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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Apr 06. 2024

의심만이 살 길인데 그 끝에 생존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2024_14. 영화 <댓글부대>

1.

 나는 인터넷을 얼마나 믿고 있을까? 인터넷의 대세적인 의견, 다시 말해 여론에 나는 얼마나 동조하고 있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들이 100%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에 나는 확신을 가지고 명확하게 답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 없다. 언론을 전공으로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언론과 여론을 향한 나의 비판적인 시각은 여전히 갓 걸음마 뗀 아이 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의 비루한 현실이다. 특히 요즘 같은 선거 시국에 들어서면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된다.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 생각이 온전히 나의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교묘한 정보의 세계 속에서 사는 우리는 이 의심과 비판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현대인이 가진 하나의 고충 정도로 볼 수 있을까.


 한편, 이 '현대인의 고충'은 대중문화에서 꽤 재밌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구태여 실존철학까지 파고들지 않더라도 '생각의 주체'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이며, '언론'과 '여론'이라는 구체적이고 익숙한 소재 하나 뚝딱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 그럴듯한 시나리오 한 편 꾸려나가기에 더할 나위 없다. 영화 <댓글부대>는 바로 이 방식을 가지고 꾸려나간 그럴듯한 이야기 한 편이다.


2.

영화 <댓글부대>

 영화는 사회부 기자 임상진이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작성하며 시작한다. 만전 측에서 중소기업 우성데이터의 하이패스 단말 입찰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기술을 훔쳐 입찰을 따냈다는 것.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라는 자신만만한 상진의 말과는 정반대로 해당 기사는 오보로 밝혀지고 상진은 '기레기'라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정직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진에게 온 SNS 메시지. '기자님의 기사는 오보가 아니었습니다'. 메시지의 주인공을 만나러 간 상진은 생각보다 더 큰 사회의 이면을 마주치게 된다.


 영화는 '어디까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현시대를 다루고 있다. 영준이 소속된 '팀 알랩'과 만전의 '여론전담팀', 그리고 만전에게 포섭된 '창경일보'까지, 완벽한 신뢰를 보낼 수 있는 개인 혹은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특정 목적을 가지고 댓글 공작과 같은 소위 공사를 치는 와중에도 일정 부분 진실을 섞어 놓아 이를 마냥 거짓으로 치부해 모든 것을 부정할 수도 없게 만든다. 끝없는 의심만이 살 길인데, 그렇다고 의심 끝에 생존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상진이 쫓고 있는 댓글 부대는 뚜렷한 형태가 없다. '신고할 생각은 안 해봤어?'라는 상진의 말에 '뭘로 신고해요?'라고 받아치는 영준의 대화처럼 신고할 행위도, 대상도 구체화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모호한 상태로 모니터 너머에 존재할 뿐이다.


영화 <댓글부대>

 완벽한 신뢰를 보낼 수 없는 것은 극 중 댓글 부대뿐만 아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상진에게 이입하고 신뢰한다. 하지만 왜 그럴까, 단순히 그가 극 중 화자로 묘사되어서? 그 신뢰는 무엇을 기반으로 보내는 것인가? 영화는 PC방에서 글을 작성하는 상진으로 시작해 다시 같은 장소에서 글을 업로드하는 상진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댓글부대를 취재하며 습득한 노하우를 토대로 본인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업로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댓글 부대의 일부가 아님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가 모든 이야기를 꾸며내고 댓글 부대처럼 글을 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또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가 정말 진실을 추구했던 기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썼던 댓글부대 기사는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후에 만난 영준의 동업자가 영준이 했던 대사를 그대로 읊을 때, 상진은 이 사람도 신뢰할 수 없겠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취재하며 만난 모든 사람이 거짓을 꾸며내고 있다면 그가 작성한 기사도 결국 거짓 아닌가. 더 나아가 상진은 애초에 허구를 쫓고 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상진을 믿어야 하는가? 이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큼직한 오보를 두 번이나 냈던, 신뢰 잃은 기자 한 명을.


영화 <댓글부대>

 이는 비단 극 중 인물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다. 사회면이나 경제면을 조금이라도 살펴봤다면 쉽게 알 수 있듯, 영화 속 '만전'은 노골적으로 '삼성'을 빗댄 기업이며 영화 속 사용되는 굵직한 에피소드 몇몇 또한 실제 삼성과 연관되어 뉴스에 오르내렸던 사건들을 가져다 쓰고 있다. 만전 사건 외에도 실제 뉴스에서 본 적 있는 기시감 드는 여러 사건들, 구체적인 모티브가 바로 떠오르진 않더라도 실제 있음 직한 꽤 그럴듯한 에피소드들을 섞어 놓는다. 고발성 짙은 픽션에 현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니 그 흡입력이 꽤 상당하며 마치 실제 사건을 극화한 것인가,라는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우리는 영화를 믿게 된다.


 영화는 인물 설정과 이야기 배치, 그리고 현실을 끌어들이는 방식까지 모든 곳에 모호함을 만든다. 극 중 '거짓 사이에 진실을 섞으면 더 진실 같다'는 대사는 어쩌면 이 영화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는 대사지 않을까.


3.

 <댓글부대>는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했던 안국진 감독의 영화답게 사회 속 모순과 부조리함, 불합리함을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때문에 영화 전반적으로 통쾌함 보다는 찝찝함이 주를 이루지만 속도감 있는 연출이 그 찝찝함을 상당히 중화시켜 준다. 그 덕분일까, 요 근래 유행하는 소위 '사이다 감성'은 없더라도 나쁘지 않은 오락성을 기반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강한 고발성을 필두에 세우면서도 이 정도 오락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꽤 호평할 수 있는 지점이다.


영화 <댓글부대>

 정보 전달 방식 또한 꽤 재밌다. 결국엔 기자가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하는 영화이기에 갈수록 언급해야 할 정보량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소설 원작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무엇 때문이든 어쨌든 영화는 지나치게 대사 의존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지나친 대사 정보에 지칠 새 없이 소위 '밈'으로 불리는 유행하는 이미지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마주쳤을 커뮤니티 사이트 및 SNS UI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며 필요한 정보들을 재치 있게 제공해 대사 위주 진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무엇보다 부조리적인 사회를 블랙코미디로 비트는 안국진 감독의 실력이 상당하다. 이 정도면 다음 연출작이 궁금해지도록 만드는 부분에서도 충분히 성공적인 영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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