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2017)
실주의적 하이틴, 그레타 거윅의 세계를 담은 자전적 필름
그레타 거윅 감독의 데뷔작
이 영화가 기대되었던 것은 당차고 씩씩한 예고편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어딘가 반항적인 차림새의 캐릭터와 화면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레타 거윅이 단독 연출을 처음으로 해낸 작품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모았다. 그레타 거윅을 '연기 잘하는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필자 역시 <프란시스 하>라는 영화에서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레타 거윅은 해당 작품에서 프란시스 역을 연기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각본 작업을 함께 했다. 당시 영화를 보고 그 자유로운 정신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 방황하는 청춘을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어서 그녀의 더 넓은 세계를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자신의 세계를 <레이디 버드>라는 필름에 고스란히 담아냄으로써 공유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레타 거윅은 늘 연출을 해보고 싶었고, 원하는 걸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정말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과는 2015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만났고, 호텔방에서 함께 레이디 버드의 아웃라인을 그렸다고 한다. 그레타 거윅이 <메기스 플랜>으로, 시얼샤 로넌은 <브루클린>으로 영화제에 갔을 때다. 거윅은 직감적으로 시얼샤 로넌이 바로 레이디 버드라는 걸 알았고, 이제까지는 한 번도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해 본 적 없는 그녀가 이 영화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스케줄이 영화를 찍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고, 6개월 후에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A love letter to Sacramento"
영화 <레이디 버드>는 "Anybody who talks about California hedonism has never spent a Christmas in Sacramento(캘리포니아에서 쾌락주의를 논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 봐야 한다)."라는 조안 디디온의 글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조안 디디온은 미국의 여성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저널리스트로, 그간 미국의 불안정한 사회와 현실을 글로써 표현해낸 뉴 저널리즘의 대표자다. 감독인 그레타 거윅, 소설가 조안 디디온, 그리고 주인공 레이디 버드의 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 새크라멘토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뉴욕을 꿈꾸며 새크라멘토를 떠나고 싶어 하는 레이디 버드와는 다르게, 그레타 거윅은 새크라멘토를 늘 '마법 같은' 도시로 여기며 사랑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조안 디디온의 글을 인용한 것에 대해서는 '마치 당신이 더블린 출신인데, 제임스 조이스의 시를 읽게 된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거윅은 맨하탄을 떠나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에서 카톨릭 고등학교 생활을 했는데, 가톨릭 학교에서 만난 수많은 선생님들과 따뜻함 또한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반항적이고 무례하기까지 한 레이디 버드와 실제 그레타 거윅의 고등학교 시절은 많이 달랐지만, 결론적으로 자아에 대한 고민을 통해 성장해가면서 새크라멘토를 그리워하고 향수를 느끼는 레이디 버드의 모습을 통해 그 도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Call me LADY BIRD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이어 레이디 버드에서도 '이름'이라는 건 아주 중요한 의미작용을 한다. 이름이란 단순히 명칭으로서 작용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정체성과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뮤지컬 오디션에서 레이디 버드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니?"라는 질문에 "제가 저에게 지어준 이름이에요."라고 답한다. "given name"이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부여해 주는 이름인데, 스스로에게(by myself) 이름을 부여하는(give name) 레이디 버드의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부모의 그늘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스스로를 개척해 나가고 싶어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Give me the number!(나 키우는데 얼마나 들었는지 말해줘!)"라고 말하면서까지 자신의 결정에 부모가 간섭하는 걸 싫어하던 레이디 버드는 엔딩에서 스스로를 크리스틴(Christine)이라는 진짜 부모가 지어준 이름(given name)으로 지칭하게 된다. 결국 그녀가 싫어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홈'에 대한 영화를 그리고 싶었다는 그레타 거윅은 집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하는데, 레이디 버드와 실제 고등학생 시절은 많이 달랐지만 집과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한 정서는 온전히 그녀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Lady Bird'라는 이름 또한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하면, 오래전부터 구전되어오는 노랫말인 "Lady bird, Lady bird, fly away home. Your house is on fire"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영화 <소공녀>에서도 다루었던 집이라는 주제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부여해 주는 공간을 의미하면서 요즘처럼 물리적인 집은 있지만 정서적인 홈리스들이 많은 시기에 참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그래서 레이디 버드가 새크라멘토를 '집'으로서 떠올리는, 그 향수에 공감을 던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이틴 아닌 하이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한 소녀의 관점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여주고, 내면적 성장을 다룬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영화의 틀은 하이틴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진지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시시껄렁한 농담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끝까지 즐기며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하이틴 무비들이 <클루리스>의 Cher나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Regina를 둘러싼 학교생활을 만들어 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면, <레이디 버드>는 <월플라워>와 <지랄발광 17세>에서 그렸던 성장과 진지한 고민들을 담은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둘의 스토리를 적절히 섞은 듯하기도 하고, 동시에 어디에도 없던 당차고 솔직한 캐릭터를 창조해냄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하이틴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하이틴 무비들이 청춘의 아픔과 방황, 사랑을 아름답게만 포장하려고 했다면 <레이디 버드>는 그 결점과 현실을 미화시키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표현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지 않는다"며 청춘의 그 결점들과 현실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면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엄마와의 갈등 또한 있는 그대로 담아냈고, '가족'이라는 게 늘 나에게 집이 아닐 수 있다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이 영화에서 "저게 바로 내 모습이었어!"라는 느낌을 받고, 무한대의 공감을 보낼 수 있게 된다.