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 (2018)
이스터 에그(Easter Egg)를 찾아라!
이스터 에그란 게임 개발자가 자신이 개발한 게임에 재미로 숨겨놓은 메시지나 기능을 말한다. 숨겨놓은 부활절 달걀을 찾는다는 뜻에서 시작된 말이다. 최근에는 게임과 관계없이 디즈니 영화에서 전작들의 캐릭터를 작게 숨겨놓는 등의 이스터 에그가 등장하면서 개념이 확장되었는데,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킹콩, 오버워치의 트레이서, 쳐키, 건담, 아키라의 오토바이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스터 에그들이 등장한다. 트레일러에서만 25명 이상의 캐릭터들을 찾을 수 있고,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원작도서의 저자인 어니스트 클라인 또한 영화에 등장한 모든 이스터 에그들을 다 알지 못하며, 여전히 찾는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술팀에서도 자신들만의 캐릭터들을 후반작업에서 계속 추가했기 때문)
아마 영화를 보고 나서 저작권료 걱정을 한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캐릭터들의 저작권료를 대체 어떻게 지불하고 데려왔을지, 필자 역시 트레일러를 보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상당수의 캐릭터들은 워너 브러더스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 사용하기에 수월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DC의 캐릭터들은 워너 브러더스 소속이기 때문에 마음껏 가져다 쓸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워너 브러더스 소속이 아닌 캐릭터들을 데려오는 데에는 모든 인력이 동원됐다고 한다. 물론 돈도 어마어마하게 들었고, 끝내 섭외하지 못한 캐릭터들은 다른 캐릭터로 대체하는 등 조치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H가 몰고 다니는 아이언 자이언트는 원작에서 울트라맨으로 나오는데, 저작권 문제로 워너 브러더스 캐릭터인 아이언 자이언트로 대체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이스터 에그들 중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전 필름들에 속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가 제작 단계에서 자신이 만든 작품들이 <레디 플레이어 원>에 오버섀도잉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는데, 원작 소설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스터 에그도 꽤 등장한다고 알려졌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스터 에그'는 우리가, 즉 관객이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찾는 것이다. 영화 안에도 이스터 에그가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웨이드, Parzival과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모든 아바타들은 제임스 할리데이가 남긴 이스터 에그를 찾으러 다닌다. 영화 안의 캐릭터들이 이스터 에그를 찾고, 그들을 보는 관객들도 이스터 에그를 찾아다니고. 그래서 관객들은 웨이드나 아바타들에게 자신을 동일시하기가 더 쉽고,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보통 이스터 에그란 스토리나 게임의 메인 진행과 관련이 없는 부수적인 오락거리로 여겨지는데,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이스터 에그가 바로 스토리의 중심이며, 열쇠라는 점이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골방에 숨어지내는 오타쿠, 너드(nerd)들처럼 음지에서 사는 사람들을 영화의 메인으로 끌어온 것과도 의미가 통한다.
성공은 덕후가 한다
주인공 웨이드 와츠는 그야말로 오타쿠라고 할 수 있다. 책에 묘사된 대로 ‘Wade Owen Watts’의 이니셜은 WOW인데, 이보다 오타쿠스러운 이름도 없다. 그는 오아시스 폐인이자, 오아시스 개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의 엄청난 덕후라고 할 수 있다. 설정에 따르면 전 세계가 오아시스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에 제임스 할리데이의 덕질을 한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할리데이는 심지어 할리데이 센터에 자신의 사생활과 경험들을 모두 공개해둔 것으로 나온다. 웨이드는 그 센터에 매일같이 드나들며 기껏해야 한 개인의, 어린 시절 기억이나 상황들, 겪었던 일들을 담은 영상을 몇 천 번이고 돌려본다. 결국 제임스 할리데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웨이드는, 첫 번째 미션을 가장 먼저 풀게 되고, 최종적으로 열쇠 세 개를 모두 찾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센터의 큐레이터가 준 엑스트라 라이프였는데, 오아시스의 모든 아바타들이 죽는 아이템이 터지면서 다른 캐릭터들이 죽을 때, 웨이드의 Parzival은 주머니에 넣어둔 동전, 여분의 목숨으로 살아나서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할 수 있었다. 동전을 준 큐레이터는 모로 씨로 밝혀졌다. 모로는 웨이드의 조력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가 매일같이 센터에 드나들며 노력하는, 덕후였기 때문에 그를 도와주었을 거라 생각된다. 원래 덕후는 계를 못 타는 법인데, 노력으로 쟁취할 수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아마 그동안 자신들의 세계가 외면당하고 무시당해서 음지에 있던 이 세상의 모든 오타쿠들에게, 스티븐 스필버그는 엑스트라 라이프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할리데이라는 이름의 스티븐 스필버그
"I am a dreamer."라고 제임스 할리데이는 말한다.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임스 할리데이와 동일한 존재임이 느껴졌다. 영화에서 제임스 할리데이가 오아시스를 창조했다면, 현실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리에게 <레디 플레이어 원>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제임스 할리데이가 되어 영화 곳곳에 취향과 이념을 흘려놓는다. 그래서 제임스 할리데이가 하는 말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거꾸로, 매우 빠르게 가보는 거야." 라든가, "더 이상 규칙은 필요하지 않아." 등의 대사에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 괴짜 할아버지 같은 차림으로 아직도 동심을 갖고 있는 키덜트. 이런 특징은 나이에 비해 이토록 자유분방하고 상상력 넘치는 필름을 만들어내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그가 자체로 제임스 할리데이이기 때문에, 가상현실과 현실에 대한 생각이나 할리데이가 좋아하는 80년대 영화나 음악, 게임들도 모두 감독의 생각이 반영되어 이어진다.
감독이 오아시스의 창조자에 자신을 투영했다면, 관객은 자연히 플레이어다. 이미 앞에서부터 우리는 이스터 에그를 찾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플레이어로 오아시스에 뛰어들었던 우리는, 영화가 끝나면 VR 체험 기계를 벗고 현실로 돌아온다. 만약 IMAX나 3D, 4D 관람이라면 안경을 벗는 순간, 현실로 다시 돌아오는 듯한 경험을 생생히 하게 된다.
”The A Team”
극의 초반, 웨이드, Parzival은 끊임없이 혼자가 좋다고 말한다. 아르테미스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 덕질을 하는 덕후들의 모습이다. 서로를 동경하는 와중에도 팀을 이룰 것을 거부하는 두 사람은 결국 마지막에는 연대하게 되고, 다섯 명이 팀을 이루어 오아시스를 함께 운영하기로 결정하기까지 한다. 이 익숙한 히어로 팀의 양상은 그동안 많은 영화에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팀' 그리고 '히어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어벤져스나, 저스티스 리그의 DC 히어로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이들의 모습이 <빅 히어로>와 겹쳐 보였다. 아무래도 이 다섯 명이 전문성을 갖춘 어벤져라기보다는 아마추어들의 모임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성장 스토리이지만, 가상에서 현실 모습을 모르고 만난 이들이 현실로 건너와 다시 마주한 다는 설정 덕분인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와 마음을 맞추어 가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 관심 분야가 같고 비슷한 목표와 생각을 가진 덕후들의 모임이 더 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오아시스의 거리
새로이 창조된 공간인 오아시스는 매우 섬세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상되어 있다. 오아시스라는 공간에 대한 묘사는 영화에 전체적으로 깔려 있긴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에게 처음 공간을 보여주는 장면에 주목하고 싶다. 관객들은 처음 보는 그 공간을 매우 낯설게 느끼겠지만, 카지노와 레이싱 경기장 등의 배경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한 것은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이미지를 시각화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매우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견고하게 구성된 가상현실 세계를 본 관객들은, 이게 결코 대충 만들어낸 홀로그램이나 '단지 게임일 뿐'이 아닌, 현실만큼 중요한 또 다른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아시스에서 아바타가 죽는다고 해서 현실에 영향이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게임에는 '현질'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게임에서 사용할 무기를 사다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경우도 있고, 몇 년간 노력해서 갖추어 놓은 아바타의 모습을 한순간에 잃게 되면, 그건 '현실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만큼 가상현실과 현실이 긴밀한 상태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둘 중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진짜 '나'란 현실 세계의 인간인지 가상현실의 아바타인지를 혼동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쉽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각각 다른 두 세계를 긴밀하게 연결하고, 갈등을 통해 결국 하나의 커다란 문제로 통합시켜버린다. 쉽게 설명하면 게임에서 싸우던 캐릭터들이 현실 세계에서 '현피를 뜨는' 광경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 상황에서 개인의 싸움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를 끌어낸다. 현실의 웨이드가 이모와 살던 트레일러는 빈민촌에 있고, 반대세력을 따져본다면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오아시스를 독점하려고 하는, IOI라는 권력집단인 것이다. 사만다의 아버지가 게임 무기를 사다가 진 빚을 갚지 못해서 IOI에 끌려가 막노동을 하다 죽은 사례처럼,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빼앗긴 사람들이다. 오아시스에는 그런 ‘빼앗긴 자’들의 아바타들이 가득하다. 이런 설정으로부터 마지막 미션 전에 성 앞에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서는 빼앗긴 자들의 분노가 군대를 이루어 하나의 거대권력과 맞서는 구도가 그려지게 된다.
이렇게 두 세계를 엮어 놓은 후, 영화에서는 결론으로 현실을 택한다. 사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면서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현실의 사랑을 가상현실로부터 찾은 웨이드는 오아시스를 운영하며 일주일 중 이틀은 오아시스를 폐쇄하고, 사람들이 현실의 삶도 살아가기를 원한다. 어떻게 보면 그래도 '현생'이라는 걸 외면할 수는 없는 오타쿠나 덕후들의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제임스 할리데이가 웨이드에게 사실 자신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서 오아시스를 만든 거라고 말해주었듯, 오아시스란 이름처럼 눈앞에 놓인 암담한 현실을 잠시 피하고 싶을 때 찾는 안식처나 아일랜드, 낙원의 개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급하게 결론지어진 듯한 느낌도 있지만, 진부하다고 해서 결론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제는 눈앞에 놓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사랑, 존경, 덕심을 가득 담아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대중문화, 팝 컬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80년대에 히트한 음악이나 영화, 게임들이 언급된다. 이스터 에그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대중문화를 많이 접한 사람일수록, 아는 게 많을수록 보이는 것도 많고 재미있어지는 영화다. 팝 컬처를 무시하지 말라는 대사도 있었고, 누군가 '그깟 대중문화'라며 저급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바로 그 대중문화가 얼마나 위대한지, 영화를 보는 동안 그 힘에 압도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전반적인 문화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듀란듀란의 음악이나, 80년대에 유행하던 오락실 게임 어드벤처 등, 관객들이 추억할 만한 오락거리들이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그 문화들에 대한 감독의 존경, 찬사라고 여겨진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인데, 오버룩 호텔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재현해낸다. 아마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샤이닝>을 처음 접한 관객들은 자연히 이 영화 역시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듀란듀란의 음악을 찾아 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