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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름 판타지아 Jan 13. 2022

엇갈린 두 여자의 인생,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2021.07.14 관람 

군중들은 국가를 향해 정의를 울부짖는다.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잘 알려진 실존 인물, 18세기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걸고 있지만, 단순 역사적 사실들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동일한 이니셜의 이름을 가진 허구의 인물, 혁명을 주도하는 여성 ‘마그리드 아르노’를 또 다른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실화라고 해도 믿을 법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마리와 마그리드는 서로를 통해 조금씩 변화한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EMK뮤지컬컴퍼니


오스트리아의 공주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보내졌고, 대중으로부터 외국인, 국고를 낭비하는 방탕하고 저급한 왕비라며 손가락질을 당했던 인물이다. 뮤지컬에서도 실제 있었던 소문이나 일화들을 활용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어 당시 프랑스의 분위기와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마그리드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혁명을 일으켜야 했던 상황, 동시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든 행동이 납득이 되도록 두 사람의 입장을 병치시켜 서사의 흥미로움을 더한다.


한 번 들으면 계속 귓가를 맴도는 주옥같은 넘버들을 주목해볼 만하다. 1막에는 화려한 드레스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유행의 선두주자 (Le Dernier Cri)’, 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의 쾌활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선망의 대상 (Dazzling)’ 등 밝은 넘버들이 주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마리와 마그리드가 똑같은 드레스에 가면을 쓰고 부르는 넘버 ‘가면 무도회 (If)’에는 상반된 가사를 통해 비슷하게 타고난 듯하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욕망과 엇갈릴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들이 녹아 있다.


작곡가인 실베스터 르베이는 한국 공연을 위해 마그리드 아르노의 시그니처 넘버라고 불리는 혁명의 노래 ‘더는 참지 않아 (Enough Is Enough)’를 편곡하여 2막의 핵심 넘버인 ‘증오 가득한 눈 (Hate In Your Eyes)’를 새롭게 추가하기도 했다. 해당 넘버에서 마리와 마그리드의 팽팽한 신경전, 그 안에 녹아 있는 오묘한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EMK뮤지컬컴퍼니


공연의 막이 오르기도 전에 주연 배우 캐스팅에 관한 관심 역시 뜨거웠다. ‘마리 앙투아네트’ 역에는 초연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배우 김소현, 재연에 이어 돌아온 김소향이 이른바 ‘경력직’으로서 자리를 지켰다. 마그리드 아르노 역에는 단단한 목소리와 엄청난 성량으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던 김연지와, 삼연(2021)에 처음 합류하며 주목받고 있는 정유지가 활약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자 페르젠 백작 역에는 이전과 단 한 명도 겹치는 캐스트 없이 민우혁, 이석훈, 이창섭, 도영을 캐스팅하여 파격적인 도전을 선언했다. 훌륭한 주연들에 더해 탄탄한 앙상블 역시 공연의 퀄리티를 확실히 높여주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숨마저 동시에 들이쉬는 ‘갓상블’들의 존재는 공연장을 그야말로 꽉 채우며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서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존재,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정의라는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두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잘 알려진 대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운명은 단두대 위에 놓이지만, 이는 또 다른 주인공 마그리드 아르노의 새로운 시작과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두 캐릭터의 관계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확인하면서 우리의 눈앞에 놓인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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