어느 쪽도 제대로 만족 시키지 못한 제목이 되어버렸다. 사실 만듦새가 썩 마음에 드는 영화는 아닌지라 그럴듯한 제목이 붙었다 하더라도 만족스럽게 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목 때문에 걸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비단 <잘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 뿐만 아니다. 특히 가벼운 사랑 얘기를 다룬 영화일수록 말도 안되는 제목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언급한 <mean girl>은 <퀸카로 살아남는 법>으로, 영화 <13 Going On 30>은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중 최악은 우디 앨런 감독의 <Vicky Cristina Barcelona>였는데, 이 영화의 국내 개봉명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였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이를 뛰어넘는 제목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5.

 사실 모든 제목을 다 해석할 수는 없고, 또 모든 제목을 있는 그대로 가져다 쓸수도 없다. 막말로 영화 <어벤져스>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극 중 고유명사로 쓰인 단어인데. <퀸카로 살아남는 법>도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꽤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퀸카'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사양된 유행어다보니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같은 맥락으로 한 영화를 국내에 소개할 때, 제목을 번역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음차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 이런 세부적인 판단 기준을 잡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간혹 '이건 좀 아니지 않나'하는 심한 제목들을 보게되면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더 직관적인 단어, 더 와닿는 문장으로 붙은 제목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관객들도 그 영화를 더 많이 선택하지 않겠는가, 사람도 첫인상이 좋아야 한번이나마 더 만나볼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9506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6797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9267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5344


매거진의 이전글 복잡다단한 인간관계 속, 동의어가 되는 괴인과 범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